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행산 주필
【의회신문=정행산 주필】북한은 한국경제의 신성장 동력이고 북방경제의 통과지점이다.‘통일 대박론’이 바로 그런 의미다. 하지만 북한이 화해 제스처를 보이고 대화를 제의할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가뜩이나 식량난으로 허덕이는 북한지역에 가뭄이 장기화되면서 비상이 걸렸다. 조선중앙TV는 지난 6월11일 "평안남북도와 황해도 등 곡창지대들과 여러 지역에서 비가 내리지 않거나 기상관측 이래 제일 적은 비가 내렸다"고 보도했다.

남한지역 역시 소양강댐의 수위가 준공 후 최저치에 근접했고 충주댐도 사상 최저수준에 이르렀지만, 북한지역의 가뭄 여파는 남한과는 그 양상이 질적으로 다르다. 북한은 지난해 ‘100년 만의 왕가뭄’을 겪었다. 그리고 올해에도 기상관측 이래 두 번째 가뭄이 장기화하고 있다. 북한의 올해 식량 생산은 최소 20% 이상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한다. 무려 3백만 명의 생목숨이 굶어죽은 1990년대 말의 끔찍한 ‘고난의 행군’이 자칫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굶주린 짐승처럼 ‘한 그릇의 밥’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탈북하는 주민들이 늘어나는 이 기막힌 현상을 어찌 자연재해의 탓이라고만 할 것인가.

중국 정부는 지난 18일 북한에 위로를 전하며 “식량 원조를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물론 우리도 지원해줄 태세가 되어 있다. 하지만 북한의 식량난은 국제사회가 도와준다 해도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다. 지금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은 숙명 같은 것이 된지 오래다. 북한 주민의 만성적인 굶주림과 ‘고난의 행진’은 남북이 통일되기 전에는 해결될 수 없다. ‘통일’은 우리에게만 ‘대박’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에게도 대박 이상의 유일한 ‘생명줄’이다.

북한당국이 가뭄사태에 위기를 느꼈는지 6·15 공동선언 15주년을 맞아 “대화와 협상을 개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다가섰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대화와 협상이 성사될 기미가 보이면 거기에 응해주는 대가로 한 몫 챙기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북한은 대화와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단, 교류ㆍ협력을 가로막는 법적ㆍ제도적 장치 철폐 등 한국 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안들을 내걸었다. 성사가 될 것 같으면 식량지원 등을 얻어내고, 불발되면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소재를 둘러싼 남남갈등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계산이다.

물론 남북관계가 ‘안정적 평화’로 가지 못하고 ‘위태로운 평화’로 가고 있는 오늘의 상황을 북한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 대박론’ 이후 확산되던 남북화해와 통일열망이 후속조치 부재로 다시 저하된 사실을 되짚어봐야 한다. 북한은 한국경제의 신성장 동력이고 북방경제의 통과 지점이다. ‘통일 대박론’이 바로 그런 의미다. 하지만 북한이 화해 제스처를 보이고 대화를 제의할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는 주장이 정설로 굳어진 현실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남북화해⋅협력과 통일논의마저도 늘 음모를 깔고 꼼수로 접근하는 북한의 진정성 없는 행태가 대화와 협력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북한이 사실상 대화와 협상을 제의해온 지금이야말로 4차 핵실험이나 다른 대남도발을 해올 가능성이 높은 때라는 우려가 팽배하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대화와 협력은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현실을 냉철한 사고로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작권자 © 의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