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신문】 국회를 통과한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국민들의 당초 요구와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내용이다. 6년 후면 현재의 적자 수준으로 돌아가는 개편안에 대해 '개혁' 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개혁의 취지도 살리지 못하고 다수 국민의 뜻도 담지 못한 이번 개혁안은 5~10년쯤 후에 또 한 번 수술을 해야 할 수밖에 없다. 이번 개혁안으로 재정 부담이 실제로 얼마나 줄지도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편집자 주>

▲ 지난달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청년이 만드는 세상 등 관련단체 회원들이 '공무원 연금개혁 파탄, 청년·미래세대 외면한 정치권 각성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연금개혁 파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최대 개혁과제인 공무원연금개혁안이 여야의 줄다리기 끝에 5월29일 새벽 극적으로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필요한 법을 적기에 제정하는 것은 권리 이전에 국회의 중대한 의무다. 공무원연금개혁안은 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여야는 이미 국회의 중대한 의무를 지키지 못했다.

5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을 하루 넘긴 새벽 진통 끝에 간신히 국회를 통과한 공무원연금법 일부 개정법률안은 찬성 233인 기권 13인으로 가결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무원연금개혁 구상을 밝힌 지 1년 3개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대표 발의안 개정안을 제출한지 일곱 달만이다.

4월 임시국회 때 발목을 잡았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문구는 명기하되 적정성과 타당성을 검증하기로 했으며, 막판 최대 쟁점으로 부각되었던 세월호법 시행령 수정 문제는 6월 임시국회 때까지 2단계로 나눠 처리하기로 했다. 또한 야당이 공적연금 불신 초래를 이유로 해임건의안을 내기로 했던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유감 표명과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하도록 했다. 본회의에서는 57건의 민생법안도 처리돼 향후 정국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

5~10년쯤 후 재(再)수술 불가피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개정안의 핵심은 공무원이 내는 보험료율은 인상하고 연금액은 20년 동안 단계적으로 깎는다는 내용이다. 지난 5월 2일 여야가 합의한 대로 내는 돈은 5년에 걸쳐 월 급여의 7%에서 9%로 올리고 연금으로 받는 돈은 '1년치 연금 지급률'을 20년에 걸쳐 1.9%에서 1.7%로 깎는다는 것이다. 연금액은 앞으로 5년간 동결되고 연금지급 연령도 현행 60세에서 65세로 점차 늦춰진다. 이 같은 합의에 대해 청와대도 동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개혁안은 국민들의 당초 요구와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내용이다. 6년 후면 현재의 적자 수준으로 돌아가는 개편안에 대해 ‘개혁’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개혁의 취지도 살리지 못하고 다수 국민의 뜻도 담지 못한 부실한 이번 개혁안은 5~10년쯤 후에 또 한 번 수술을 해야 할 수밖에 없게끔 되어 있다. 이번 개혁안으로 재정 부담이 실제로 얼마나 줄지도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여야는 향후 70년간 공무원연금 지원금을 333조원 줄인 걸 성과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공무원연금 제도를 지금대로 유지하면 70년 동안 1,987조원을 세금으로 지원해야 한다. 여기에서 333조원을 줄인다고 해봐야 1,654조원이나 남는다. 이걸 개혁이라고 부르고 성과라고 내세울 수는 없다. 이번 합의로 공무원연금 지급액이 지금보다 적어진다고 해도 30년 가입자 기준 국민연금의 1.7배에 달한다. 국민은 공무원만 특혜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한다.

정부·여당은 공무원연금의 보험료율?수급액을 장기간에 걸쳐 국민연금 수준에 접근시킨 후 궁극적으론 국민연금과 통합시키는 걸 목표로 했으나 이 목표는 일찌감치 없던 일이 됐다. 명백한 약속 위반이다. 게다가 이번 합의안은 신규 공무원에겐 불리하고 기존 공무원 집단의 이익은 보호해주는 세대간(世代間) 불평등 구조다. 1996년 임용자라면 내는 돈보다 받는 돈(수익비)이 2.35~2.47배에 달하지만 2016년 이후 신규 임용자는 1.42~1.6배에 그치게 설계돼 있다.

연금 지급률도 20년에 걸쳐 서서히 깎기로 정해 40대 이상 공무원들 이익은 보장해줬다. 그래서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신규 공무원에게 바가지 씌우는 악법”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는다. 여야는 이런 부실한 내용의 개편안마저 제때 처리하지 못하고 끝까지 갈팡질팡함으로써 국민들을 또 한 번 실망시켰다. 일부러 국민들의 화를 끓게 하고 마치 그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한 국회 여?야의 무능과 무소신은 어이없는 지경을 넘어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많은 국민은 공무원연금 개편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 이런 국회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당은 갈팡질팡 야당은 연계작전

