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보는 국민의 눈과 민심의 향배 아랑곳 않고 청와대만 의식
친박 집단을 향한 국민의 거부감과 분노 임계점 넘어서고 있다

▲ 정행산 주필
【의회신문】야권의 문재인과 안철수는 이념과 노선이 근본적으로 융화되기 어려워 같은 당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결국 야권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갈라섰다. 지금 집권여당의 내분과 반목, 갈등은 야권보다 더 심각하다. 친박(親朴)계와 비박(非朴)계로 쪼개진 새누리당은 정신적 분당(分黨) 상태나 다름이 없다.

여당의 친박과 비박은 공히 안보와 경제, 사회문제에 대한 가치와 정책에 이견이 없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지금 ‘한 지붕 아래 두 웬수 집단’이 서로 이를 갈며 동거하고 있는 형국이다. 새누리당의 이 같은 당내 ‘소리없는 전쟁’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진박’(진실한 친박) 인사들을 챙기며 눈 밖에 난 인사들을 인위적으로 제거하려 하는 데서 기인한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내 진박 집단의 대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원수이며 일국의 대통령이다. 이런 사실을 박 대통령이 모를 리 없는 데도 청와대는 늘 대통령의 눈 밖에 난 사람들을 감쌀 줄은 모른 채 배척하려 들고 경원시한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집권여당의 그것도 한 ‘친(親)대통령 계파’만을 감싸고돌며 그 밖의 일체의 인사들을 배척하고 제거하려 한 지극히 편파적인 대통령은 박 대통령 말고는 없었다.

◇ 대통령의 편파성에 삐걱거리는 국정

대통령이 이처럼 편파적이다 보니 이 정부의 국정은 늘 삐걱거린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줄곧 국정의 발목을 잡고 늘어진 야당의 탓도 크지만, 지난 3년간 박근혜 정부의 경제성적표는 한마디로 낙제점이다.

대선 공약이었던 ‘증세 없는 복지’는 축소 변형됐고 경제민주화는 슬그머니 ‘경제활성화’로 탈바꿈했다. 재정지출 확대, 금리 인하, 부동산 활성화를 주 내용으로 했던 ‘초이(최경환)노믹스’는 경제 기초체력은 늘리지 않고 정부와 가계를 빚더미에 올려놓았다는 비판이 높다.

작년 말 기준 가계부채는 1200조 원을 넘어섰다. 2012년 963조 원에 비해 3년 만에 200조 원 넘게 폭증했다. 집권 2년간 국가부채 증가액도 87조4000억 원으로, 역대 정부 가운데 박근혜 정부가 가장 높다.

지난달 27일 이른바 친박 실세라는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이 다른 당도 아닌 같은 당의 비박계인 김무성 대표를 지목해 “당에서 가장 먼저 그런 새끼부터 솎아내라. 솎아내서 공천에서 떨어뜨려 버려야 한다”는 등의 기세등등한 막말을 쏟아 낸 사실이 녹음으로 공개돼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윤상현 의원은 평소 사석에서 박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를 정도로 박 대통령의 총애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진박’으로 분류되는 그는 당 사무총장⋅대변인 등 당 요직을 두루 거쳐 위헌 논란까지 무릅쓰고 현역 의원으로서 대통령 정무특보를 맡기도 했었다.

그는 ‘진박’이라는 완장을 차고 무소불위, 안하무인으로 거침없는 위세를 부리며 호가호위하던 끝에 마침내는 대통령의 속내를 받들어 일개 의원에 불과한 자신의 위치도 잊은 채 당원들의 투표로 뽑힌 당 대표까지 공천에서 솎아내겠다고 설치고 나선 것이다. 의정사상 일개 의원이 대통령의 총애를 믿고 당 대표를 이처럼 능멸한 사례가 또 있었던가?

도대체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기율도 윤리도 없는 것인지, 진박 완장만 하나 얻어 차면 정치경력으로나 나이로나 한참 선배이자 당 대표인 윗사람도 눈에 뵈지 않은 ‘후레자식’이 되고 마는 것인지, 황당하고 망연할 따름이다. 윤상현 의원은 당 내에서 대통령의 호위무사, 친박계 행동대장을 자처하는 대표적인 권력 지향형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 진박 패거리 안하무인으로 국정 농단

이처럼 자질을 의심케 하는 품격 없는 소인배들이 대통령 주변에 손 비비고 모여들어 대통령 비위 맞추며 ‘진박’이라는 패거리 집단을 꾸리고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람 보는 눈이 다소 아쉽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정잡배나 다름없는 속물들이 정권의 핵심이라며 설치고 나대니 당이든 나라든 제대로 굴러갈리 없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심각한 해당(害黨)행위를 한 윤 의원은 진정한 반성은 커녕 되레 자신의 대화 녹음을 음모라고 주장하며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다”고 했다. 파장이 커지자 마지못해 말로는 죄송하다 면서도 그의 얼굴엔 오만함이 넘친다. 믿는 구석, 곧 대통령과 친박계라는 막강한 뒷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윤 의원은 더 이상 권력의 맛에 연연하지 말고 정계를 떠나는 게 옳다. 그가 함량미달의 인물이라는 사실은 드러났다. 이대로 가면 이런 사람들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기는 것은 심각한 우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유권자가 계속 늘 수밖에 없다.

