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에서 보낸 한 시간, 책
【의회신문】스물두살 여름, 배낭을 메고 떠났던 프랑스 파리에서 칼린 L 프리드먼은 옛 애인의 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그리고 그 일은 프리드먼의 삶을 돌이킬 수 없이 뒤바꿔놓는다.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새로운 애인을 만날 때마다, 주거지를 옮기거나 사람이 많은 곳을 찾아갈 때, 심지어는 익숙한 곳에서 익숙한 일들을 할 때조차 그때의 기억은 그를 잊지 않고 따라다닌다.

책 '파리에서 보낸 한 시간'의 전반부는 사건 당일의 기억과 은폐, 그로 인해 파괴돼가는 프리드먼의 일상을 치열하고 세밀하게 묘사한다. 이와 동시에 평생 떨칠 수 없는 트라우마를 긍정하고 빈부와 국가를 가리지 않고 존재하는 가부장제라는 사회의 불평등, 기울어진 권력의 불평등 타파를 주장하는 저자의 모습은 강력한 몰입을 가져온다.

침묵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게 프리드먼의 주장이다. 심지어 침묵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마는 악덕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강간이라는 지독한 현실을 끝장내려면 침묵을 끝내고 이제는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게 프리드먼의 생각이다. 이민정 옮김, 264쪽, 1만5000원, 내인생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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