당초 지난 5월2일 여야가 합의한 개정안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공무원연금 개혁과 전혀 관계없는 국민연금개혁안을 연계한 것이었다. 개혁안에 저항하는 공무원 유관단체의 논리를 야당이 차용했고 이를 여당이 아무 생각 없이 수용했다가 여론의 호된 비판을 초래했다. 그럼에도 한 달 가까이 이어진 후속논의 절차에서 오히려 야당은 기초연금 상향 조정과 세월호법 시행령 폐기,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 등 온갖 현안을 연계해 연금개혁의 본질을 흐려왔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개편안 협상에서 떼를 쓰고 징징거리는 아이처럼 이 조건 저 조건을 번갈아 내걸며 ‘볼모정치’ ‘인질정치’를 구사한다는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국회 선진화법 때문에 소수야당의 합의 없이 여당 단독으로는 어떤 법안도 일방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정부?여당의 처지를 끝까지 악용한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당초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여당이 문서로 약속하지 않는다고 협상 타결을 거부하더니, 다시 법인세 인상을 조건으로 걸고 나왔다. 그리고 다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명기’를 연계하지 않는 대신 ‘기초연금 소득 하위 90% 이상 확대’를 연계하자는 새 제안을 들고 나왔다. 이 문제가 해결되자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번에는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 해임 건의안 카드를 새롭게 들고 나왔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개정을 요구했다.

연금문제 주무장관인 문 장관에 대한 야당의 강한 불만은 이해할 만하다. 그가 “세대간 도적질” “세금폭탄” 등의 자극적 발언으로 연금 협상에 큰 장애를 조성했으며 앞으로도 공적연금 강화 문제를 논의할 사회적 기구 운영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불신이 야당 내에 팽배하다.

복지부장관의 교체는 사회적 기구의 자율성 확보와 대타협의 기본적 전제조건이라는 생각은 그런 불신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럼에도 문 장관 해임안을 상정하지 않으면 공무원연금 개편법안뿐 아니라 스스로 합의한 54개 법안까지 본회의 상정을 막겠다는 야당의 연계는 옹색했다.

새정치연합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에 반대한 문 장관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이렇게 되자 일각에서는 새정치연합이 공무원연금을 개혁한다면서 국민연금에다 기초연금까지 끌어들였다가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자 바른 소리를 한 주무장관에게 화풀이하는 격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왔다.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하려면 국민연금 보험료를 3.5~4%포인트 올려야 한다는 그의 국회답변은 장관으로서, 연금 전문가로서 충분히 밝힐 수 있고, 또 올바른 견해였다. 보험료 1%포인트 인상으로 가능하다는 야당 주장에 ‘은폐마케팅’이라고 받아친 게 괘씸죄에 걸린 모양이었다.

주무장관의 소신이 향후 국민연금 개편에서 가시처럼 비치자 입을 원천봉쇄하겠다는 뻔한 ‘공포전략’으로도 보였다. 하지만 진실을 말한 게 해임의 사유가 될 수는 없었다. 여론은 공무원연금 개편안을 무조건 막아야 한다거나 무조건 처리하라는 게 아니었다. 반대를 해도 최소한의 논리는 갖춰야 생떼란 비판을 면한다.

특수신분 기득권 보호 틀 깨지 못했다

이번 공무원연금 개편안 협상 및 국회 본회의 통과 과정에서 여당 역시 적잖은 잘못을 저질렀다. 야당과 합의를 해놓고도 여당은 번번이 청와대가 안 된다고 하면 그때마다 말을 바꾸면서 파행을 자초했다. 개혁에 성공하려면 집권세력이 정권을 잃더라도 필요한 일을 하겠다는 용기와 의지가 있어야 한다. 여당이 구걸하듯 야당에 질질 끌려다닌 행태도 문제였다. 공무원연금은 현재뿐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 가능하지 못하기 때문에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을 수 없다는 본질적 문제는 망각하고 오직 국회 처리에만 급급한 모양새였다.

공무원연금은 1960년 도입됐다. 당시엔 박봉의 공무원들을 국가 발전의 주축 세력으로 삼기 위해 '적게 내고 많이 받는' 후한 연금 제도를 설계했다. 그러나 지금은 공무원이 일반 회사원보다 평균 급여가 적다고 할 수 없다. 정년 보장?신분 보장 등 직업 안정성은 비교할 수 없이 높다. 50년 전에 비해 평균 수명은 20년 이상 늘어났다. 공무원연금은 이미 1993년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바뀐 경제 구조와 사회 상황을 반영해 공무원연금을 진작에 뜯어고쳤어야 했다. 그러나 공무원 특수신분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틀은 이번에도 고치지 못했다.

국민 세금으로 부담하는 공무원연금 적자 보전액은 올해 2조9000억원에서 당분간 줄었다가 2021년 다시 3조원 규모로 늘어난다. 5~10년 후 재(再)수술하는 수밖에 없는 ‘절반의 개혁’을 하려고 정부와 여?야가 그 소동을 벌였던가?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가 미래가 걸린 중대한 현안을 다루면서 소신도 비전도 내팽개치고 자존심이나 살리고 체면치례나 하려는 행태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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