[칼럼] 김영환 상임고문

행정도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총리 출신 등 93명의 국가 원로들은 최근 국가백년대계를 위해 이를 백지화하라고 촉구했다. 행정도시 수정론을 본격화한 것은 차기 대권주자의 1인으로 거론되는 정운찬 총리다. 충남출신의 경제학자이자 서울대 총장이었던 그가 행정도시의 미래에 대해 ‘과천 형이냐 송도 형이냐’고 말하자 정치권에서 강진이 일어났다.

수도권 과밀화 억제와 국가 균형발전, 정치적 신의가 행정도시 강행론이라면 수도분할은 국가경쟁력을 저해하고 위기관리 장애를 유발하며 통일을 생각해도 안 된다는 것이 반대자들의 논거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원안 이행 플러스 알파’를 언급하여 논란의 화염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군대를 동원해서라고 막을까’라고 말한 것처럼 행정도시에 강력히 반대해왔다. 때와 장소에 따라 말이 변했지만 수도권은 그가 행정도시를 폐기할 것으로 보고 상당수가 지지했을 터이다. 또 충청권 인사들은 시행을 믿고 찍었을지 모른다. 그가 대통령이 된 지금 그의 이런 철학이 정치행위에 투영되는 것은 당연하리라.

모든 국론분열의 근원은 노무현 정권이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도 안 된다던 그의 졸속 대선공약인 수도이전은 2004년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난파했다. 국민여론은 안중에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자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 공주지역 행정도시건설특별법안’이라는 엉터리법안을 여야의 당리당략으로 만들었다. 박 대표 시절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지낸 김무성 의원은 이 법안이 잘못된 것이라고 술회했다.

국론 분열엔 정치권 눈치를 보는 헌재도 한몫을 했다. 수도이전은 안 되고 분할을 된다는 해괴한 논리에다 국민투표에 부칠 의무는 없다고 강변하여 국민투표로 종지부를 찍을 기회마저 앗아간 것이다.

박근혜 의원 말대로 행정도시가 정치적 신의와 한나라당의 존립에 관한 문제라면 애진작 수도분할 찬성파와 반대파로 분당됐어야 했다. 2005년3월2일 표결된 행정도시법은 말만 여야 합의일 뿐 당시 재적 122명의 한나라당 의원 중에서 찬성자는 8명이었고 반대자는 한나라당 12명, 자민련 1명, 민노당 2명 등 15명이었다. 한나라당이 의총을 하고 있을 때 본회의장에 있던 박근혜 대표는 당당하게 찬반을 표시하지 않고 기권했다. 원칙과 국익을 최우선하는 박세일 정책위의장(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서울대 교수)만이 ‘역사에 죄 짓지 않겠다’며 국회의원직을 내던졌다.

행정도시법에 어정쩡했던 박 전대표가 이제 경쟁자를 의식해 충청권 지지 확대를 노리며 ‘당 존립문제’라는 으름장을 놓는지 모르지만 이는 합리적 대안을 찾는 여당을 궁지로 몰아갈 뿐이다. 포퓰리즘으로 행정도시를 급조해온 야당은 쌍수를 들어 박 전 대표의 주장을 환영한다.

결국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입으로 국가를 내세우지만 행동은 지역적, 정파적인 범주를 못 벗어난다. 행정수도를 옮기면 국가가 망할 것처럼 말하던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도 지금 국가백년대계를 위해 행정도시는 건설해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행정도시의 명분이라는 균형발전의 과실을 충남이 독식할 수는 없다. 충남은 지역총생산(GRDP)성장률이 거의 10%선으로 전국 최고다. 중요한 것은 지역 이익이 아니라 국익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 말대로 잘못된 정치적 결정은 언제라도 바로잡아야 할 대상이다.

우리는 전시작전권 이양에 따른 자주국방 확립, 미래에 먹고 살기 위한 저탄소 녹색성장, 복지 확대 등 허다한 과제에 천문학적 투자를 해야 한다. 60-70년대 중화학 집중투자가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다. 지금 정부가 ‘두 집 살림’ 할 여유는 없다. 세금을 포함해 행정도시 건설에 들어갈 40여 조 원은 일자리 창출의 보고인 중소기업 지원 올해 예산 8조원의 5배다. 2,200만평에 9부2처2청의 공무원 1만 명이 근무할 도시를 새로 만들어야 할까?

수도분할은 해답이 아니다. 행정도시 부지엔 과학연구벨트를 확대하여 산업을 떠받치고 국부의 증강을 꾀하자. 균형발전이 문제라면 정부 건물이 아니라 인허가 권력을 지방에 골고루 나눠주자. 민간방송의 인허가권을 주정부가 갖는 독일이 작은 예다.

과오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수도분할의 망국적인 주장이 왜 거듭 되는지 한심하다. 정치권의 능력으로 이 논란을 잠재울 수 없다면 독재적인 추진방법으로 이 중대사에서 소외되었던 온 백성들이 국민투표로 결정해 종지부를 찍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이고 정치 신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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