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행산 주필
【의회신문=정행산 주필】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산업활동 동향'을 보면 우리 경제가 그야말로 절벽 앞에 서 있음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생산·소비·투자·수출 등 실물부문이 모두 내리막이고 경제심리 지표도 뚝 떨어졌다. 1월 중 산업생산은 전달에 비해 1.2% 줄어들었고 설비투자는 6% 감소했다.

소비 회복력을 보여 주는 소매판매(-1.4%)도 줄었고, 공장 가동률(72.6%)은 글로벌 경제위기 당시 수준이다. 수출 역시 날개가 꺾인 지 이미 오래다. 2월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2% 줄어 역대 최장인 14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다. 지난해엔 수출 부진 속에서도 내수가 버텨줬지만 수출 의존도가 큰 경제구조다 보니 수출의 장기 침체는 국내 경기 전반에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기업들의 체감경기를 보여 주는 한국은행의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지난달 63으로 7년 만에 최저치다. 소비자 심리지수도 100 이하로, 지난해 메르스 사태 당시 수준으로 위축됐다.

◇ 생산·소비·투자⋅수출 등 모두 내리막

이 같은 국내 경기의 침체는 상당부분 글로벌 경기침체 등 대외적 환경 악화에 기인한 바 크다. 우리의 주력 품목인 조선해양플랜트⋅자동차⋅석유화학 등 산업이 퇴조하고, 최대 시장인 중국 시장이 ‘제조’에서 ‘서비스 중심’으로 경제성장 정책을 전환하면서 중간재 수출도 한계에 부닥쳤다.

한국경제는 겉으로는 2월에도 47개월째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으나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전혀 다르다. 수출과 수입이 동시에 줄어드는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가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이런 가운데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2일 중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해,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 수출은 더욱 힘든 상황을 맞게 됐다.

어떻든 이와 같은 통계수치가 아닐지라도 지금 서민들의 형편은 숨이 가쁘다. 시중경기가 IMF 외환위기 사태 때보다 더 나쁘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소규모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인들은 하루하루 버티기가 조마조마한 불안의 연속이고, 일자리가 없어 절망에 빠진 청년들이 무려 5백만 명을 육박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2만7200달러를 기록, 9년째 3만 달러 문턱을 넘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환율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론 경제가 저성장 늪에 빠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민소득은 전년보다 1000달러 넘게 줄었다.

미국⋅일본⋅독일 같은 선진국은 소득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로 가는 데 길어야 5년이 걸렸다. 그러나 우리는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임기 내 소득 4만 달러'는커녕, 3만 달러도 달성하지 못한 채 9년째 '2만 달러의 함정'에 갇혀 있는 것이다.

◇ 성장전략 보여주지 못한 박근혜 정부

올해와 내년에도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2%대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대로 가면 박근혜 정부는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한 이래 임기 중 호황을 단 한 순간도 맛보지 못하는 첫 번째 정권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런데도 정부 당국자들은 수출 부진은 세계경제 침체 탓, 내수 침체는 국회 탓이라며 '남 탓'만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엊그제 3·1절 기념사에서도 “경제가 어려운데 국회가 마비상태”라고 또다시 국회를 겨냥했다.

국회의 무책임 행태는 아무리 비판받아도 모자라지만, 경제침체를 극복해야 할 주도적 책임은 어디까지나 청와대와 정부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암울한 통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데도 정부 당국자들의 움직임은 굼뜨다 못해 아예 태평스럽다는 느낌마저 준다. 현재의 위기가 우리만의 일도 아닐뿐더러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보니 뾰족한 묘수를 찾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장밋빛 수치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읊조리다 느닷없이 ‘4대 개혁’을 밀어붙이며 위기 탈피는커녕 생채기만 덧내는 쪽에 맞춰져 왔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3년간 창조경제라는 국민이 알아듣기 힘든 개념으로 경제부흥을 꾀하겠다고 했지만 뚜렷한 성장전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 정부가 성장 엔진에 불꽃을 지피기 위해 어떤 청사진을 갖고 노력했는지 떠오르는 게 없다.

