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환 논설실장
【의회신문=김영환 논설실장】아주 오래 전 지인의 건물에서 소방 점검 현장을 보았다. 점검반은 우선 지인에게 문서를 주며 읽어보고 서명하시라고 했다. 뇌물을 받지 않는다는 요지의 청렴 서약이었다. 119로 상징되는 소방서는 온갖 재난의 현장에 뛰어들어 목숨을 걸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구하는 용감한 사람들이다. 용기와 희망을 주는 공직을 부패의 오염에서 차단하겠다는 결의가 존경스러웠다.

많은 정권들이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해왔지만 부패는 끝이 없다. 대형사고는 늘 부패 속에 자란 악의 꽃망울이 터진 것이었다. 1995년 6월 502명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도, 작년 세월호 침몰도 공직자의 부패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회장의 데스노트에 거명돼 부정한 정치자금 의혹으로 국무총리직을 63일 만에 사임한 이완구 의원의 총리 취임 일성은 ‘부패와의 전쟁’이었다. 그러나 그 자신이 부패의 타깃이 되었다. 지역구 정치인들은 돈의 용처가 많으니 크건 작건 유혹에 노출된다. 4.29 재보선에서 성완종 리스트는 큰 이슈였지만 야당에게 최대의 호재는커녕 부메랑처럼 돌아와 ‘문재인 전패’가 되었다. 유권자의 뇌리에는 ‘너희 중에 돈 먹지 않은 자가 있으면 돌로 치라’는 생각도 맴돌고 있었을 것이다.

여당 대표의 말처럼 총리 재직 시 건설업자로부터 9억원대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1심 무죄와는 반대로 2014년 9월 2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과 8억원대 추징금을 선고받은 전 국무총리 한명숙 의원이 당의 아무 조치 없이 국회의원을 하고 있다는 것이 재보선 기간 중 재삼 환기되었다. 새정연이 이 사건을 맡은 대법원 제2부의 결원을 충원할 대법관 임명 동의에 미적댄 것도 이 재판을 지연시키려 한다는 의혹을 받았다. 19대 의원의 남은 임기는 고작 10개월. 대법원 확정판결까지의 무죄추정 원칙은 자파만이 아니라 남에게도 지켜져야 한다.

지난 5월23일은 고 노무현대통령 서거 6주기였다. 그는 퇴임 후에 밀짚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타는 서민적 풍모를 보였다. 마지막 가는 길을 찍은 CCTV에선 잡초 뽑는 모습도 보여 줘 과연 자살일까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이날 추도사에서 아들 노건호 씨는 “권력이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비난하면서 여당 대표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인간 노무현은 언변과 순발력이 탁월했다. “그럼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며 부역한 장인의 공격에 반격했다. 그런가 하면 통기타를 들고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라는 ‘상록수’노래를 불러 다감하기도 했다. 강인하게 보였던 그에게 뇌물 의혹 수사는 이유를 우리가 모르는 자살로 ‘공소권 없음’으로 덮였다. 일가의 생계형 범죄라는 옹호도 있었다. 최근 극우단체는 노건호 씨가 억울하다고 하니 뇌물의혹사건을 재수사하라고 촉구하는 의견광고를 일간지에 냈다.

국제투명성기구는 2013년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집단을 정당, 경찰, 공무원 순으로 꼽았다. 2013년도 한국의 국가청렴도(CPI: 부패인식지수)는 100점 만점에 55점으로 177개국 중 46위, OECD 34개국에서는 27위였다. 각종 공직 선거는 부패한 자들을 골라낼 기회이지만 우리는 비민주적인 정당 공천 구조와 지역과 혈연, 학연이 얽힌 전근대적 투표 행태, 부패 범죄자에 대한 사면복권 악습이 지속가능한 부패 구조를 이어지게 해왔다.

뇌물로 세금을 훨씬 많이 줄이고 특혜를 얻으려는 이기적인 공세에 국가 재정에 구멍은 내지만 공짜로 호주머니를 불리려는 공직자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부패가 끊임없이 발생한다, 지하경제를 없앤다면서도 금융실명제가 무색하게 수표 발행에 돈이 든다며 뇌물의 배달과 은닉, 범죄 수익의 퇴장이 용이한 5만원권을 찍어내게 한 것은 물론, 사회가 투명해지는 신용카드 사용의 세제 혜택을 축소한 것도 부패청산과 배치된다.

특히 최근 육해공군에서 적발된 수천억원대의 국방무기 관련 부패는 이 나라가 휴전 중임을 망각한 어이없는 군의 모습이다. 국가안보 사범으로 척결해야할 중범죄다. 특전사에 불량 방탄복, 공군에 불량 미사일 전자 장비를 조달하고, 해군에 불량 헬기와 불량 음파탐지를 납품하면 어떻게 호전광인 북한군과 대적하겠다는 것인가.

뇌물에는 공짜가 없다는 것을 범죄자들이 통절하게 느끼도록 엄벌해야 함에도 감사원, 국세청, 검사 등 ‘갑 중의 갑’인 유력자들이 받은 분에 넘치는 향응은 매스컴에만 요란할 뿐 마지막에 검찰이 무혐의로 종결할 땐 국민들의 마음이 허탈하다. 민초들의 부정부패 감각과는 너무 다르기 때문에.

이래선 선진국이 못 된다. 부패와의 전쟁은 모든 공공기관이 참여해야 하며 개선된 자정 실적을 주기적으로 내놔야 한다. 국민들은 국회가 쏙 빠지고 마지못해 만든 김영란법에 기대를 걸어보지만 그것도 안 되면 노무현의 염원이었던 공직부패수사처를 만들어 고위공직자의 부정을 수사하고 기소해야 한다. 검찰의 기소독점에 견제와 균형을 적용하면서…. 야당의 핵심 축인 친노 인사들은 입으로만 ‘친노’할 게 아니다. 그가 못 넘은 현실의 벽을 알아야 한다. 물론 그런 마지막 방법이 필요 없도록 ‘나는 자부심으로 부정부패를 용납하지 않는다’라는 양심의 행동지침이 모든 공직자들에게 조속히 뿌리내리면 좋겠다, 부정이 횡행하는 오늘의 정치와 공직자들을 보며 옛 소방서의 청렴 서약이 다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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