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행산 주필
【의회신문=정행산 주필】기부포비(飢附飽飛)라는 단어는 당나라 시인 고적(高適)의 시(詩)에 나온다. ‘배가 고플 때는 제 살이라도 베어줄 것처럼 아첨을 떨며 착 달라붙다가 배를 채우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얼굴색 싹 바꾸고 해코지까지 한 후 도망치는 서융(西戎⋅중국 서쪽 변방의 오랑캐)같은 자’를 지칭하는 뜻의 사자성어다.

기부포비(飢附飽飛)라는 사자성어의 뜻이 어쩌면 이리도 북한 김정은 집단의 하는 짓과 딱 들어맞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북한 김정은 집단은 서융(西戎)이라기보다는 북적(北狄⋅북쪽 변방의 오랑캐)에 해당된다.

북의 목함지뢰 도발로 남북 간에 군사적 대치상황이 벌어지자 다급해진 북측이 먼저 대화를 제안했다. 북측 대표로 나온 황병서와 김양건은 늘 하던 대로라면 억지부터 부리며 겁박을 하다가 여차하면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야 제격이었다. 그리고는 ‘불바다’ 운운 하면서 대남 해코지를 하는 게 그들의 정해진 수순이다.

그러면 한국 정부는 ‘화해’와 ‘인도주의’와 ‘동포애’ 차원이라며 식량과 비료와 달러를 보내주고 자잘한 생활용품까지 알뜰하게 챙겨 보내주기도 했다. 이게 지금까지의 ‘남북화해 협력의 정석’이었다.

이번 지뢰도발에 따른 남북 고위급 접촉은 무박 4일 밤을 새워가면서 협상이 이어진 끝에 25일 6개 합의사항을 담은 공동보도문이 나왔다. 이번 합의에서 핵심은 북측이 자신들의 소행인 지뢰도발에 대해 사과를 했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번 합의는 박근혜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이 사실상 주도했다. 그러나 합의문 어디에도 지뢰도발이 북의 소행이라거나 사과한다는 표현은 없었다. 그저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고 돼 있을 뿐이다.

문면상으로 보면 북의 유감 표명은 마치 제3자가 병문안이나 초상집에 문상 가서 “안타깝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북 집단의 잘못된 버르장머리를 근본적으로 고쳐놓을 절호의 기회를 놓친 셈이다.

정상회담까지도 뒷돈 찔러주고 구걸해 성사시켰던 대한민국을 만만하게 본 저들은 이번에도 ‘전쟁’을 협박했다. 만약 전면전이 일어나면 그 전쟁은 김정은 정권을 24시간 안에 지상에서 흔적도 없이 ‘청소’해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북한의 무기 80% 이상이 낡고 고장나 쓸모없는 고철덩어리라는 사실, 한미연합전력이 전쟁개시 수십 분 안에 미사일 사정권 밖에서 김정은 집무실의 창문을 정확하게 뚫고 들어가 김정은과 건물 지하 수십 미터까지 설거지해버릴 수 있다는 사실, 휴전선에 전진 배치된 북의 장사정포 등도 핵미사일을 탑재한 미국의 B-52 스텔스 전략폭격기에 의해 30분 이내에 모조리 ‘벌초’당할 수 있다는 사실 등은 김정은이 더 잘 알고 있다.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을 통해 북측은 저들이 얻고자 한 것을 다 얻었다. 우리는 무엇을 얻었는가? 아무 것도 얻은 게 없다. 우리의 두 젊은 장병들이 두 다리를 잃고 그 소중한 인생이 바뀌게 됐을 뿐이다.

얻을 것 다 얻어 배를 채우고 평양으로 돌아간 황병서는 당일 조선중앙TV에 나타나 “남조선 당국은 근거 없는 사건을 만들어가지고 일방적인 행동으로 상대측을 자극했다”는 요지로 한국 정부를 비난했다. “빈손으로 돌아가면 나는 죽는다”며 애걸하던 황병서야말로 기부포비(飢附飽飛) 그대로가 아닐 수 없다.

그렇잖아도 이미 파산지경에 빠진 북한의 경제사정은 지금 중국⋅러시아⋅일본⋅한국 어느 나라의 지원도 받지 못해 ‘전쟁’은커녕 당장 숨이 넘어갈 지경이다. 식량은 부족한데다 지난 봄 ‘1백년만의 가뭄’까지 겹쳤다. 기름이 바닥나 군용차량의 운행까지 통제하고 있고, 전력(電力)난으로 대부분의 공장이 가동을 멈췄다.

북한은 이제 ‘금강산 관광 재개’로 달러를 챙기고 남북협상의 물꼬를 터 되지도 않은 강온 양면전술을 구사하면서 식량을 지원받는 일에 목을 맬 차례다. 이번 공동보도문에는 ‘다양한 분야에서의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했다’고 명시돼 있다.

벌써 통일부는 26일 5⋅24 대북 제재조치 해제 등을 향후 남북 당국간 회담에서 다룰 수 있다고 밝혔다. 대단히 부적절한 언급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정부는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남북교류를 본격화하려면 반드시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 창피스러운 북한을 상대로 또다시 헛발질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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