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비평 4]

국회의원이 추진하고자 하는 법안에 대해 반드시 관련성이 있는 주무기관(소관기관), 관련 협회나 단체, 기업계, 시민단체, 적절한 기준에 따른 학계나 전문가의 소견 등 ‘최소’ 5곳 이상의 상대방으로부터(많을수록 좋음, 10곳 이내) 의견을 조회하여, 그 회신된 의견서를 함께 첨부하도록 하는 방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를 이른바 ‘각계의견조회서 제도’라 칭할 수 있다.

입법자 개인의 자유로운 소견만을 압축적으로 기재한 ‘제안이유문’만으로는 너무나 빈약하다. 사회 각계의 목소리를 법률안의 탄생 단계에서부터 담아낼 수 있는 각계의견조회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의원이 법률안을 추진하고자 하는 경우, 일정 분량과 양식 하의 ‘각계의견조회회답서’를 말 그대로 각계로부터 받아서 법안 양식 말미에 혹은 제안이유문 그 다음 순서에 부첨하여 발의하도록 한다면, 국회의원 개인 소견이 갖는 한계점을 상당부분 보완하는 다양한 시각이 입법심사 과정 시작에 앞서 제공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입법자의 입법적 재량권 ․ 입법형성의 자유를 제도적으로 민주적으로 통제하며, 국민 각계의 의견을 의식하게 하고, 사회 각계와의 소통을 불가피하게 이행하게 함으로써 숙의민주주의의 원형을 구현해 가는 긍정적 효과가 클 수 있다.

현재 국회의원 법률안의 입법예고제는 거의 유명무실하게 아무런 실효성이 없이 운영되고 있다. 입법예고는 좋은 취지이지만 세상 속 어딘가 누군가가 의견을 개진할 때까지 막연하게 기다리는 방법에 불과하다. 매우 수동적이고 방어적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정보가 공개된듯하지만 공개되어 있지 않아 은밀하기까지 하며, 알리바이만 획득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반면에 각계의견조회서 제도는 입법조사관, 예산분석관, 법제관들의 분주한 보고서와 회답서 작성 부담을 다소나마 줄여줄 수도 있고, 또 품질을 높여줄 수도 있고, 더욱 공명정대하게 작성되도록 자극을 줄 수도 있다. 국회의원이 국회 내부 직원들에게 의존하는 환경을 보완하고, 좀 더 균형있게 외부 현장과도 정제된 방식으로 소통하게 하는 문화가 될 수 있다.

설령 각계의견조회서 제도가 오남용되어 국회의원이 특정 이해관계자와 의견조회 결과를 사전 조율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오히려 입법안이 어느 단체, 어느 이해관계자와 결탁하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증좌가 될 수도 있다.

김광수 교수(서강대)는, 글로벌 시대에서의 공익 결정은 이유 제시와 합리적 계산, 그리고 이를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기록’ 위주가 되어야 한다(“글로벌 시대의 공익론”, 「행정법연구」2007. 117면)고 강조한 바 있다. 

공익 지향 내지 확장을 위해 생성되는 법률안의 제안이유문에 국회의원이 해당 법률을 발의하고자 하는 취지와 철학을 소상히 밝히도록 권장해야 함과 아울러, 사회 구성원 다수의 의견을 반드시 발의 전에 조회하도록 하여 입법심사 과정 내내 그 의견서가 딸려가도록 하는 것이 바로 김광수 교수가 지적한 이유 제시와 기록화의 비중을 높이는 입법적 정치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것은 사법부의 재판 과정에서 시행되는 사법변론과 마찬가지로, 입법부의 입법 과정에서 갖추어가야 할 [입법변론(立法辯論)]의 모형을 갖춰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정종섭 교수(서울대, 현 의원)도 그의 저서에서, 대의제 원리에 따른다 할지라도 국민의 진정한 이익으로 돌아가는 입법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과정은 국민대표자가 언제나 단독으로 판단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국민의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도록 하여 이에 대한 숙의와 숙고를 거치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고 일갈한 바 있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입법과정에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 즉 ‘국민의 입법참여’를 강조했다.

국민의 입법참여는 법률안의 제출, 심사, 의결, 공포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가능하다. 이러한 국민의 입법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전문가들의 견해에 충실히 따라본다면, 각계의견조회 제도 또한 국민의 입법참여를 확대시키는 유효한 참여 트랙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학술논설위원 이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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