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권력, ‘김정일의 여인’들에게 있다

정하일 주필
‘김정일의 여자관계’는 인간 김정일을 파악할 수 있는 또 다른 통로다. 김정일이 오랜 지병 끝에 쓰러져 뇌수술을 받아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후계자 문제를 결정하지 않는 배경에는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복잡한 여자관계에서 비롯된 가족관계도 한 몫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외국의 국빈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이 외교행사에서 단 한 번도 부인을 동반하지 않은 이유도 그의 평범하지 않은 가정생활과 연관이 깊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김정일의 사생활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김정일의 ‘내연의 처’ 김옥

건강 이상으로 쓰러진 김정일이 병상에서 일어나더라도 과거처럼 혼자서 절대적인 통치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라는 특수사회에서는 김정일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동안에는 그에게 도전할 만한 세력이 등장할 수 없다. 따라서 김정일은 병상에 누워 최고 권한을 놓지 않고 권력을 몇 기관에 분할해 통치를 강화하면서 반대자 제거에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권력다툼이나 광기어린 숙청과 처형, 우발적인 반발 등이 일어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거동이 불편한 김정일이 병상에 누워 통치하게 되면 아무래도 측근에서 건강을 관리하고 김정일의 통치업무를 대행하는 이른바 ‘대리권력’이 득세할 수밖에 없다. 대북 정보당국은 “병상에 누운 김정일 위원장의 문고리를 잡고 있는 여인을 주시하고 있다”며 향후 평양 권력층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로 김옥(44)을 지목했다.

김정일 시대는 이제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따라서 반발세력의 제거나 후계자 결정에 ‘대리권력’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외 정보당국이 뇌수술을 받고 누워 있는 김정일의 병수발을 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 일개 ‘국방위원회 과장’에 불과한 김옥이라는 여인에 대해 집중 연구에 들어간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다.

하지만 김옥은 ‘일개 국방위원회 과장’에 불과한 여인이 아니다. 그녀는 지난 2004년 김정일의 애첩이자 김정일의 차남과 3남인 김정철・김정운의 생모인 고영희가 사망한 후 김정일과 동거해오고 있는 사실상의 북한 퍼스트 레이디이다.  그녀는 1980년대 초부터 고영희 사망 전까지 김정일의 비서업무를 담당하던 ‘기술서기’로 활동하면서 김정일을 보필해 왔다. ‘기술서기’는 노동당 고위 간부의 건강을 보살피는 직책으로, 주로 간호사가 선발되지만 김정일의 경우 다수의 기술서기가 배치돼 비서업무까지 맡기도 한다.

김옥은 김정일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군 부대 방문 등 현지 지도는 물론 외빈 접견에도 영부인 자격으로 참석해오고 있다. 그녀는 지난해 1월 김정일의 중국 방문 때도 동행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인사하는 등 사실상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다.

김옥은 현재 김정일의 사저에 살면서 김정일의 실질적인 부인 역할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김정일의 개인조직이나 39호실(김정일의 통치자금을 관리하는 부서)을 관리하는 일에도 깊이 연관돼 북한정권의 재정에 영향력이나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고, 김정일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고 대리인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김정일 유고시의 후계구도에서 힘과 수단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녀는 비정상적 상황에 처한 김정일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면서 김정일의 의중을 헤아릴 수 있는 핵심 인물로, 김정일에게 거리낌 없이 반말을 하는 유일한 여성이기도 하다. 김옥은 평양 금수중학교와 금성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음악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금성고등중학교는 문화예술 분야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을 선발 육성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학교를 졸업하고 경음악단에서 활약하던 그녀가 김정일의 눈에 든 것은 1980년대 후반으로 전해진다. 그녀는 김정일에게 발탁되어 ‘김정일 서기실(비서실)’에 들어갔고, 처음엔 분야별 업무를 담당하는 서기들 밑에서 보조적 역할을 했다. 그리고 90년대 중반에 이르러 그녀는 김정일로부터 ‘옥이 동지’라고 불릴 만큼 위상이 높아졌다. 그녀는 김영숙, 성혜림, 고영희와 달리 깜찍하고 애교가 많으며 매우 똑똑하고 영리한 많은 여성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녀가 정보당국에 포착된 것은 2000년 10월 미국 워싱턴에서였다. 당시 김정일의 특사로 빌 클린턴 대통령과 만난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을 수행한 인사 중에 그녀가 홍일점으로 포함됐다. 당시 그는 ‘김선옥’이란 가명으로 활동했다. 그녀가 김정일의 여자로 부상한 것은 2001년 이후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녀를 ‘김정일 위원장의 곁에 있는 여인’으로 발탁한 사람은 당시 김정일의 부인 고영희(2004년 5월 프랑스파리에서 암 치료 중 사망)였다.

