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고 순수한 소리에 반했죠"

▲ 염은초, 리코디스트.(사진=봄아트프로젝트·강태욱 제공)

【의회신문】기타교재계의 영원한 스테디셀러 '이정선 기타교실'을 연상케 하는 리코더 교본이 나온다. 4월 출간 예정인 '염은초의 리코더랜드'(가제)다.

걸출한 실력과 깜찍한 외모로 '리코더계의 국민 여동생'으로 통하는 리코디스트 염은초(25)의 이름을 앞세웠다. 리코더만 30개를 갖고 있는 그녀는 '리코더 전도사'로 통한다. 전문 리코디스트가 펴낸 리코더 교본은 이 책이 처음이다.

15일 오후 광화문 호텔에서 만난 염은초는 "어릴 적 리코더를 배울 때 교본 없이 CD로 듣고 익혔어요. 유학을 가서 호흡과 자세 등을 고쳤죠. 이 교본이 어린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해요"라고 말했다.

염은초는 국내에서는 주로 초등학교 학습용 악기로 인식된 리코더의 위상을 알리고 높이는데 기여하는 대표적인 연주자다. 유럽에서 이 악기는 어엿한 고(古) 음악 악기로 위상을 인정받고 있다.

염은초가 리코더에 빠져든 초등학교 3학년 음악 수업시간이었다. 당시 담임선생이 리코더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단숨에 빠져 들었다. 그녀가 리코더로 부른 첫 곡은 '학교 종이 땡땡땡'.

"부를 때마다 소리가 바뀌는 것이 자연스럽고 순수하게 느껴졌어요. 제가 리코더에 관심을 보이니,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사용하는 리코더 말고 더 비싼 악기를 보여주셨는데 예뻐서 빠졌어요."

이후 '한국 리코더 아카데미'라는 교육기관에서 리코더를 배웠고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다. 열 살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를 입학했고, 열 한살에 서울시향 데뷔 및 한국예술종합학교 KNUA 유스 오케스트라 협연,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 영재 데뷔, 금호 영 아티스트, 금호 라이징스타를 거치며 리코더계의 신성으로 자리매김했다.

열여섯살에 스위스 취리히 국립음대에 최연소 입학, 세계적인 리코더의 거장 키이스 부케 교수를 사사하며 만 열여덟살에 학사를 졸업했다. 세계적인 고음악 음악대학인 바젤 스콜라 칸토룸은 열아홉살 최연소 나이로 리코더과 한국인 최초 합격 및 석사 졸업을 했다.

2014년에는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 길드홀 음악학교에 관악기 최초로 입학했으며, 2015년 최연소로 아티스트 디플로마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연주자로서는 20대 중반의 어린 나이지만 리코더 분야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녀다. 한국에서는 리코더 연주자가 드물어 어릴 때부터 각종 오디션에서 다른 관악기 연주자와 맞붙어야 했다.

그렇게 성숙한 염은초가 지금은 '찾아가는 음악회'를 통해 산간 지역과 땅 끝을 비롯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우리나라 전국 각지마다 콘서트홀이 있어요. 특히 문화예술관은 리코더 콘서트를 잘 열어주세요. 학생들이 많이 모이니까요. 부모님들도 집 앞에 문화예술관이 있으니 아이들을 데리고 잘 오시죠. 리코더로 콘서트를 여니, 신기하게 여기시고 반응도 더 좋아요."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태권도 교복을 입은 남자 아이들은 지루하면 금방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 밖으로 나가고, 여자 아이들은 한 켠에서 간식을 나눠 먹는다.

염은초는 이 순간 마법을 부린다. 온라인 게임 '카트 라이더'의 BGM, 애니메이션 '터닝 메카드' OST '높이 날아!', 대세 그룹 '트와이스'의 히트곡 'TT' 등이 영롱하고 청아한 리코더 소리를 타고 울려 퍼질 때 아이들은 단숨에 리코더의 매력에 빠져든다.

