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김영환
영화의 스토리가 끝나고 제작에 공들인 많든 이들을 소개하는 ‘엔딩 크레딧(끝맺음 자막)’이 올라가고 있지만 사람들은 벌써 우르르 일어납니다. 영화관은 이미 불을 켰고 출입문은 열어놓아 소란한 분위기에 휩싸입니다. 스크린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더 앉아 있고 싶어도 안 됩니다. 케이블 텔레비전들의 영화 방송은 더 하죠. 영화의 끝맺음 자막을 생략하고 한글로 ‘끝’이라고 내보내는 강제 종영입니다. 정말 웃기는 것은 외화에 뭘 제작하고 기획했다고 그 자막에 '기획 XXX, 제작 XXX'하고 자기 방송의 이름을 다는 것인지요.

처음은 요란하였으나 끝은 마무리하지 않는 용두사미의 전형입니다. 끝을 중시하지 않는 보편적인 성향이 영화관이나 텔레비전 혹은 게임이 끝나지 않았는데 스탠드에서 일어서는 스포츠 경기장을 통해 사회를 풍미하고 있지요.

요즘 여야 할 것 없이 정당들이 국책 사안을 차기정권으로 넘기라고 정부를 옥죄고 있습니다. 인천공항 지분매각, 차세대 전투기 도입계획, 우리은행 매각 등이 그것이죠. 반면에 동남권 신공항건설 같이 이미 폐기된 계획을 선거에 활용하고 싶은 집요한 포퓰리즘 세력들이 뛰었는지 국토부는 내년 예산안에 신공항 검토 비용을 넣겠다고 합니다. 이미 끝난 타당성 조사를 다시 한다면 정치권의 외압 말고는 이유가 없죠. 이런 거야말로 자신들이 집권한 뒤에 하거나 말거나 할 사안이지 지금부터 챙길 일이 아니죠.

‘오늘 할 일을 내일 하라’는 식으로 정부에게 압력을 가하는 일은 월권입니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국책사업은 국가에 필요하기 때문에 시행하려는 것이고 그 시행이 정권의 속성에 따라 달라진다면 이는 정치권이 정부라는 조직을 국민이 아니라 정권의 부속물처럼 여긴다는 반증입니다.

정권을 만드는 정당은 몇 년 새에도 간판을 바꿔도 여러 번 바꾼 철새처럼 유한하고 천박한 조직이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국가의 영속성을 지닌 조직입니다. 아직도 18대 대통령의 임기는 여러 달 남았습니다. 임기 말까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 예기하지 못한 일이 8월10일 일어났습니다. “독도 문제를 건드리면 득 될 게 없다. 우리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으므로 조용한 외교가 득책이다”라고 생각해왔던 나약한 외교정책 기조를 뒤흔들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전격적인 독도 방문은 임기 말의 대통령이라고 해서 결코 ‘식물 대통령’이 아니라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했습니다.

독도가 어떤 섬입니까? 1999년 1월 국민회의의 날치기로 통과한 ‘매국적인 신어업협정’을 체결한 것은 김대중 정권이었습니다. 경제수역(EEZ) 설정 때부터 우리는 독도를 기점으로 하는 200해리를 주장하지 못했고 겨우 울릉도 기점의 35해리로 정해 49해리 거리인 독도를 수역에 넣지도 못했죠. 정부는 오히려 독도 주변 어장을 양국이 공동관리하는 중간(잠정)수역으로 설정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정부는 이것이 순수 어업협정일 뿐 영토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강변했지만 이는 '1대0'의 독도를 '1대1의 독도'로 바꾼 치명적인 외교 실책이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于山武陵二島 在縣正東海中 二島相距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우산과 무릉 두 섬은 '울진' 현에서 바로 동쪽 한가운데에 있는데 두 섬의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일기가 청명하면 서로 바라볼 수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 울진현 조(條)의 기술입니다. 또 동국여지승람에도 명기된 우리 국토를 1905년 조선이 외교권을 잃어가던 때에 마치 무주물인 것처럼 슬그머니 시마네(島根)현 고시로 편입해 사술을 부린 일본은 방위백서와 외교청서, 교과서에 계속 자국영토라고 강변하면서 군국주의의 망령을 일본의 젊은 세대들에게 오염시키는 만용을 부리고 있습니다. 종군위안부 문제, 역사 왜곡 교과서 등 숱한 과거사 왜곡에 쐐기를 박을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마치 임기가 끝나가는 대통령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무시하고 방자하게 공격하는 사람들의 의표를 찌른 행동이었습니다. “너무 자극적이다. 자유민주주의 우방마저 관계가 소원해지면 어쩌려고 그러냐”는 국내 반응이 있습니다. "폭거다. 어리석다"라는 일본 언론의 사설도 있습니다. 이념을 공유하는 우방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우방은 영토에 대한 허황된 야욕이 없어야 합니다. 우방이라도 그른 것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자유민주주의를 공유하는 우방이죠.

이명박 정부의 엔딩 크레딧은 아직 올라가지 않습니다. 19대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날인 임기 마지막 날까지 반년도 더 남았습니다. 마치 정부가 파장인 것처럼 “빨리 일어서자”고 선동하는 사람들은 대통령 단임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야합니다. 그것은 ‘임기 끝까지 할 일은 한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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