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하는 이유
이용섭 전 행정자치부장관

 

▲ 이용섭 전 행정자치부장관
【의회신문】많은 국민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곧게 살아가는 것은 역사가 주는 교훈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은 안중근으로부터 정의감과 충성심을 배우고 이완용으로부터 역사적 교훈을 얻는다. 역사는 이념의 문제나 정치적 이해관계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사실 그대로 기술하고 권선징악의 교육이 이루어질 때 사회는 발전하고 우리에게 새로운 미래가 열리는 것이다.

내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첫 번째 이유는 역사가 왜곡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집필에서 편찬, 수정, 개편까지 정부 뜻대로 하겠다는 것으로 역사 ‘독점화’이다.

박근혜정권은 숙명적으로 대한민국 근현대사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결국 일제나 유신정권으로부터 특혜를 입었거나 민주화 과정에 부정적인 사람들이 주도하는 국정화 작업은 친일과 독재를 미화시키는데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정화를 역사 쿠데타라고 부르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 내용이 정권입맛에 맞게 변질된다면 정권홍보물이지 역사교과서라고 할 수 없다.

앞으로 새 정권이 들어와 검정체제로 되돌리거나 다음 정권이 역사교과서 내용을 또 바꾸면 그 혼란과 비용은 어찌 감당해야 하는가?

둘째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은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가 경쟁력을 추락시키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은 글로벌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통합을 바탕으로 피나는 혁신을 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국민들을 역사논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다.

나는 박근혜정부가 출범할 때 이미 이런 상황을 예견했다. 그래서 출범 첫해인 2013년 6월 개최된 임시국회 본회의 질의에서 당시 정홍원 총리에게 박근혜정부가 성공하려면 임기 중 가장 경계해야 될 것이 ‘역사왜곡과 역사뒤집기’라고 지적하고 이념 논쟁을 멀리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지금 우리사회는 ‘역사 바꾸기 세력’과 ‘역사 지키기 세력’ 간의 분열과 갈등으로 사회는 혼란스럽고 국정과제들은 뒷전으로 물러나 있다. 이렇게 가면 결국은 또 한 사람의 불행한 대통령이 탄생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셋째,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은 헌법정신에 위배되고 시대흐름에도 역행하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지금의 교과서 검정제는 민주시민들이 투쟁과 희생으로 확보한 민주화의 산물이다. 일제강점기 때도 검정제로 발행되었던 역사교과서를 유신시절의 국정화로 되돌려서는 안된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 없는 일방적인 국정화 밀어붙이기는 반민주적 폭거이다. 세계에서 국정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북한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몽골 등 일부 후진국에 한정되어 있다.

역사교과서에 정부개입이 배제되어야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에 강하게 대응할 수 있고 국제사회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

무엇이 해결책일까? 정부 주장대로 지금의 역사교과서 내용 중 일부가 편향성을 가지고 있다면 사회적 논의를 거쳐 수정하면 될 일이지, 국정교과서로 퇴행할 일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행여 일부 언론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내년 총선에서 보수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한 목적이 있다면 역사와 국민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정부가 지금 할 일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이 아니라 추락하는 경제를 살리고 재정위기와 가계부채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고 밀어붙여지는 그런 수준이 아님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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