정부는 뼈를 깎는 구조개혁 대신 추경예산을 뿌리고 금리를 내리는 손쉬운 대증(對症)요법에 치중하다 결국 성장 엔진에 불을 지피는 데 실패했다. 정부가 만병통치약처럼 내세우는 '창조경제' 역시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무슨 기여를 했는지 체감하는 국민이 많지 않다.

집권 초엔 대선공약을 지키겠다며 135개나 되는 국정과제를 들고 나와 방황을 거듭했고, 성장 목표조차 제시하지 않았다. 이렇게 취임 초 1년의 골든타임을 허비해버린 뒤, 재작년 하반기부터 노동·교육·금융·공공의 4대 개혁을 들고 나왔지만 말로만 부산을 떨었을 뿐 국민이 체감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최근의 경기침체는 근본적으로 수많은 악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석유 수급이나 외환시장 교란, 자산거품 붕괴 같은 단일요인에서 비롯된 이전 위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따라서 똑같은 전략으로는 대처하기 힘들다. 새로운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완전히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는 국제 환경이 어려워 어느 정도 감속(減速) 성장은 불가피하다. 양적(量的) 성장이 한계에 부딪힌 한국 경제가 활력을 찾으려면 구조개혁 외에 답이 없다. 부실⋅좀비 기업을 정리하고 경쟁력이 떨어진 취약산업을 과감히 손질하면서 새로운 성장산업을 발굴해 규제를 풀어주고 국가자원을 집중 투입해야 한다.

정부가 경제위기의 유일한 해법인 양 입에 달고 사는 구조개혁론은 실제로는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여 일시적으로 수익성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공급자 패러다임’일 뿐이다. 각국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해 근본적인 가계소득 증대를 통한 총수요 확충을 위해 애쓰는 것과는 정반대 행보다.

◇ 위기의 절반은 국정 발목 잡은 야당 책임

벼랑 끝으로 내몰린 경제를 살리고 수많은 서민의 불안과 수백만에 이르는 청년 실업자⋅비정규직들의 절망감을 해소해주기 위해서는 정부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기업과 정부는 물론 연구소와 학계·노조까지 모두 머리를 맞대고 묘안을 짜내야 한다. 특히 지난 4년 내내 국정의 발목을 붙잡고 사사건건 ‘반대를 위한 반대’만으로 일관해온 야당의 행태는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여건에 찬물을 끼얹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 실정(失政)을 지적하고 있으나 국민은 당면한 위기의 절반은 야당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안보와 경제조차 진영논리와 당리당략만을 앞세워 무조건 반대로 일관하면서 불필요한 갈등을 부추기는 야당의 행태를 4년 내내 봐온 탓이다.

그동안 국민이 바라고 요구한 것은 싸울 때 싸우더라도 협력할 땐 협력하는 성숙한 야당이었다. 이제 지긋지긋하고 넌더리나는 19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남긴 채 퇴장한다. 이와 함께 친노·운동권 중심의 ‘국정 훼방꾼 집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제1야당 모습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희망은 어려운 경제상황 가운데에서도 많은 국민에게 한 가닥 위안이 된다.

19대 국회의 제1야당이 그나마 국민과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최소한의 과업은 임시국회 만료 전에 노동개혁 4법, 서비스법 등 그동안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들이대며 반대해왔던 법안들을 당리당략을 접고 통과시키는 일이다.

우리 경제의 구조개혁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반전의 기회를 놓치고 장기 침체가 더 깊어지면 가장 고통을 받는 쪽은 청년·노동자·힘없는 서민들이다.

이제 다가온 4·13 총선으로 새롭게 짜여질 20대 국회의 야당은 극단의 대결 대신 상식과 합리, 대화와 타협, 개방과 포용, 실용과 유연의 가치를 보여주는 신선하고 희망적인 ‘국정의 동반자’이기를 기대해 본다. 그래야만 나라도 경제도 살아나고 민생도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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