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국민이 국회를 사기꾼 집합소로 인식
국회 개혁을 통한 정치개혁이 시대적 과제

▲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 등 정의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이완구 총리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피켓딩을 하고 있다.이완구 국무총리는 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의회신문】성완종 게이트는 이 땅의 정치인들과 고위직 인사들이 평소 일상처럼 저질러온 부정부패의 실상을 잘 보여주는 한 단면에 불과하다.

이 나라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과 공직사회의 이른바 ‘높은 분’들은 대부분 야합하고 결탁하고 불순한 거래 일삼으면서 부정한 뇌물 주고받는 데 이골이 난 달인들이다. 그래서 세간에서는 “대한민국에서 높은 직에 나가면 사람 버린다.” “이 나라 국회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질 나쁜 싸가지들과 사기꾼들이 모인 곳”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그들은 잘 나갈 때는 개기름 같은 썩소를 흘리며 “우리가 남이냐” 하다가도 어려움이 닥치면 제 살기에 바빠 등 돌리고 꼬리 자르고 배신하는 데도 한 가닥씩 하는 프로들이다.

우리는 이번 성완종 게이트를 통해 이런 실로 혀를 찰 수밖에 없는 실제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결단코 돈 받은 적 없다느니, 만난 적이 없다느니,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느니 하면서 말을 바꾸고 발뺌하는 모습들은 그야말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식의‘신뢰와 의리’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정권을 넘나들며 여·야와 친박·비박을 종횡무진하는 전방위 인맥을 쌓아 권력 실세들에게 돈을 주고 거래를 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기업 돈으로 권력을 사고 그 권력으로 다시 자신의 곳간을 메우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랬던 그가 지난 4월9일 북한산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권력 실세들이 받은 만큼 그의 구명(救命) 요구에 응해주지 않은 데에 절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논리대로 말하자면 ‘이쪽에서 뭘 주었으면 받은 쪽에서 받은 만큼 이쪽 요구에 응하는 것이 신뢰요 의리’인데, 권력 실세들이 이 ‘신뢰와 의리’를 져버려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결과는 그가 생각한 신뢰와 의리가 애초부터 불순했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그는 지금의 야당이 집권했던 시절에 훨씬 더 많은 특혜를 받았다. 노무현 정부 때 경남기업을 인수해 전국구 기업인으로 부상했고, 2002년 지방선거 때 불법 정치자금 16억 원을 건네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가 2005년 그 어렵다는 특별사면을 받았다. 2007년에는 행담도 공사 시공권 대가로 관계사 사장에게 120억 원을 무이자로 빌려줬다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받았으나 또 특별사면 됐다.

그의 측근은 “정치인 150명에게 150억 원을 뿌렸다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성완종 전 회장은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누었던 것으로 보인다. 돈을 받고 도움을 준 의리 있는 사람과 돈을 받고도 도움을 주지 않은 의리 없는 사람이 그것이다. 설령 부정한 뇌물을 받았다 할지라도 불순한 거래에 도움을 주는 것은 범죄행위라는 사실을 그는 한사코 외면한 것이다.

성 회장은 2012년 4월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1천만 원 불법 기부 사실이 적발돼 의원직을 상실했다. 여기에 자원비리 수사팀이 성완종 회장의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자 개인 비리로 몰아갔다. 성 회장은 이를 ‘표적수사’로 받아들였다.

정권 실세들에게 그만큼 돈을 찔러주면서 보험을 들었는데 왜 하필이면 그런 나를 죽이려 하느냐, 내게 이럴 수 있느냐, “그러면 안 되지요. 신뢰를 중시해야지요. 인간적으로 이렇게 의리 없고 그러면 안 되잖아요”하는 것이 그의 변(辯)이었다.

성완종 게이트는 단순한 형사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정권의 운명과 정계의 지형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대형 정치사건이다. 그가 남긴 리스트와 생전 인터뷰에는 박근혜 정부의 역대 비서실장 전원과 총리를 포함한 친박(親朴) 핵심들이 족집게로 골라낸 듯 올라 있다. ‘나 혼자만 죽지 않는다’는 결기가 엿보인다.

지목당한 8인의 정치인들 가운데는 아마 억울한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죽는 자가 반드시 진실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 회장이 죽음으로써 고발한 것이니 진실일 거라 믿고 싶어 한다. 또 우리 정치판이 본디 ‘총체적으로 썩은 곳’이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개연성이 높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들 8인 가운데 설령 억울한 사람이 있을지라도 이들은 꼼짝없이 혐의를 뒤집어쓴 채 합당한 알리바이나 반증을 찾아 결백함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돈을 주었다고 폭로한 성 회장이 고인이 돼버린 상황에서 돈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법적으로는 무죄가 되더라도 정치적으로는 매장당할 가능성이 높다.

■ 야권도 난장(亂場)정치의 책임 면할 수 없다

모든 범죄 혐의자는 증거가 없는 한 무죄(無罪)로 추정된다는 게 형사소송법의 원칙이다. 무죄추정의 원칙(無罪推定의 原則)이 그것이다. 하지만 지금 성완종 게이트는 이와는 정반대인 ‘유죄 추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거론된 모든 인사들이 성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아먹고 한 통속이 된 범죄자들일 것이라고 국민은 믿는다.

왜 이러는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평소 정치권의 만연한 부정부패’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민은 이 나라 정치계와 고위 공직사회가 썩을 대로 썩었다고 여기고 있다. 이래가지고 이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을 것인가 하는 걱정도 적지 않다. 야당에서는 이번 사건을 오는 4·29 재보선과 내년 총선에 써먹을 호재로 여기고 정치공세에 열을 내고 있지만, 야권도 ‘난장(亂場)정치’의 책임을 결코 면할 수는 없다. 정치권의 부패가 어디 여권에만 해당되는 문제인가?

