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환 고문
많은 사람들이 주장했고 또 예측했던 대로 세종시 성격이 바뀌었다. 9부2처2청의 행정도시를 전면 백지화하고 삼성 등 대기업을 유치해 2020년까지 산학연을 아우르는 교육과학 중심 첨단 경제도시로 조성한다는 것이다. 시기도 행정도시 건설 목표였던 2030년보다 10년을 앞당겼다.

노무현 정권의 ‘철이 없는’ 대선 전략에서 출발한 ‘행정수도 괴물’은 그간 국회의 대를 이어가면서 여야, 여여 갈등으로 국론분열을 증폭시켜 왔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대안 발표로도 논란이 쉽게 종식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간 행정도시 수정에 강력하게 반대해온 정세균 민주당대표는 행정도시법을 대표 발의한 장본인이다. ‘여당 내의 야당’으로 자리매김한 박근혜 의원은 행정도시법 표결에 기권은 했지만 ‘행정도시법 (실천에) 정치생명을 걸었다’는 당대표였으니 이들은 세종시 수정 찬성 세력들과 정치생명을 건 싸움에 이미 깊숙이 들어선 모양새가 되었다.

야당이 주장한대로 장외투쟁에까지 나선다면 정국은 더욱 극심한 혼란상을 겪을 것이고 중소기업문제를 비롯한 일자리 창출 민생현안은 정치 싸움으로 뒷전으로 밀릴 것이 분명하다.

총남과 비충남의 대결구도도 첨예화할 것이다. 행정도시 백지화와 첨단경제도시 건설은 다른 지자체에도 극심한 타격을 가할 것이 분명하다. 교육 과학연구나 첨단 녹색산업 도시는 바보가 아닌 이상 모든 지자체와 지자단체장들이 꿈꾸는 미래 비전이다. 즉 세종시가 추구하는 개념은 우리나라 어느 지역에 적용해도 좋을 ‘미래의 먹을 거리’다. 세종시의 아이템은 다른 지자체와 치열하게 경합하는 ‘제로섬 게임’이라는 말이다.

미래를 위해 이보다 더 좋은 테마가 어디 있을까? 우리나라 최초의 경제자유구역인 국제공항 곁의 인천경제자유구역도 최첨단 과학기술연구 및 국제비즈니스 도시를 목표로 삼고 있다. 많은 대학들이 송도에 입주하는 것도 교육 과학 연구도시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탁월한 입지조건을 갖춘 인천경제자유구역이 다른 모든 경제자유구역처럼 지지부진하다. 수도권규제는 철통과 같고 정부의 지원은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정부는 세종시 입주기업에게 토지주택공사가 3.3평방미터당 227만원에 조성한 토지를 그 6분의 1 수준인 특혜적 가격으로 준다고 한다. 여기에다 수도권에서 이전하는 기업에 취득세와 등록세를 면제하는 정책은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가뜩이나 이전 압력을 받고 있는 수도권의 산업 공동화를 더욱 가속화할 우려가 있다. 부자기업에 땅을 헐값에 공급하는 것도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양극화 문제인 부익부 빈익빈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이러한 특혜는 결국 세금이고 국민 주머니에서 나을 것이다.

반면 수도권의 공장 증설 규제가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는 이천 하이닉스 공장의 증설이 청주로 자리를 옮긴 사실로도 입증되었다. 파주 LCD공장이 얼마나 곤경을 치룬 끝에 성사되었는가도 좋은 예이다.

국익을 위해, 더 크게 보면 수도권 경쟁력이야말로 국가 경쟁력이다. 첨단공장 건설에도 수도권은 가장 탁월한 입지다. 외국인의 내왕도 편리하고 수출하기도 좋다. 그런데 수도권의 발은 수도권 정비법이나 공장 총량제 같은 ‘쇠고랑’으로 꽁꽁 묶어 놓고 어떻게 국가경제가 마음껏 발전하기를 기대하는가?

정부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제로섬 게임이 수도권규제에서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즉 ‘수도권의 불행이 다른 지역의 행복’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기업의 자원은 유한하다. 세종시에 태양전지연구소를 설립한 기업이 다른 경제자유구역에 같은 연구소를 설립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세종시의 아이템은 다른 지자체와 경합하는 ‘제로섬 게임’이라는 말이다.

선거 때만 ‘캐스팅 보트’라고 과대평가하는 충청권의 유권자는 전체의 10%에 불과하지만 서울 경기 인천의 수도권 유권자는 48.6%에 달한다. 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에서도 충남 민심 보다 수도권 민심이 훨씬 더 중요한 이유다.

‘균형발전’ ‘충청 민심’ 운운하면서 이 나라에서 가장 경제성장이 빠른 지역이 가장 큰 피해자인양 작은 정치적 지분으로도 과도한 목소리를 내게 만든 이유는 정치인들이 내뺕은 과거지향적 공약 탓이다. 그 정치인들의 빚을 갚기 위해 왜 다른 지역은 손가락만 빨아야 하는가? 김문수 경기도 지사는 이렇게 분노를 표출했다. “세종시에 비하면 경기도는 (정부의 배려가) 100분의1도 안 된다. 경기도 홀대에 대해 뜨거운 맛을 보여줄 것이다”.

정부는 ‘역차별은 없다’고 강변하지 말고 어디서나 입지에 맞게 기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수도권 기업에 대한 규제 철폐 내지는 정비가 가장 훌륭한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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