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행산 주필
【의회신문】 새누리당은 ‘폐족(廢族)’이 됐다. 한문으로 표현하자면 패족(覇族)이 아니라, ‘가문(家門)의 뿌리가 뽑힌 족속’인 ‘폐족(廢族)’이 된 것이다. 이제 박근혜 정부는 국정운영의 힘을 잃었고 입법 권력은 야당에 넘어갔다. 대통령은 조기 레임덕의 덫에 걸렸고 집권당은 얼이 빠진 상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국민이 ‘보수의 가치’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거나 보수정권의 정책에 등을 돌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새누리당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오늘의 대한민국 상황에서 진보의 방식으로는 국민의 생존이 걸린 경제⋅안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국민은 안다.

역대 최악의 야당이라는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세월 8년 동안 제대로 된 국정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사사건건 정부⋅여당의 발목 잡기로 일관하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해온 훼방꾼에 불과했다. 이것이 이 나라 진보정치 세력의 태생적 본질이자 한계다.

문제는, 집권여당의 배가 뒤집혀 난파선이 된 후에도 그 원인 제공자인 대통령과 진박이라는 사람들이 반성은커녕 그 책임을 엉뚱하게 김무성 전 당 대표와 비박계에 뒤집어씌우려는 희극을 연출하면서 차기 당권을 위한 주도권 싸움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무지 개전(改悛)의 여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여전히 낯 두껍고 국민 알기를 바보로 아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집권당이 이 정도로 참패를 했으면 대통령과 진박세력이 나서서 그동안의 잘못을 반성하고 국정을 쇄신하겠다고 대국민 사과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그동안의 과오나 공천파동에 대해 한 마디 반성의 메시지도 책임의식도 없다.

친박계의 행태는 더 가관이다. 그처럼 호된 참패에도 불구하고 본래의 습성이 바뀔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깜도 안돼 보이는 진박’들이 너도나도 당 대표 하겠다고 설치면서 들이대고 있다. 국민은 그들의 총선 전 행태에 넌더리를 냈고 총선 후의 여전한 모습에 대해서도 혀를 차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지 염려되지 않을 수 없다. 더민주는 운동권의 본질에서 변하지 않았고 국민의당은 정체성이 불분명한 약체 소수정당일 뿐이다. 새누리당에서는 당내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계파로부터 자유로운’ 외부인사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그런 외부인사마저도 ‘친박계를 위한 대리인’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의 친박과 비박은 한솥밥을 먹을 수 없는 사이가 된지 오래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새누리당 비박계가 독립된 모습으로 건강하고 새로운 보수정당을 재건해 ‘보수의 가치’를 회복시켜야 한다. 그것이 설령 여당의 분열로 비판받을지라도 현재로서는 불가피한 일이며, ‘보수정당의 거듭나기’를 위한 최선책이다.

대통령의 영향력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는 집권여당에서 비박계는 어차피 배척받고 의미 있는 역할도 할 수 없다. 당권을 위한 친(親)⋅비(非) 계파간의 소모적 갈등과 주도권 다툼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대로 가다가는 여당은 자칫 산으로 갈 수 있고 끝내는 자멸의 길을 내닫을 수 있다.

친박⋅비박은 갈등과 상호 적대감만 키울 뿐 어차피 쇄신과 통합을 이루기는 불가능하다. 새누리당 비박계는 나라와 보수적 가치의 수호를 위해서라도 어려움을 각오하고 선택을 결행해야 한다. 진박그릅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에게 잘 보이려는 과잉충성은 오히려 대통령과 당, 국정을 망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번 총선 참패가 그 한 결과다.

비박계가 사당(私黨)이나 다름없이 돼버린 새누리당의 굴레를 벗어나 ‘거듭난 보수정당’의 중심에 서면 계파를 초월해 여⋅야를 아우르는 건전한 정치세력으로서 박근혜 정부의 잔여 임기를 보다 더 성공적으로 도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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