암에 걸려 얼마 살지 못한다고 판단한 고영희는 자신이 낳은 두 아들 김정철과 김정운을 보살필 인물로 김옥을 지목했다. 고영희는 김옥을 불러 김정일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고, 죽음이 임박하자 그녀를 집에 들여 함께 살면서 두 아들의 장래를 부탁했다고 한다. 최근 김옥이 고영희의 아들 김정철을 후계자로 밀고 있다는 설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모든 결재・의사결정 김옥이 대행”

김옥은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37) 등 가족과 함께 최고지도자에게 언제든지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특히 병세가 호전돼 제한적이나마 집무를 시작할 경우 김정일의 업무범위 결정이나 핵심 인사 면담 등을 결정짓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여인이기도 하다. 김정일의 곁에 머물고 있는 중국 인민해방군 소속 의료진의 진단 결과나 병세에 대한 정보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것도 김옥이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9월12일 김정일의 발병 후 모든 결재와 일체의 의사결정을 김옥이라는 여성이 도맡아 대행하고 있다고 일본 외무성 관리를 인용, 보도했다. 이 신문은 “김 위원장이 쓰러진 뒤로는 김옥이라는 김 위원장의 내연의 처가 모든 결재와 의사결정을 대행하고 있으며, 향후 후계자 결정에 있어서도 그녀가 결정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고 전했다.

미 해군 정보분석센터(CNA)의 한 고위 인사도 최근 자유아시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될 경우 그의 최측근인 김옥씨가 김 위원장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고 자신이 김 위원장 대리인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의 전문가들도 “정상적 승계 과정이라면 김옥의 역할이 미미하겠지만 김정일의 유고 상황이라면 그의 몫이 중요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될 경우, 김 위원장의 개인비서이자 사실상 북한의 퍼스트레이디로서 실권을 행사하고 있는 김옥이 김 위원장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고 대리인으로 나설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점을 미국 정보당국은 주시하고 있다.” 미국 해군분석센터(CNA)의 켄 고스 국장은 3월 초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정일의 여성 편력

김정일과 동거하며 공식적으로 부인으로서의 대우를 받은 ‘김정일의 여인’은 성혜림(1937~2002), 홍일천, 김영숙, 고영희(1953~2004), 김옥 등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가운데 김정일이 가장 총애했던 여성은 만수대무용단원 출신의 고영희라는 유명한 무용배우다. 그녀는 김정일과 가장 오랫동안 동거하며 사실상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해온 여성이었다. 그녀는 김정일이 일본 여배우 중에 가장 예쁘다고 말한 요시나가 사유리와 매우 닮았다고 한다. 고영희는 비교적 성격이 밝고 친절하며 인내심과 참을성이 많아 보였다고 김정일 전담 요리사 후지모토는 말했다.

고영희는 재일교포 출신 고태문(일명 고경태)의 딸로 1953년 일본에서 태어나 60년대 전반 가족 전원이 북한으로 귀국했다. 그녀의 아버지 고태문은 제주도 출신으로 일본에서 이름난 전직 유도선수였다. 북송교포 출신 고태문은 북한유도의 창시자로 불려진다. 고영희는 72년에 만수대예술단에 무용수로 입단해 73년과 74년 만수대예술단의 일본공연에서 각광을 받았고, ‘눈이 내리네’라는 15분 정도의 단편영화에 주연을 맡은 적도 있다. 이른바 ‘기쁨조’ 출신의 고영희는 김정일의 눈에 띈 후 북조선 상층부에서 김정일의 공식 부인으로 인정받고 살았다.

그러나 그녀는 김정일의 첫 번째 여자도 아니고 정식 부인도 아닌 네 번째 애첩에 불과했다. 그녀는 김정일과의 사이에서 김정철, 김정운, 김여정 등 2남 1녀를 낳았다. 이들은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의 이복동생들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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