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신문】 지난 19일 대구 동구을에서 총선 출마를 선언한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새누리당 친박(親朴)계 인사들이 대거 출동해 눈길을 끌었다. 이곳은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지역구다.

이재만 전 청장은 "배신의 정치를 심판하겠다"며 유승민 의원과의 정면 대결을 선언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월25일 국무회의에서 당시 유승민 원내대표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야 한다”고 발언한 이래 기회 있을 때마다 국정에 비협조적인 정치인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판을 촉구해왔다.

이날 선거사무소 개소식에는 홍문종 의원, 조원진 원내 수석부대표, 이장우 대변인 등이 참석했고 이인제 최고위원과 윤상현 의원은 축전을 대신 보냈다고 한다. 평소에 이렇다 할 친분도 없었던 정치신인의 본선 출정식도 아닌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친박계 핵심들이 우르르 몰려간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심중을 받들어 내년 4월 총선에서 유승민 의원을 떨어뜨리기 위한 포석이라고 한다.

선거에 출마한 자기 당 후보자를 격려하고 응원하기 위해 찾아간 예는 흔하지만, 대통령이 싫어하는 인사라고 해서 그런 자기 당 후보자의 출마를 훼방 놓기 위해 당 중진들이 떼를 지어 찾아가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이 대통령의 홍위병 노릇을 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우리 정치가 이 정도의 수준밖에 되지 않았던가? 한심하고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날 홍문종 의원은 축사에서 "대통령을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도와드려야 하는데 국회가 말을 듣지 않는다." 며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 달라는 대통령과 일할 사람은 이재만이다"라고 했다. 조원진 의원은 유승민 의원을 염두에 두는 듯 "박 대통령을 잘 도우라는 대구 시민의 천명을 따르지 못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정치인들이 이런 행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 내년 4⋅13 총선은 대통령을 돕는 말 잘 듣는 '대통령 비서관'을 뽑는 선거가 아니다. 더욱이 대통령 눈 밖에 난 자기 당 소속 인사를 떨어뜨리기 위해 친박계 의원들이 상대 경선후보로 나선, 평소 친분도 없었던 정치 신인의 사무소 개소식에 몰려가 너도나도 대통령이 했던 말을 되풀이하는 행태는 민망하기까지 하다.

친박계 핵심들은 벌써부터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지역에서 전략공천을 통한 대대적인 물갈이 의지를 피력해왔다. 지난 여름 국회법개정안 파문으로 원내 대표직에서 밀려난 유 의원뿐만 아니라 그와 가까운 의원들까지 공천에서 배제하고 대통령의 뜻에 고분고분 충실히 따를 인사들을 대거 20대 국회에 진출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여당이 대통령의 뜻과 엇나가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대통령과 한 때 견해를 달리 했다고 해서 자기 당 전 원내대표를 “떨어뜨리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드는 모습은 보기에 좋지 않다.

도대체 우리 국회, 특히 여당이 언제부터 이처럼 대통령의 눈치나 살피면서 대통령의 뜻이나 충실히 받드는 하부기관으로 전락했는가? 여당 내의 친박계는 국회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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