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분사유 제시의 필요성

▲이민정 변호사
【의회신문=이민정 변호사】행정청이 어떠한 처분을 할 때 처분의 근거와 이유를 제시해야 합니다. 처분을 받게 된 당사자의 입장에서 어떠한 이유에서 그와 같은 처분이 이루어진 것인지를 알아야만 해당 처분에 대하여 수긍하거나, 아니면 처분에 대하여 구체적인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처분근거와 이유 제시는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리고 이때의 처분의 이유 제시정도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당사자로 하여금 실질적인 처분의 이유를 제시하여 처분의 당부를 다툴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그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행정절차법 제3조 제2항 제9호에서 행정절차법의 적용대상에서 출입국 행정을 제외하고 있으므로 출입국 행정에 있어서는 일반 행정절차에서는 당연히 준수해야 하는 행정절차규정을 준수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소송 중에는 출입국관리사무소 측에서 부당한 행정절차의 진행에 대하여 위 조항을 근거로 면책을 주장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나 출입국행정의 특수성으로 인해 준수될 수 없는 사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한 무조건 적으로 위 규정을 근거로 해서 행정절차법에서 요구하는 규정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할 것이고, 법원에서도 출입국 행정에 있어 처분사유와 근거 제시와 관련하여서는 일반 행정 작용과 같은 기준에서 처분의 적법여부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실무 역시 출국명령이나 강제퇴거명령과 같은 특정한 행정처분을 함에 있어서는 처분서 상에 그 처분의 근거가 되는 법률과 처분의 이유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처분사유의 추가의 문제

한편 최초 처분 당시에는 구체적인 처분사유로 삼지 않았던 것을 차후에 새로운 처분사유로 추가할 수 있느냐가 소송 진행 중 종종 다투어집니다. 법적 안정성과 당사자의 신뢰보호라는 측면에서 갑작스럽게 처분사유를 변경하거나 추가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차피 여러 가지 처분사유가 존재하고 있다면 이를 하나의 소송에서 판단 받는 것이 행정 효율성이나 소송경제면에서 이익이 될 수 있으므로 비록 최초에 언급되지 않았던 사유라고 하더라도 차후에 새로운 처분사유를 제시하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입장도 제기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이른바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을 기준으로 하여 처분사유의 추가나 변경이 가능한 범위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의 의미에 대하여 대법원은 ‘처분사유를 법률적으로 평가하기 이전의 구체적 사실에 착안하여 그 기초인 사회적 사실관계가 기본적인 점에서 동일한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법률 및 대법원의 판례에 의할 때 행정청에서 최초 처분사유를 제시하였다가 이후 소송 중에 처분사유를 추가하거나 변경하는 것은 변경되거나 추가되는 사유가 최초 처분사유와 기본적 사실관계에 있어 동일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서이고,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 있어서는 처분사유의 추가나 변경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할 것입니다.

◇일반조항으로 회피 또는 구체적인 처분사유의 미기재

출국명령이나 강제퇴거명령과 같은 출입국행정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출입국관리사무소나 법무부 측에서 최초 처분의 중요한 근거로 주장하였던 사실관계나 법률관계가 타당하지 않음이 밝혀지자 새로운 내용을 처분사유로 주장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이때는 과연 최초 처분사유와 기본적인 동일성이 인정될 것인지가 검토되어야 하는데, 문제는 최초 처분서 상에 기재된 처분사유가 구체적이지 못하고 불분명하게 기재되어 있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처분의 근거 법률조항 마저 구체적으로 기재하지 않고 수개의 조문이 포함된 포괄적인 규정만을 적시해 놓았다가, 소송 진행 과정에서 최초 제시되었던 사유와 다른 사유를 주장하면서 이 역시 최초 주장하였던 사유와 함께 처분사유를 구성하였던 내용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처분의 근거와 이유를 막연히 추상적으로만 제시한 다음, 처분의 상대방으로서는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개별적인 처분사유도 그 처분 사유에 포함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행정의 신의성실이나 신뢰보호 원칙에 비추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행정청인 출입국관리사무소나 법무부에서 출국명령이나 강제퇴거명령 처분 당시 구체적인 처분사유와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당사자가 해당 처분에 대해 수긍하거나, 설사 수긍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위 사유를 가지고 구체적인 이의를 제기 할 수 있게 되고, 이는 결국 출입국행정 사무 전체에 대한 신뢰를 제고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한 방향이라 할 것입니다.

또한 사법적 심사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구체적인 처분사유를 제시하지 않고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법 규정만을 적시해 놓았다가 뒤늦게 새로운 사유를 주장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오히려 처음부터 명확하고 구체적인 처분사유를 기재한 경우보다 행정청에게 유리하게 되어 잘못된 행정관행을 양산하게 된다는 점에서 처분사유의 변경이나 추가와 관련하여서는 엄격한 사법적 심사가 요구된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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