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지도부 공중분해, 전당대회 5~6월로 앞당겨질 듯
계파간 책임공방에 당권 경쟁까지 혼란 이어질 조짐 재연

▲ 14일 김무성 대표가 대표직을 사퇴하고 '국민 뜻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라며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의회신문=정행산 주필】 새누리당이 4·13 총선에서 원내 제1당을 내주는 충격적 참패로 거센 후폭풍에 휩싸였다. 총선 패배의 후유증을 최대한 빨리 추슬러야 하지만 당 지도부 공중분해, 조기 전당대회, 탈당파 복귀 등 곳곳이 지뢰밭이다.

7월13일까지가 임기인 김무성 당 대표는 이미 “총선이 끝나면 사퇴하겠다”고 한 바 있지만, 총선 다음날인 14일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서 “당 대표로서 선거 참패에 모든 책임을 지고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최고위원단은 현 지도부 체제를 해체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기로 합의, 원유철 원내대표가 전당대회 때까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기로 했지만, 문제는 당을 재건할 만한 리더십과 비전을 갖춘 새로운 당 대표 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가 와도 분당 상태나 다름없는 내전을 치렀던 당내 계파 갈등을 아우르기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는 6월 중순쯤으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선출될 당 대표는 내년 대선 후보 경선을 관리하게 된다. 따라서 친박⋅비박계 모두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형을 만들기 위해 대표 선임에 관심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공천 파동의 본질도 여기에서 비롯된 측면이 많다.

당장 6월부터 20대 국회가 시작되기 때문에 당 대표 경선 못지않게 전대가 시급한 당내 과제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조기 전당대회 주장이 거론되고 있고, 이르면 5월 조기 전당대회 개최 가능성도 제기된다. 당초 7월로 예정됐던 전당대회는 당 지도부 와해로 이르면 5월, 늦어도 6월 초로 앞당겨질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일단 전대가 열리면 총선 패배의 트라우마를 빨리 극복할 수 있도록 ‘계파 통합’ 성향의 리더십이 호응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조기 전당대회 개최에 따른 계파 간 전면전은 또 다른 불씨다. 차기 지도부는 2017년 대선을 관리하게 되는 만큼 계파별 당권 경쟁 또한 격렬할 수밖에 없다.

총선 참패의 원인이 됐던 계파 전면전이 다시 불거지는 듯한 기류는 새누리당의 극복하기 어려운 딜레마다. 결국 계파 간에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공방과 당권 경쟁은 피할 수 없어 당의 대혼란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가 진행중인 가운데 새누리당 총선 종합상황실에 상황판과 당기가 썰렁하게 놓여 있다.
◇ 차기 당권 누구 손에

차기 당권이 누구 손에 떨어지느냐는 각 계파에 민감한 문제다. 이렇다 할 구심점이 없는 비박계는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론으로 예봉을 꺾어야 한판 승부가 가능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비박계는 이번 총선 참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친박계가 주도한 ‘비박 공천 학살’을 들어 강한 드라이브를 걸 태세다. 공천 당시에도 비박계 의원들은 “이대로 가면 선거 필패”라는 목소리를 높이며 대립각을 세운 바 있다.

반면 친박계는 김 대표의 ‘상향식 공천’ 책임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친박계의 주장은 “친박계가 통절한 반성은커녕 되레 책임을 엉뚱한 데로 전가하는 몰염치를 드러내고 있다”는 여론이 파다하다.

현재 친박계에서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최경환 의원이 차기 당 대표 1순위로 거론되지만, 그의 평소 지나친 ‘과잉 충성’ 행태와 ‘촐싹거리는’ 듯한 가벼운 언동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그가 과연 위기에 처한 새누리당의 대표 감으로 적합하느냐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그는 이번 총선에서 친박계 핵심으로 선거를 주도하면서 참패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최 의원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대안으로 원유철 원내대표와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이주영 의원이 급부상하고 있고, 또 어렵게 국회에 입성한 이른바 진박(眞朴)인 민경욱⋅추경호⋅곽상도⋅정종섭 당선인을 비롯해 유기준⋅홍문종⋅이정현 등 핵심 친박 당선인들이 거론되지만 이들 역시 하나같이 당 대표 재목으로는 턱없이 미달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비박계에서는 유승민⋅주호영 등 탈당파 무소속 당선인들의 복당에 주목하고 있다. 김 대표 이후 차기 구심점이 뚜렷하지 않은 비박계로서는 복당한 유 당선인을 중심으로 뭉치면 예상외의 성과를 얻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없지 않다.

▲ 정당별 의석수는 더불어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11석으로 집계됐다.
◇ 혼돈으로 빠져든 새누리당

새누리당은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과반 의석을 빼앗긴 이후 최대 위기에 빠졌다.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것은 물론, 김무성⋅오세훈⋅김문수 등 유력한 대선 주자들이 타격을 입으며 차기 정권 재창출도 기약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당내에선 “폐허가 된 당을 일으켜 세우려면 12년 전 천막당사를 하던 심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박근혜 정부 4년차에 치러진 이번 총선 결과는 노무현 정부 4년차에 실시된 2006년 지방선거 결과와 닮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시·도지사 선거에서 전북 1곳을 빼고 전패했다.

230곳에 이르는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도 단 19곳만 건지며 155곳을 차지한 한나라당에 대패했다. 서울은 25개 구청장 전부를 한나라당이 가져갔다. 2004년 탄핵 바람을 타고 과반 의석을 차지했으나 불과 2년 만에 치러진 전국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참패한 것이다.

당시 친노(親盧) 운동권의 배타적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선거 결과 집권당의 주요 대선 주자가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열린우리당은 당시 유력한 차기 주자였던 정동영 당의장이 선거를 지휘했으나 패배하면서 정치적 입지가 크게 흔들렸고, 결국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큰 표차로 패했다. 이후 적장(敵將) 중 한 사람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당 대표로 영입해 2008년 총선을 치르며 회생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권발 정계 개편이 있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거론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새누리당 비박계가 친박계에 당권을 빼앗길 경우 대선을 앞두고 야권 일부 세력과 연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 관계자는 “예컨대 친박 지도부가 당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비박계가 대선 후보를 배출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김무성 대표 등 비박계 주자들이 국민의당과 힘을 합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대선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최소 2년간 국정 운영을 책임져야 하는 새누리당 입장에선 각종 법안 통과를 위해서라도 국회 운영의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과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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