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백강 역사학박사 <민족문화연구원장>

▲ 심백강 원장
【의회신문】송나라 때 사마광은 중국역사를 정치사적 입장에서 통틀어 조감한 '자치통감'을 저술했다. 모택동이 평생을 머리맡에 두고 즐겨 읽었다는 바로 그 책이다. '자치통감'은 삼국시대를 기술하면서 조조에게 정통을 주었다. 그런데 주희는 사마광과 견해를 달리했다. 삼국시대의 정통은 조조가 아니라 유비에게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통감강목'이라는 책을 따로 저술하여 사마광과 다른 자신의 역사관을 피력했다.

사마광의 역사관은 현실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당시 유비, 손권, 조조 중에 실질적으로 삼국시대를 대표한 세력은 조조였다고 본 것이다. 반면 주희의 역사관은 전통적 의리에 기초했다. 유비가 현실적 세력 면에서 조조에게 뒤졌지만 의리적으로 볼 때 한나라 황실의 후손인 유비에게 삼국시대의 정통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실에서의 실질적 세력을 기준으로 판단한 사마광의 역사관은 진보적 사관에 해당하고 의리상의 정통성을 바탕으로 판단한 주희의 역사관은 보수적 사관에 해당한다. 역사상에서 ‘통감강목’적 주희의 역사관과 ‘자치통감’적 사마광의 역사관은 아울러 존중되었다. 이는 역사란 다양한 견해의 성립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현재 한국사회는 이념갈등이 그 어느 사회보다도 심각하다. 그 원인은 한쪽의 역사관만 고집하고 다양한 역사관을 인정하지 않는데 있다. 그러다보니 좌우정권에 따라서 교과서 내용이 바뀌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진다. 정권은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변화 발전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사교과서가 거기에 덩달아 춤을 춘다면 한 나라의 국사교육이 뭐가 되겠는가.

현행 국사교과서의 현대사 기술에서 특히 쟁점으로 부각되는 부분은 북한에 대한 평가, 5.16에 대한 인식,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 등이다. 일제의 식민 지배가 광복 후 남한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됐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을 두고도 의견이 크게 갈린다.

그러나 좌편향이 문제가 있다고 해서 다시 우편향으로 가는 것은 결코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우리는 진정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어야 하는데 올바른 역사교과서란 다양한 시각을 인정하고 좌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교과서를 말한다.

이런 공정한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집필진 구성이다. 교과서 집필은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연구 성과를 공정한 시각에서 잘 집약 정리하면 된다. 예컨대 현실 세력을 기초로 조조에게 정통을 준 사마광의 진보적 역사관과 전통상의 의리를 바탕으로 유비에게 정통을 준 주희의 보수적 역사관을 편견 없이 요약정리해 주는 것이 교과서 집필자가 할일이다.

따라서 이념의 편향성을 극복하기 위해 집필진 구성에서 극좌와 극우는 의당 배제되어야한다. 집필진에 극좌, 극우는 참여를 안 시키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심사위원에는 포함시키는 것이 유리하다. 왜냐하면 그들 양측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서 그것을 공정한 시각으로 반영해야 할 책무가 올바른 역사교과서에 있기 때문이다.

국사교과서 개편은 올바른 역사를 편찬하는데 목적이 있다. 국정이냐 검정이냐는 방법론상의 문제이지 본질이 아니다. 그런데 국사교과서 논쟁이 본질을 벗어나 방법론을 가지고 뜨거운 정치 쟁점화 된 것은 우리 사회의 미숙한 단면을 보여준 것이다.

이번 역사교과서 문제는 잘하면 박근혜정부의 최대 치적이 될 것이고 잘 못하면 최대 악재가 될 것이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화살은 활시위를 떠난 상태다. 국사교과서 개편은 여야가 정치적 손익을 계산하면 성공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역사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이 국가적 대과업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정부와 여야, 학계 그리고 국민이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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