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일보】1970년대에 중ㆍ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세대라면 책 싸는 일에 일가견의 경험을 갖고 있다. 철지난 달력 종이를 책 크기에 맞게 재단해 책 표지를 싸면 헌책도 새책이 된 듯 기분이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책에는 저마다 사연도 많다. 여기저기 접힌 페이지들과 줄친 부분들, 눈물 자국, 때로는 연애편지들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이렇듯 종이책은 우리 인생과 함께 하면서 다양한 장점도 지니고 있다.

우선 인간의 다양한 감각을 만족시킬 수 있다. 손으로 책을 넘길 때 촉각의 쾌감을 느낄 수 있고, 책장이 넘어갈 때 청각이 동원되며, 종이 냄새에 후각이 흔들린다. 종이책은 휴대전화처럼 충전하지 않아도 ‘무한 에너지’의 배터리를 품고 있는 매체다. 책과 단독자로 대면하는 개인매체이면서도 여럿이 돌려가며 읽을 수 있다. 종이책은 무엇보다 더 오랫동안 음미하고 자기 나름대로 상상력을 발휘하게 해준다. 그래서 사람들의 사고 활동을 더 왕성하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런 종이책의 장점은 앞으로 점점 경험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시대가 빠르게 ‘스마트 교육’으로 변화하면서 종이책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책과 노트 여러권을 한꺼번에 집어넣어 책가방을 축 늘어지게 했던 이 종이책 교과서 문제가 한방에 해결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애플의 ‘아이북스2’다.

교육용 아이패드 앱 아이북스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아이북스2는 일단 미국의 고등학생용 교과서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게 600g 정도의 아이패드에는 다른 컨텐츠를 포함해 약 8~10권의 교과서가 저장된다. 이 전자교과서들 속에는 이미 오래전에 나왔어야 할 것같은 쌍방향 수업자료가 포함된다. 스크린을 ‘탭’하여 답하는 객관식 문제들,동영상, 터치 제스처로 바뀌는 다이내믹한 도표들, 그리고 중요한 용어를 공부하기 위한 플래시 카드 등등 공부가 게임처럼 흥미진진한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애플의 맞수 삼성전자도 지난 2월 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2012’에서 신규 교육 콘텐츠 서비스 ‘러닝허브’를 공개하며 애플에 이어 디지털 교육시장 개척을 선언했다. 러닝허브는 삼성전자가 선보이는 첫 교육 플랫폼 서비스다. 국내외 주요 30개 교육 사업자와 제휴해 6000여개 유ㆍ무료 콘텐츠를 제공할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스마트교육’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인한 시대적 흐름임은 어쩔 수없다. 우리의 교육과학기술부도 IT강국답게 지난해 6월 2015년까지 초ㆍ중ㆍ고교의 모든 교과를 대상으로 디지털 교과서를 만드는 내용을 포함한 ‘스마트 교육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이 전략의 핵심은 서책형 교과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교실수업 개선과 학생별 맞춤형 교수학습을 위한 디지털교과서의 개발 및 적용이다. 현재 전국 50여개 학교에서 시범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문제는 우리가 당초 기대했던 긍정적 교육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얘기했던 모든 초?중?고 학생들은 2015년부터 전자 교과서를 보기 위해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게 된다.

스마트 교육의 추진 근거로 교과부는 우리 학생들의 디지털 독해 능력이 인쇄매체 독해 능력에 비해 높게 나온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연구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 우리 학생들의 인쇄매체 독해 능력도 조사 대상국 중 1위였다는 사실은 간과했다. 둘다 세계 최고인데 인쇄매체 독해 능력이 뒤떨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책과 문화를 마음껏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 경쟁력을 보유한 핀란드는 국민 1인당 공공도서관 장서 수가 7.6권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10개국 중 1위를 기록한 반면 우리나라는 1.3권으로 10위, 즉 꼴찌를 기록했다. 더 큰 문제는 스마트 교육의 역기능에 대한 우려가 그치지 않고 있는 점이다. 교육전문가들은 인지적 측면에서 스마트 교육은 학습능력을 높이는게 아니라 손상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어디 있는지 알기만 하면 되는 인터넷, 집중력이 분산되는 멀티태스킹과, 역동적인 미디어에 익숙해진 아이들의 사고방식이 얕고 가벼워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정서적 측면에서도 스마트 기기를 수업시간에 사용하면 다양한 멀티미디어 자료에 초점이 맞춰져 교사와 학생간 유대감이 약해지고 상호작용의 질도 낮아질 수 있다. 또한 스마트 기기로 혼자 노는데 익숙한 아이들이 다른 사람과 감정을 공유할 공감 능력을 가지기 힘들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교육전문가들은 또 성장기 청소년들의 신체발달 측면에서도 스마트 기기 사용은 학생들의 뇌 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심하면 중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교과서를 대신한 스마트폰을 집중해 보게 되면 눈의 피로와 시력 저하는 필연적이다.

수십명의 학생들이 교실에서 무선 인터넷을 이용할 때 나오는 전자파가 유해하지 않은지도 의문이다. 교사의 교육력 저하도 우려된다. 수업시간에 게임과 카카오톡, 인터넷 서핑이나 전화를 하는 경우를 예방하기 위해 생활지도 차원에서 휴대폰을 꺼서 내도록 일선 교실에서 지도하고 있지만 ‘디지털 교과서’시대에는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또 모든 학생이 스마트 기기의 이른바 ‘몰카’기능을 이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어느 교사가 문제학생을 훈육하며 인성교육의 책임을 다하려 할까. 이외에도 스마트 교육은 태블릿PC 등 기기구입을 위한 사교육비 증가, 맞춤형 정보에 익숙해진 학생들이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언제 어디서나 성인 음란물을 접할 수 있어 아이들의 인성이 왜곡될 가능성, 인터넷에 중독된 학생들의 주의력 산만과 사고력, 집중력 저하 등 여러 부작용을 수반한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의 2009년 디지털 읽기 소양평가(DRA)는 서문에서 성공적인 교육체제는 관료주의적인 ‘지시와 통제’모델에서 탈피해 자원의 활용과 작업방식을 결정하는 권한을 일선 담당자에게 위임하는 형태로 변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 교육은 교사와 학부모 등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분권화의 시대적인 흐름에도 어긋난다.

마치 대세인양 IT강국의 면모를 과시하기 위한 ‘스마트 교육’보다는 교육 효과에 대한 체계적인 검증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과속보다는 안전을 위한 속도조절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동삼 시사매거진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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