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신문】여성의 몸을 다룬 섹슈얼리티 작품들로 가득 찼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시아' 전이다.

2층에서 시작하는 전시는 입구부터 뜨겁다. 이 전시 참여작가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장파(33)의 작품에서는 섹슈얼리티가 넘친다. 시립미술관 측이 '관람객들이 항의하지 않을까 걱정했다'는 작품은 나무와 일체가 된 여성을 핏빛 선홍색의 달필로 그렸다. 그로테스크한 섹시미를 분출한다.

전시장 구석에 자리잡은 정금형(35)의 비디오 '문방구'도 후끈하다. '19금' 코드지만 참을수 없는 성적 가벼움을 유머스럽게 전한다. '에로 만화' 같기도 하지만 끈적임보다는 작가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한다. 정 작가는 퍼포먼스도 선보인다. '휘트니스 가이드'를 제목으로 관객들에 둘러싸여 운동기구들과 유사 성행위를 들추며 성의 개념을 해체한다. '남자 사람 얼굴' 조각이 운동기구들에 붙어 작가가 움직일때마다 함께 반응하는 우스운 모습을 보이지만 작가의 행위가 너무 진지해 관객들은 숨죽여 볼 수밖에 없다.

▲ 치하루 시오타 '더 월(the wall)' 비디오 퍼포먼스
정금형보다 12세 더 많은 일본의 대표적인 여성작가 치하루 시오타는 진지하고 무겁다. 이번 전시에 가장 많은 자금이 투입됐다는 작품은 '검은 거미줄' 속으로 들어온 것 같다. 10명이 동원돼 100시간의 밀도 높은 노동으로 만들어진 설치작업은 순백색 드레스가 거미줄에 쳐진 듯 감싸져 있다. 여성의 부재와 억압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을 지나면 시오타의 비디오 퍼포먼스가 영상으로 보여진다. 벌거벗은 여성이 얽히고설킨 붉은줄에 싸여 꿈틀거린다.

한국 전통의 분채화법과 세필화를 화폭에 담아낸 이진주(35)는 섹스의 환각과 관음증적 강박을 언캐니(uncanny)로 내면화한다. 반 나체의 여인이 시체나 망령에서 느껴지는 불안과 공포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장남자의 쇼같은 영상도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 참여작가 중 유일한 남성인 싱가포르 출신 밍웡은 동성애, 성전환, 변태등 성적 결정론을 거부하는 극단적 페미니즘의 수호자다. 그는 여장을 한 채 '아름다움의 의미'를 묻는다. 사진과 영상으로 선보이는 작품은 트랜스젠더 가수의 삶을 기록해 정형화된 미의 개념을 따진다.

'페미니즘'을 제목으로 단 전시는 의외의 반응으로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는게 시립미술관의 설명이다. 지난 1월 김모군이 이슬람 무장단체 IS로 가면서 '페미니스트가 싫다', '지금은 남성이 차별받는 시대' 같은 내용의 글을 남긴 사실이 알려지면서 페미니즘이 새삼 부각돼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온라인에서는 여성혐오, 이른바 '여혐'논쟁이 뜨겁다. '김치녀' '된장녀'는 여혐의 대표 비하 단어다. 페미니즘은 평등하지 않다는 주장이 세다. 하지만 그래도 여성이 아직까지 받는 차별이 더 많다는게 여성들의 주장이다.

▲ 장파, 낮의 유령들을 위한 드로잉
이러한 맥락에서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시아' 전은 페미니즘을 넘어서 양성평등까지 아우른다. 실제로 19세기 중반에 시작된 페미니즘은 '자유주의'다. 성 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시각 때문에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는 여성해방 이데올로기로 페미니즘에서 문제삼는 것은 생물학적인 성(sex)이 아니라 사회적인 성(gender)이다.

'포스트 뮤지엄'을 주창하는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1970년대 페미니즘이 여성주권을 높이자는 운동이었다면 현재는 가부장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내포하는 젠더 문제 등으로 옮겨지고 있다"며 페미니즘을 화두로 삼은 전시를 설명했다. "포스트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의 단독 범주였던 여성을 계급, 인종, 섹슈얼리티, 지역등 다른 탈중심 문화와 교차시키며 페미니즘의 지평을 확장시키고 있다"는 부연이다.

전시 작품은 섹시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사회적, 성적 차이의 중요성과 시각문화의 재현적 코드에 주목한다. 판타지와 아시아의 합성어인 '판타시아'(FANTasia)를 제목으로 단 이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처음 열리는 국제여성전이다.

한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등 7개국 작가 14명의 작품 50여점이 소개됐다.

아시아 여성의 공동체적인 경험을 재현한 전시는 편협한 세상에 대한 도전이자,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이분법을 애매하게 만든다. 아시아 여성 작가들을 위한 탈국가적 담론을 생성하는 전시는 중국으로 확장된다. 전시 참여작가 중 7명은 연말 중국 광둥미술관에서 열리는 제1회 아시아 비엔날레에 참여할 예정이다. 전시는 11월8일까지 계속된다.

저작권자 © 의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