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직접해야할 일을 외부감사인에 맡기고, 그 감사인도 직접 지정하겠다는 발상

공익법인 투명성 강화 취지 적극 공감하나, 관리감독 책임 떠넘기는 보신행정화 문제, 

공무원과 회계감사인의 결탁 가능성, 회계감사인 덩어리 수수료 수익 등 타당한지 철저히 따져봐야 

 

공익법인등의 외부 회계감사 공정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대규모 공익법인등에 대해 주기적 감사인(監査人) 지정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 국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국회 추경호 의원(대구 달성군, 기획재정위, 자유한국당)이 총자산가액 1백억원 이상인 공익법인등의 경우 5개 사업연도(또는 과세기간) 중 3개 사업연도(또는 과세기간)는 감사인을 자율적으로 선정하고 2개 사업연도(또는 과세기간)는 기획재정부장관이 지정하는 감사인에게 회계감사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13일(목) 대표발의했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총자산가액이 1백억원 이상인 공익법인등은 사업연도(또는 과세기간)별로 회계법인이나 외부감사반으로부터 회계감사를 받아 그 결과를 주무부처에 제출하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외부 회계감사 제도는, 공익법인등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 2008년 도입돼 시행 중인 제도이다.

그런데, 현재 공익법인등을 감사할 회계법인이나 외부감사반을 해당 공익법인등이 직접 자율적으로 선정하고 있어,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친분이 있는 외부회계 감사인을 선정하여 봐주기식으로 부실감사를 하게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국세청은 지난 해부터 200여개의 대기업 계열 공익법인에 대해 전수 조사를 벌인 결과 36건의 위반사례를 적발한 바 있다. 이로서 410억원의 증여세를 추징하기도 했다. 현행 외부감사 ‘셀프 선임’ 방식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지난 해에도 「주식회사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어 주권상장법인 등 영리법인에 대해 주기적인 감사인 지정제도(6년 자율선임+3년 감사인 지정)가 도입된 바 있다. 영리법인도 감사인 지정제도를 도입해 셀프선임 방식의 감사에 따른 부작용을 막겠다는 취지에서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의 적용을 받는 공익법인등은 2016년 현재 총 3만 3,888개이며, 이 중 외부 회계감사를 받는 총자산가액 1백억원 이상의 공익법인등은 전체의 4.4%에 해당하는 1,495곳이다.

대규모 공익법인에서부터 보조금을 지급받는 사회단체에 이르기까지 회계 투명성을 높이자는 데에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에 앞서, 정작 공익법인등의 회계 투명성을 위해 도입한 외부회계감사 제도가 사실은 주무부처가 직접 나서서 관리감독 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회계법인 등 제3자에게 전가하고 있는 구조라는 점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들린다.

주무부처 공무원이 책상에 앉아서, 민간 영역 주체들이 고액의 수수료를 들여 받아온 회계감사 결과보고서를 따박따박 챙겨 받아두기만 하고, 그 회계감사에 문제가 있는 경우 회계감사인에게 책임으로 돌려버리는 방식 자체가 참 속 편한 탁상행정, 보신행정에서 시작된 발상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외부회계감사인을 기획재정부가 직접 지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지정 기준의 투명성 또한 알 수 없고, 공무원과 회계감사법인의 친분과 결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제도적 맹점이 잉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정부 부처가 직접 해야할 일은 떠넘기고, 그 일을 할 사람조차도 정부부처가 정하겠다는 발상은 어딘가 매우 어색하다는 것이다.

기관이나 법인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데에는 매우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는 데, 좀 더 합리적인 해법을 고려하지 않고, 너무 손 쉬운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다.

한편, 외부회계감사제도에 따라 파생되는 회계업계의 커다란 반사적 이익(수수료 시장)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 것인가 하는 진지한 논의가 국회에서 심도깊게 이뤄져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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