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배우 정선아가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의회신문】"진짜 멋있으면 굳이 성별(性別)을 구분하지 않아도 멋있다는 말이 나오잖아요." 여주인공이 8할 이상을 소화해야 하는 원톱 뮤지컬 '보디가드'에서 주역 '레이첼 마론' 역을 맡아 열연 중인 뮤지컬스타 정선아는 여배우라기보다 배우로 불리는 배우다.

1일 오후 LG아트센터에서 만난 정선아는 "여자배우라서 멋있다는 말보다 무대 위에서 그 자체로 멋있는 배우,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30대 여성이 큰 손인 뮤지컬계에서 남자 배우가 주역으로 나서는 작품들이 대다수라, 여자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서는 '보디가드'가 귀하지만 정선아는 정작 개의치 않는다.

"무대 위에서 남자 배우, 여자 배우를 구분하지 않더라도 한 배우가 춤, 노래, 연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작품이 드물어요. 그래서 '보디가드'는 여배우를 넘어 배우로서 너무 행복하고 축복이죠. 이 시기에 이런 디바를 만날 수 있었던 것 차제가 행운이고 앞으로 저한테 이런 기회가 또 올 수 있을까 생각해요. 남자 배우와 같이 있든, 여자 배우와 같이 있든 괜찮은 배우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무대 위 당당한 모습으로, 한편에서 '뮤지컬계 김혜수'라는 통한다는 말을 건네자 어쩔 줄 몰라 부끄러워 한 정선아는 "영광이죠. 김혜수 선배님처럼 멋있고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트레이드마크가 된 '위키드'의 하얀 마녀 '글린다'로 발랄함과 사랑스러움을 뽐냈지만 정선아는 그간 무대 위 '센 언니'로 각인됐다. 뮤지컬 '에비타'의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 '에바 페론', 뮤지컬 '아이다'의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정선아는 사실 눈물도 많고 스스로 '박애주의자'로 표현할 만큼 부드럽고 여성적이다. 지난해 '위키드' 라이선스 재연 때까지만 해도 더 통통 튀고 활기찼던 그녀는 레이첼을 연기한 뒤 성숙한 여인의 향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뮤지컬 '보디가드'의 원작으로 휴스턴과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을 맡았던 동명영화(1992)에서 디바 레이첼과 보디가드 프랭크 파머의 사랑에 감명을 받아, 이 작품 출연을 결정했다.

"영화에서 프랭크와 레이첼의 터프한 사랑이 마음에 크게 남았어요. 프랭크 역의 종혁 오빠와 성웅 오빠를 대할 때 그래서 떨려요. 요즘 사랑의 감성과 다른 아날로그한 면이 있죠. 소녀 같은 감성을 끄집어내고 있어요. 사랑을 하면 열입골살 여자가 되잖아요? 호호. 작품이 주는 메시지를 따라, 세상을 더 아름답게 보려고 해요."

영화와 뮤지컬 속 레이첼 역시 무대 위 화려한 모습과 달리 일상에서는 누군가에게 사랑 받고 싶은 여자이자 아들을 애지중지 여기는 엄마다.

물론 결혼을 하지 않았고 가수가 아닌 뮤지컬배우지만 디바로서 삶을 살아가는 면이 정선아와 많이 겹쳐진다. 갓 서른을 넘긴 정선아 역시 "레이첼의 상황이 제가 처한 이 시점과 맞아떨어진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대 위에서는 멋있는 디바로 살고 있지만 무대를 내려오면 한 여자 잖아요.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더 어린 나이에 마론 역을 맡았다면 감정 이입이 덜 됐을 거예요. 결혼은 안 했지만 '아이가 있다면 이렇게 행동할 거야'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겹치더라고요."

제일 감정 이입이 된 장면은 본 공연 마지막 넘버이자 주제곡인 '아이 윌 올웨이스 러브 유(I Will Always Love You)'. "이 넘버를 부를 때, 말 그대로 노래만 부르지 않아요. 감정이 가장 벅차오를 때에요. 맨 처음에는 프랭크를 싫어하다가 사랑에 빠지고 여러 일을 겪은 뒤 친구가 되면서 다양한 감정이 교차 하거든요. 노랫말 하나하나가 마치 제 인생이고 제 모든 걸 표현하는 듯한 기분도 들거든요. 이 노래를 부를 때 울면 안 되는데 계속 눈물이 나요."

무대 위에서는 캐릭터의 옷을 입고 있지만 무대를 내려오면 정선아 그 자체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일상에서 그녀는 여느 배우보다 솔직한 것으로 유명하다.

"공연을 하면서 많은 캐릭터의 옷을 입는데, 무대 밑에서까지 다른 캐릭터를 입으면 제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았어요. 촌스러울 수 있고,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세지 않고 약하지만 이런 다른 면과 나약한 자신도 사랑할 수 있는 정선아가 되고 싶습니다."

2002년 뮤지컬 '렌트'의 '미미'로 이 장르에 발을 들인 정선아는 출연작마다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워낙 유명한 휴스턴의 넘버를 불러야 하는데다, 넘버 대부분을 소화해야 하는 만큼 '천하의 정선아'라도 '보디가드'는 힘들다고 했다.

지난해 12월15일 막을 올렸는데 "부담감 때문에 지금까지도 매회 공연하는 순간에 떨린다"는 것이다. "노래 곡수도 많고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 장면도 많고, 의상도 쉴 새 없이 갈아입어야 해서 쉬는 시간이 없어요."

'뮤지컬계 디바'로 통하는 정선아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워낙 좋아한 탓에 팝계 디바인 휴스턴을 롤모델로 삼았다. 건축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유년기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보낸 터라 그녀의 노래를 접할 기회가 더 많았다.

"더구나 어머니, 아버지가 '보디가드' 팬이였어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보디가드' OST뿐 아니라 휴스턴의 주옥 같은 음악들을 달고 살았죠. 그래서 아직도 뇌리에 많이 남아 있어요."

정선아는 이번 작품을 위해 휴스턴 뿐 아니라 디바로 살아간 이들의 삶을 파고들었다고 했다. 대표적인 팝 디바인 마돈나 의 자서전을 읽고 자신이 출연한 '킹키부츠'의 넘버를 작곡한 또 다른 디바 신디 로퍼의 자서전도 챙겼다.

"저 혼자서 짧은 시간 안에 디바의 삶을 표현하려다 보니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디바들의 자서전을 읽고 그녀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고민했어요. 넓고 깊은 지식이 쌓이니 디바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재미가 더 느껴지더라고요."

예전에는 뮤지컬로 전성기를 보내다 '박수 칠 때 떠나고 싶다'고 말했던 그녀지만 이제는 폭을 넓혔다. 15년 간 쌓아온 노하우와 경험을 나눌 기회가 있으면 TV를 비롯해 어디든 이제 갈 준비다 됐다며 웃었다. 자신을 롤모델로 삼는 후배들이 늘어날수록 생기는 책임감의 발로이기도 하다.

"뮤지컬에서 여배우들이 많지 않아요. 배우로서 확실히 뿌리를 내리는 것이 후배들에게도 좋을 거라고 봐요. 지금은 이 길을 잘 닦아놓아야 할 때죠!"

정선아와 함께 레이첼을 가수 양파(이은진)과 손승연이 나눠 맡는다. 프랭크는 박성웅과 이종혁이 번갈아 연기한다. 3월5일까지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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