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이 교수(한국학생인성교육진흥원)

【김소이 교수 / (사)한국학생인성교육진흥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직업은 참으로 신성시 여겨왔다. 가장 거룩하고 보람되며 의미있는 일이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동양과 서양이 이 점에서 같지만 특히 동양의 경우, 서양보다 가르치는 직업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심이 더 하다. 그래서 유교문화권에서는 부모와 스승이 국부(國父)와 더불어 가장 존경해야 할 대상으로 삼았다. 이를 우리는 군사부일체라는 말로 표현한다. 가르치는 사람이 이처럼 존경받는 이유는 누구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느냐에 따라 가르침을 받는 사람의 인생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이들은 어느 직업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은 도덕적 수준을 요구받는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특히 사람 됨됨이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인성을 가르치는 일을 맡은 스승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이 때문에 타인의 인성을 지도할 자라면 자신의 덕을 쌓는 내면의 수양을 끊임없이 지속해야 한다. 내면의 덕이 높은 사람이라야 타인의 인성을 지도할 수 있음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원리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무릇 인성을 가르친다는 것은 ‘조건 없이 순응만 하는 인간을 만드는 과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장 현명하게 생각하고 판단해서 세상사의 옳고 그름을 명확히 판단하고 의로운 일에 적극 나서고 불의에 대해서는 의연하게 맞설 줄 아는 인간으로 육성하는 일을 우리는 인성교육이라 칭한다. 자칫 인성교육에 대해 잘못 인지하고 있는 이들은 권력자의 요구에 조건 없이 순응하는 인간을 만드는 과정이 인성교육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무척 위험한 생각이다. 올바른 인성을 가진 이라면 불의에 대해 맞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세태를 지켜보노라면 아이와 어른의 구분 없이 하나같이 세상 불의에 대해서는 잘도 참으면서 자신의 불이익에 대해서는 절대 양보하지 않는 이들이 부지기수이다. 이는 인성교육의 부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인류가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교육은 지속됐다. 인성교육의 역사는 인류 교육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성교육은 지속됐지만 세상은 점차 각박해지고 인성이 제대로 함양되지 못한 이들이 양산되고 있다. 그래서 늘 세상은 불안하다.

올바른 인간을 육성하는데 주안점을 둔 인성교육은 일반적인 기술이나 기능을 가르치는 교육과 달리 가르치는 이의 도덕적 무장이 절실하다. 인성교육은 커리큘럼에 의한 교육이라기보다는 가르치는 이가 행동 하나하나, 마음가짐 하나하나를 통해 인격적 완성도가 높은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교육의 기본이 서고, 이를 기반으로 교육의 효과가 한 발짝 씩 정진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성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동안 성과주의와 실용주의에 입각해 인성을 뒷전으로 하는 교육이 진행됐고, 이를 통해 사회가 건조해지고, 질서가 무너져가고 있음은 누구나 통감하고 있다. 뒤늦게 국가적 차원에서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 가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다. 그러나 명목상의 인성교육이 아닌 실질적 인성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내실을 기하는데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인성교육의 시작점은 올바른 인성교육을 할 수 있는 교육인력을 확보하는데서 출발한다.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모든 이들이 인성교육자라고 할 수 있지만 이와는 별도로 전문적 인성교육강사진을 확보하고 꾸준히 재교육해 정신적 무장을 리필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한국인성교육신문이 출범하면서 인성교육 전문가들을 양성해 직접 인성교육에 참여하고 강사인력을 재교육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으니 참으로 흡족하다. 한국인성교육신문은 이 땅에 인성교육이 재대로 정착할 때까지 정진해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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