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 온 기회, 사상 최대 경제사절단 동행
경제 재건사업 수주 위해 현대·삼성 등도 출동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초청 오찬간담회에 참석,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의회신문】바벨론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노라
그 강변 버드나무에 우리가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르랴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 하거나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에 붙을지로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소서

기원 전 6세기, 바벨론(바빌로니아)제국에 포로로 끌려와 노예가 된 히브리(유대인) 민족이 강가에 앉아 고향 예루살렘을 향해 울며 부르던 영탄시로, 구약성경 시편에 기록돼 있다. 이들 히브리 노예들을 해방시켜 고국으로 돌아가게 한 인물이 페르시아 곧 지금의 이란 고레스(사이러스 또는 키루스라고도 함) 대제(大帝)였다. 제국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제는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정복하고 흉포한 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킨 뒤 바벨론 제국이 정복했던 소수민족들을 해방시킨다.

"누구도 다른 민족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모든 민족은 평등하며 지배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그의 선언은 점토 기둥에 쐐기문자로 새겨져 수천 년이 흐른 지금 대영박물관에 보존돼 있다.

이란의 옛 제국 페르시아는 고대와 중세를 아우르며 시대를 풍미했던 찬란하고 위대한 거인이었다. 그 거인의 후예들이 폐쇄적이고 음습한 신정(神政)국가로 변신해 핵 개발 문제에까지 맞물리더니 이제 핵 폐기를 선언하고 경제 제재의 결박을 풀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서고 있다.

이란이 서방의 경제제재 해제 이후 글로벌 기업들에 중동의 마지막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이란 측 초청으로 경제사절단 236명과 함께 1일부터 2박4일 일정으로 이란 국빈 방문 길에 올랐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이란 방문은 1962년 양국 수교 이후 처음이다.

이란은 원유 매장량 세계 4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1위의 풍부한 자원과 중동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규모를 갖추고 있다. 이번 박 대통령의 국빈방문은 경제 제재가 풀린 이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세일즈 외교가 될 전망이다.

5월2일 오전으로 예정된 정상회담은 주로 ‘경제’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양국 정상은 교역규모를 경제 제재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고 재건사업에 우리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협력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박 대통령은 에너지·교통 인프라, 정유·철강, 보건 의료, ICT(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 한국기업의 이란 진출을 모색할 예정이며 플랜트 분야는 물론 미래 신성장동력 협력 유망분야인 문화·콘텐츠, 환경, 해양·수산 등 제반 분야에서의 호혜적 실질협력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 교환을 가질 예정이다.

이 같은 양국 협력방안에 대해 이란도 적극적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란은 작년 7월 핵 폐기 합의에 이어 올 1월 경제 제재가 해제되자 경제 재건을 서두르고 있다.

◇ 재계 총수·대기업 CEO 등 경제인 236명 동행

박 대통령은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과는 별도로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의 면담도 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하메네이는 이란 혁명을 이끈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뒤를 이은 후계자로, 이란에서 절대권력을 보유한 최고통치권자다.

이란은 종교지도자가 곧 정치지도자인 신정일치(神政一致) 국가로, 선출직인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 역할을 하지만 최고지도자가 국가 중대사안의 최종 결정권을 갖는 등 절대권력을 갖고 있다. 이란 헌법수호위원회 위원 절반과 대법원장 등 주요 인사도 최고지도자가 임명한다.

박 대통령의 이란 방문에는 사상 최대 규모인 236명의 경제사절단이 동행해 제2의 중동 붐에 대한 경제계의 기대감을 보여주었다. 이번 경제사절단은 대기업 38개, 중소·중견 146개, 공공기관·단체 50개, 병원 2개 등 총 236개사로 구성됐다.

이란이 경제재건을 위해 에너지, 교통 인프라 투자와 정유·철강·자동차 등 산업기반 확충에 나서고 있는 만큼 관련 대기업들이 대거 동행한 것이다.

▲ 김규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지난 27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순방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번 경제사절단에는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 등 경제 4단체장을 비롯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등 재계 총수, 그리고 3대 국책은행장이 포함됐다. 또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두산중공업, GS건설, 대림산업, LG상사 등 주요 대기업 38개사 오너 및 최고경영자(CEO)들도 동행했다.

삼성그룹은 전자·물산·중공업 3개, 현대차그룹은 현대차·건설·글로비스·로템·엔지니어링 등 5개, 오너인 최 회장이 가는 SK그룹은 SK홀딩스를 포함해 6개사 대표가 함께 했다. 최대 200억 달러 규모의 건설공사 수주를 위해 대림·GS·대우·현대·삼성물산 등 ‘빅 5’가 일제히 출동한 것이다.

◇ 이란 핵 개발과 경제 제재 이후의 미래

이란은 핵무기 개발로 2008년부터 유엔 안보리의 전방위적 경제 제재를 받기 시작했다. 또한 유엔 안보리의 경제 제재와는 별도로 미국은 2010년부터 '포괄적 이란 제재법(CISADA)'을 발효해 이란과 거래하는 나라에 대해 경제적으로 강력하게 제재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로 이란은 국가 존립 자체까지 위협받는 총체적 위기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란과의 달러 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원유 수출량이 40% 이상 감소했고 1천억 달러가 넘는 해외 자산이 동결되었으며 인플레이션이 치솟았다. 2016년 1월 경제 제재가 풀리기까지 12년 동안 이란의 경제는 그야말로 황폐화되어 국민은 지옥을 경험한 셈이 되었다. 중동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두 번째 경제대국이었던 자원부국 이란의 국민생활은 세계 최빈국 수준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결국 이란 내부의 강력한 주장과 국제사회의 외교적 노력으로 작년 7월 극적으로 국제사회와 이란 간의 ‘핵 폐기협상’이 타결되었다. 그리고 이란이 협상을 성실히 이행하면서 지난 1월 유엔 안보리의 제재 대부분이 해제되었다.

제재가 해제되면서 원유 무역과 금융거래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이란 정부는 그동안 경제 제재로 인해 실행하지 못했던 다양한 프로젝트를 다수 추진할 방침을 밝히고 있다. 2020년까지 약 214조원 규모의 대형 건설 프로젝트 발주를 비롯해 원유 증산을 위한 정유·가스 플랜트 발주와 도로, 철도 등의 토목사업 및 주택 등의 건축사업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이란 정부는 밝히고 있다. 이란의 현재 원유 정제설비 규모는 1일 200만 배럴 수준 생산에 불과하다.

제재 이전 이란은 해외 건설 수주액으로 세계 전체 국가 중 6위를 기록했었다. 우리나라 건설사들이 이란에서 공사를 했던 규모는 총 120억 달러에 달해 이란 시장은 국내 건설시장 중 큰 부분을 차지했었다. 국내 건설사들이 이번 제재 해제로 다시 한 번 예전과 같은 중동 붐을 기대하고 있는 까닭이 이 같은 경험과 인연에 근거한다.

제재 이전 한국의 대(對)이란 주요 수출품은 TV, 합성수지, 자동차 부품, 냉장고 등이었다. 특히 자동차의 경우 이란은 우리나라의 자동차 부품만을 수입해 완성차를 생산했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란의 경제 활성화로 민간 소비가 회복되면 부품은 물론 완성차 수출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이란에서는 우리나라 전자제품들이 프리미엄 제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란이 세계 7위의 화장품 수입국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박 대통령의 이번 세일즈 외교가 예정대로 차질 없이 진행되면 우리나라는 다시 한 번 중동 특수를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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