어린이들뿐 아니다. 오전 11시 마티네 공연을 찾는 학부모들도 예외가 아니다. '하얀거탑'을 비롯해 각종 드라마·영화 OST뿐 아니라 윤도현의 '사랑했나봐' 등을 들려주는 순간 노래를 부르고, 심지어 객석에서 요청 곡들이 쏟아진다. 그렇게 리코더 콘서트가 대화가 오가는 편한 토크 콘서트 현장으로 탈바꿈한다.

'염은초의 리코더랜드'에 앞서 오는 20일 먼저 출간되는 염은초의 첫 책 '판타스틱 리코더'(삼호뮤직)가 탄생한 배경이다. 염은초가 여러 콘서트에서 반응이 좋은 곡들을 골라 페이스북에 남긴 곡들 20개의 악보 그리고 그녀가 쓴 에세이, 화보 등이 담긴 책이다. "10세 때부터 콘서트를 해왔으니 앙코르 곡만 뽑아도 상당한 레퍼토리가 쌓였어요. 그리해서 책이 나온 거죠."

염은초는 지난해 11월 MBC TV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그룹 '에이핑크' 멤버 정은지에게 리코더를 가르쳐주는 모습이 전파를 타면서 얼굴을 대중적으로 더 알렸다. 두 개의 리코더를 동시에 보는 퍼포먼스와 예쁜 외모로 단숨에 화제가 됐다.

사실 리코더계에서 진즉에 이름을 날린 염은초를 향한 방송가의 구애는 7년 전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염은초는 학업을 마치고 완연한 프로 연주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매번 거절했다. 영화 음악에 참여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용기가 안 났어요. 우선 공부를 많이 하자는 생각이 컸어요. 20대 초반에 진짜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활동 스타트가 늦어지더라도 공부를 먼저 끝내자는 마음이었죠."

'음악 여행'을 통해 유럽 15개국을 돌며 현지 음악 대학의 리코더 교수는 모두 만나고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젊은 연주자들을 알게 됐고, 세계 곳곳에 프로 연주자 친구들을 두게 됐다. "한 학교애서 선생님께서 가르쳐준 것만 했다면 연주는 더 잘했을지 몰라도 개성은 부족한 연주자가 됐을 거예요."

지난해 6월 클래식음악 매니지먼트사인 봄아트프로젝트와 계약을 맺은 염은초는 자신의 첫 기획 공연을 앞두고 있다. 오는 25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거장 하프시코디스트 나오키 키타야와 듀오 콘서트를 연다. 나오키 키타야는 세계적인 악단인 취리히 챔버 오케스트라의 하프시코드 연주자다.

염은초는 나오키 키타야와 함께 '바로크 음악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의미의 '토털리 바로크(Totally Baroque)'라는 부제를 갖고, 바로크 작곡가 헨델, 텔레만, 쿠프랭 등의 음악을 들려준다.

"옛날 당시의 히트곡을 뽑은 프로그램이에요. 현재 K팝이 유행하는 것처럼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곡이고, 주로 리코더를 위해 작곡된 곡들입니다."

염은초의 부모가 맨 처음 지었던 그녀의 이름은 염은초롱. 갓 태어난 염은초의 눈빛이 너무 초롱초롱한 나머지 부모가 떠올린 이름이다. 너무 길어 맨 끝 글자를 빼고 '은초'가 됐으나 눈빛이 반짝거리는 건 20대 중반이 돼서도 여전하다. 리코더를 한국에서 알릴 수 있는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마지막에 특히 빛났다.

"다양한 활동을 하는 랑랑의 시도가 참 멋져 보여요. 아이들과 함께 마스터 클래스를 겸하는 '101인의 피아니스트'를 비롯해 그래미상 시상식에도 참석하고. 예술을 다양한 콘텐츠로 만드는 것이 참 좋아 보이더라고요. (한국에서 낯선 팝페라와 뮤지컬 넘버 등을 알린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 같은 클래식 서바이벌 엔터 프로그램 MC를 맡고 싶어요. 싸이 씨는 영상을 활용하는 능력이 뛰어나 함께 작업하고 싶고요. 그리고 또…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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