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주 교사 (신일중학교)

【의회신문/한국인성교육신문】 최근 우리나라의 교육 현장에서는 많은 고민들이 있다. 앨빈 토플러의“부의 미래”를 보면 오늘날의 여러 위기 상황은 경제 발전의 속도를 제도와 정책이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속도의 충돌”때문이라고 한다. 기업은 시속 100마일, 비정부기구는 90마일, 정부는 25마일, 학교는 10마일, 정치권은 3마일로 달리는데 결국은 사회의 발달 속도를 학교와 정치권이 발목을 잡고 그로 인해 나타나는 갈등이 사회문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지금의 교육현장을 보면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이 보장되는 고속성장 시대의 패러다임이 최근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다. 어쩌면 지금의 청소년들은 앞으로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샌드위치 세대가 될 거라는 자조섞인 이야기도 나온다. 과거 패러다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기성세대에 의해 교육을 받지만 미래에 다가올 세상은 지금의 콘텐츠를 무력화시킬 만큼 전혀 다른 공간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교육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배우는 지식은 파일로 저장하면 CD 한 장에 다 들어간다고 하는데 사실 기업의 취업환경이나 사회의 발전속도를 보면 더 이상은 지식의 양이 중요한 산업화 시대는 아니다.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능력은 바로 필요한 지식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탐색의 능력이고 이것을 기본으로 무궁무진하게 저장되어 있는 지식과 정보를 조립하고 조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창의력을 갖춘 인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깊고 좁은 전문지식보다는 지식 전체에 대한 넓은 안목을 길러야 하는 시대가 되었고 교육에 있어서도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접근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다차원적인 접근방식이 고려되어야 한다.

이 급격한 사회의 변화의 틀 속에서 사회변화의 속도와 기존의 교육체계 및 방식의 차이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 간격을 좁혀나가려는 노력이 우리 기성세대들이 이 시대에 감당해야 할 사명이며 올바른 교육을 지향하는 학부모와 교사의 역할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위의 글처럼 미래사회의 변화에 대비해 준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미국에서 일어났던 911테러에 대하여 많은 해석이 있었지만 나의 뇌리에 강하게 남는 논평이 기억난다. 인류는 사회의 발전과정을 통하여 시간과 공간을 정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오랜 기간 낙타와 같은 동물을 활용한 운송수단의 속도는 최대로 시속 8km였고, 최초의 증기기관차는 시속 13km였다. 현재 가장 빠른 것은 우주선으로 시속 29,000km이라고 한다. 속도를 정복하려는 인간 발명품의 결정체는 비행기이며 성경의 바벨탑 이야기처럼 공간을 정복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의 결정체는 고층빌딩이다. 이것이 충돌한 것이다. 즉 고층문명과 고속문명의 충돌이라고 해석을 했고 그래서 우리는 교훈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항상 움직이고 뭐라도 해야 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뭔가 모르게 불안할 수밖에 없는 강박관념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우리가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추진해 물질문명은 생활 전반에 걸쳐 풍요와 안락함을 제공해 주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행복으로 인도하는 길은 아니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생긴 초조와 불안감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그리움을 잊어버렸고 삶의 여유와 낭만을 찾을 수 없게 되었고 주변을 돌아보기 보다는 앞만 보고 나아가게 했다. 파란 하늘의 구름과 맑은 공기를 보기 어렵게 되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어머니의 자장가 소리도 더 들리지 않는다. 늦가을의 앙상한 가지만 남은 감나무에 빨갛게 익은 감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춥고 긴 겨울, 굶주린 새들을 위하여 남겨둔 식량이었는데 다 따지 않고 하나쯤 남겨둘 줄 아는 인정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고 이규태 논설위원의 칼럼에 바지저고리와 보자기에 관한 글을 메모해두었는데 다음과 같다.

“흥부전을 보면 한 바지저고리에 두 자식을 입혀서 길렀다고 하는데 가난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한 옷을 2명이 입을 수 있는 한복의 여유로움을 생각해 본다. 한복은 속 옷고름과 바지춤만 조여 매면 나이와 크고 작은 몸집과 관계없이 모두가 입을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었다. 우리 민족을 동포(同胞)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같은 옷을 입는다는 동포(同胞)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때 이런 여유도 바로 우리의 얼이다. 또한 우리의 보자기를 생각해 본다. 서양의 가방은 속에 있는 내용물과 관계없이 항상 일정한 공간을 유지하며 내용물이 적으면 불필요한 공간이 남는 것이고 내용물이 크거나 많으면 또 다른 도구가 필요하다. 반면에 보자기는 옮기고자 하는 대상이 작든 크든, 적든 많든 모든 것을 다 포용할 수 있으며 소임을 다하면 차지했던 공간을 평면으로 환원한다. 이처럼 우리의 문화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여유를 가지고 있고 역할을 다하면 수줍은 듯 숨어버리는 새색시의 뒷모습처럼 뭉클하다.”

엄청난 속도를 요구하는 경쟁과 디지털의 시대에 오히려 준비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오히려 여유로움과 공감의 정신이다. 지금은 사회가 고도로 전문화되어 과거처럼 한 사람이 큰 영향력을 미치던 시기는 지났고 오히려 여러 명이 팀을 이루어 업무를 수행하는 시대이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리더쉽이고 결국은 리더쉽이 강한 사람을 중심으로 업무가 처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작불을 보자! 먼저 불이 붙은 토막은 불씨가 되고 빨리 붙은 장작은 밑불이 되고 늦게 붙은 나무는 마른 나무 곁에, 젖은 놈은 나중에 던져져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같았다. 누구하나 버려지거나 쓸모없는 사람은 없었고 모두를 포용했다. 이 포용의 정신은 바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섬세하게 파악하는 공감과 따뜻하게 배려할 수 있는 정신이며, 이것이 바로 미래사회에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인성이라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의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