집권여당이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면서 쪼개져 분란을 일으키게 된 근본적인 배경은 비박계인 김무성 대표가 대통령 꿈을 꾸고 있고, 박 대통령은 이를 무슨 일이 있어도 막고 친박계 인사를 차기 대선후보로 내세우려는 데 있다. 하지만 차기 대선후보는 현 대통령이 이러고저러고 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차기 여당 대선 후보 결정에 개입하면 사달이 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끝난 것은 정부 부처 세종시 이전을 놓고 '안 된다'는 이명박 대통령과 '해야 한다'는 박근혜 대표가 대립했던 2010년이었다. 그때 김무성 원내대표가 이 대통령과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정부가 서울과 세종시로 양분된 데 따른 비효율 문제는 지금도 논란이다. 국가적 사안이니만큼 김 대표가 박근혜 계파라 해도 자신 나름의 의견을 낼 수 있는 문제였다. 세종시 문제는 결국 박 대통령의 뜻대로 됐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나름의 의견을 낸 김무성 대표에 대한 섭섭함을 털고 포용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지금 대통령이 야당도 아닌 여당 사람들, 이념과 노선이 다르지도 않은 사람들과 이렇게 척을 지고 싸워야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김 대표의 이 ‘배신’을 용납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 취임 후 여당 대표 경선은 친박 대 비박 싸움이 돼버렸다. 이 경선에서 비박 김무성과 유승민 의원이 박 대통령이 내세운 사람을 이기고 당 대표와 원내대표에 각각 당선됐다. 이렇게 되자 박 대통령은 김무성 당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와 실질적 관계를 단절했다.

◇ 박 대통령 측근이었다가 적(敵)이 된 사람들

박 대통령의 포용력 부족으로 좋았던 관계가 단절돼 적(敵)이 된 사람들은 김 대표와 유승민 의원만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대선 때 김종인씨를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했다. 김종인씨는 복지와 경제민주화 공약을 만들어 당시 박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 경제위기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던 시기였고 민생이 크게 흔들린 상황에서 박 후보의 경제이슈 선점은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자 전화 한 통화 없었다고 한다. 김종인씨가 박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몇 번 한 것이 화근이 됐다고 한다. 더민주당으로 간 김종인씨는 지금 속으로 이를 악물고 있을 지도 모른다. 박 대통령은 대선 때 자신을 지지한 원로급 상당수에 대해서도 전화 한 번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 밑에 있다가 이제는 적(敵)이 된 사람들 대다수는 마음을 터놓는 전화 한 통화로 풀어질 수도 있는 경우였다. 김무성·유승민과 단 한 번이라도 속마음을 털어놓는 대화를 했다면, 김종인씨를 한 번이라도 불러서 밥 한 끼 같이 하며 진심으로 고맙다고 인사했다면 이런 사이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집권여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고받기 추태는 박 대통령이 포용했으면 모두 수하(手下)에 있었을 사람들, 그렇게 하지 않아 적이 된 사람들과의 본격적 싸움이 다. 이 같은 추태는 국민을 화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오만한 친박 집단을 향한 거부감과 분노는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성난 민심이 총선에서 어떻게 폭발할지 모른다.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고 외쳤던 최경환 부총리는 대통령 뜻에 따라 새누리당으로 복귀해 ‘진박 좌장’이 됐다. 그는 대구지역 진박 후보들을 돕겠다며 이른바 ‘진박 마케팅’을 벌이고 다녔으나 그 때문에 진박 후보들의 지지도는 현지에서 오히려 떨어졌다.

과거에도 오만 독선 행보로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던 친박 이한구 의원은 공천관리위원장의 완장을 차고 칼을 휘두르고 있다. 지금 이한구 공관위원장의 눈엔 당 대표도 국민도 없어 보인다. 그의 오만과 독선적 행태는 친박 중에서도 단연 금메달 급이다.

◇ 이한구 나대는 모습 당에 독(毒) 될 수 있다

무슨 제왕이라도 된 듯 버티고 앉아 당 대표를 공천심사 하겠다며 김무성 대표를 들었다가 놓았다가 하는 등 꺼덕거리는 모습에 많은 국민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당 대표는 이미 당에서 검증을 거쳐 선임된, 새누리당 전체 의원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그런 당 대표를 새삼스럽게 심사하겠다고 불러내는 것은 모욕을 주자는 의도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시중에서는 “이한구 공관위원장의 최대 임무는 청와대의 하청에 따라 김무성 대표를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만약 이런 루머대로라면 새누리당은 이제 갈 데까지 간 ‘막장 정당’에 다름 아니다. 그런 시정잡배들 노름판보다 못한 집단이 주도하는 정당에 무슨 희망을 걸 수 있겠는가. 누구보다 박 대통령이 심기일전해 이 같은 파국을 수습해야 한다.

이한구 공관위원장이 예상했던 대로 급기야 탈을 내고 말았다. 공천관리위원인 황진하 사무총장과 홍문표 제1사무부총장이 10일 저녁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고쳐지지 않는 이한구 공천위원장의 독선적 행위와 회의 운영 등을 더 이상 지켜보기가 어렵다”며 “공천위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털고 일어나버렸다.

이한구 공관위원장은 윤상현 의원의 막말 파문이 언론에 보도된 다음날(9일) 시내 한 호텔에서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과 극비 회동을 가졌다. 어느 때보다 민감한 시점에 공천위원장이 청와대 정무수석과 극비리에 회동해 무슨 지시를 전달받았는지, 무슨 문제를 논의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떻든 이래도 되는 것인가?

이한구·최경환 의원이 나대는 모습은 새누리당에 독(毒)이 될 수 있다. 국민을 깔아뭉개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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