국민을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한다. 지난 집권 시절에 성완종 회장에게 많은 의문이 제기되는 특혜를 주었는데, 이런 특혜는 그냥 거래 없이 거저 베푼 것인가? 부정한 거래 없이 거저 베푼 특혜였다면 그 이유를 소명해야 한다. 자신은 깨끗한 척하면서 여당과 청와대 공격에 그저 신이 난 모습은 코미디요 나아가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이기도 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당은 물론 야당 쪽도 깊이 자숙하고, 성완종 회장과 관련하여 지난 날 저지른 야합이나 부정한 거래가 있었다면 이번 기회에 스스로 국민 앞에 이실직고해야 한다.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면 야당의 지난날 행적도 어차피 밝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오후 12일간의 중남미 순방을 위해 출국하기 직전 출국시간을 늦추면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급히 만났다. 애초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다. 대통령과 김 대표의 40분에 걸친 이날 회동의 핵심 의제는 ‘성완종 리스트’ 문제였다. 박 대통령은 이 회동에서 “외국 순방 다녀와서 결정하겠다”며 “의혹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는 길이라면 어떤 조치라도 검토할 용의가 있고, 특검 도입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 '성완종 리스트'를 수사중인 검찰 특별수사팀이 15일 오후 서울 답십리동 경남기업 본사에서 압수물품 박스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 성완종 리스트 수사 검찰에 맡기고 민생 챙겨라

이제 박 대통령이 순방을 마치고 돌아올 동안 이완구 총리가 대통령을 대신해 정부를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이 총리는 본인의 강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성 회장으로부터 3천만 원을 받았다는 구설수에 휩싸여 야당은 물론 새누리당에서까지 집중 추궁을 받고 있는 상태다. 대통령의 외유와 만신창이가 된 총리 모습은 국정공백을 예고하고 있다.

지금 나라에는 시급히 처리해야 할 사안이 널려 있다. 당장 국회는 이달 안에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를 매듭지어야 한다. 서비스산업기본법, 관광진흥법, 경제자유구역특별법 등 경제 활성화 관련 법안들도 더는 때를 놓칠 수 없다.

아이 돌봄 서비스 지원과 같은 복지 관련 입법도 논의를 서둘러야 하고 2월 임시국회에서 부결돼 논란을 빚은 어린이집 폐쇄회로(CC) TV 설치 의무화 관련 영유아보육법도 다시 처리해야 한다. 인사청문회를 이미 오래 전에 마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인준 문제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당분간 당?정?청 정책협의를 중단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완구 총리가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상태라 3자가 모이는 것은 괜한 오해와 억측을 부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당장 발등의 불인 4·29 재보선이나 내년 총선에 미칠 득실을 따져 청와대·정부와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관측도 없지 않다. 만일 그렇다면 이는 책임 있는 여당의 자세가 아니다. 누구보다 여당이 이 비상국면을 관리하는 데서 좀 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성완종 리스트 문제는 검찰 수사에 맡기고 민생을 챙겨야 한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썩을 대로 썩은 정치권을 개혁하는 일이다. 정치권 개혁은 말은 쉬우나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치권에 개혁의 칼을 들이대면 그에 대한 ‘썩은 정치인’들의 반발은 가히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수준’일 것이 분명하다.

■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권 개혁하는 일

박 대통령은 세월호 1주기 현안점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이번 기회에 우리 정치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문제가 있는 부분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완전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는 부분을 완전히 밝혀낸다고 해서 정치가 온전해지지는 않는다.

정치개혁 - 이 문제는 반드시 그리고 시급히 이뤄내야 할 시대적 과제이다. 박근혜 정권 또는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이 문제를 이뤄낸다면 그것은 국민소득 3만불 달성이니 복지 선진국이니 하는 것보다 훨씬 빛나는 업적이 될 것이다.

국회의원이라는 직을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하는 개념으로 바꿔 무려 2백여 가지에 이른다는 국회의원의 특혜(특권)를 모두 없애고, 연간 약 1억 4천689만원에 이르는 연봉도 최저임금제에 준해 시급(時給) 5천580원(2015년 기준)으로 대폭 인하하여 회의에 출석한 의원에 한해 일급(日給)으로 지급하며, 보좌 직원 7명, 인턴 2명 등 전체 보좌진 연봉 3억 9천513만원에 대한 전액 국고지원 제도를 없애는 내용으로 개혁해야 한다. 국회의원이라면 보좌진의 도움 없이도 지역구 및 국정 현안을 소화할 수 있는 실력 정도는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이 정부기관의 전문 관료들을 소환해놓고 죄인 다루듯 우격다짐으로 호통치고 따지면서 위세를 부리는 관례도 잘못된 것이다. 누가 국회의원을 수사경찰이나 검사로 임명했는가? 최소한의 인품이나 덕량조차도 갖추지 못한 인간 쓰레기들이 국회의원이 되면 나라가 혼란스러워진다.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이 같은 국회의원들은 인공치하 때 어쩌다가 붉은 완장 하나 얻어 걸친 동내 꼴머슴이 어사또 마패라도 찬 듯 큰소리 쳐대면서 앞뒤 없이 설치는 모양새와 다를 게 없다.  국회를 개혁하는 것이 정치개혁의 시작이다. 국회가 개혁되어야 성완종 게이트 같은 총체적 부패현상과 나라 망신이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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