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순례법 제정 통해 순례 문화 활성화 필요

묵묵히 ‘국토순례’ 한 번 권하는 것으로 족하다.

 

우리 모두는 이 비좁은 남반도에서 태어나 주어진 환경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교실마다 걸려있는 태극기를 보면서 교과서처럼 애국심을 주입받아 왔다. 하지만 왜 애국심이 마음으로부터 자생하도록 두지 않고 학습되어야하는가 하는 의문도 든다.

누군가 말하길, 이 나라는 오천년 역사 동안 놀라운 문화유산과 성과를 이룬 민족이니만큼 자부심을 가질 만 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편에선, 이 나라는 남북으로 동서로 갈리고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이너써클을 만들고 텃세를 부리고 끼리끼리 노는 분열∙종파주의가 너무 극심하다고 성토한다. 

너무 쉽게 들끓었다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냄비근성도 있다고 한다.  '일 해보려고 나선 사람, 일 잘하는 사람'을 모함과 뒷담화로 어떻게 해서든지 끌어내리는 질투 모드가 너무 강한 나라라고 비토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미 이 나라는 국민의 나라가 아니라 관료귀족의 나라이며, 애국심의 의미가 ‘세금으로 공직자가족 떠받들기’로 변질된 지 오래라는 냉소도 아프게 들릴 뿐이다.

돌이켜보면, 우리에게 애국심이란 그저 살아온 마을 풍경과 정든 산하가 좋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운 부모의 나라이고, 정든 고향이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나라이기에 소중하다는 의미로 생각해 왔을 따름이다.

서민의 삶 속에 자리하고 있는 소박한 애국심에 무슨 위대한 역사며 이념이며 자학사관 따위 등을 동원할 필요가 있을 것인가. 애국심은 정부권력에 대한 지지도, 무조건 따라야할 가치도, 반드시 필요한 소속감도 아니다. 애국심은 그저 잔잔하고 일상적이며 은근한 평화로움으로부터 자리 잡게 되는 이 땅에 대한 애정이라고 생각된다.

저마다 팔십 평생 안팎을 살아가면서, 이 땅을 제대로 답사해 보지도 못하고 애국심을 논하고 애국자라 행세하는 것이 어딘가 모르게 애처롭다. 

‘국기에 대하여 경례’를 올리며 애국심이라는 거창한 강박을 따분한 형식으로 반복하는 모습들이 씁쓸하다. 

그냥 자연스럽고 묵묵하게 이 땅을 최대한 둘러보고 느끼고 가슴으로 품을 때까지 순리대로 흐르게 내버려두고 기다려주면 좋겠다.

그나마 굳이 정부와 사회가 나서서 거들 것이 있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 산하 곳곳을 걷고 둘러보면서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땅의 속살과 조우할 수 있도록 권하는 정도일 것이다. 생애 동안 꼭 한 번은 국토순례에 나서볼 수 있도록 권하고 지원해주는 것만으로 족하다.

흙을 밟고 길을 걸으며 순례한다는 것은, 특정 숙박장소를 찾아가 정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여행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국토를 순례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마을, 산, 강의 형세를 보게 되고, 풍속과 문화, 인심과 삶의 다양한 스타일들을 더욱 넓게 이해하게 된다. 

순례길 위에서 바람과 새떼, 들풀과 미루나무, 먹구름과 흙냄새를 만끽하고, 많은 영감을 얻으며 한 생애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애국심, 즉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란 것도 그로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될 것이다.

철학도 없고, 리더도 없고, 상상력도 고갈된 상태에서, 그저 각자도생식으로 지대추구에 혈안하며 각박하게 살아가고 있는 한국사회에 지금 필요한 것 하나는, 어쩌면 묵묵히 걸어보시라 권하는 딱 한 번의 순례일지도 모른다.

 

 

 

 

 

학술논설위원 겸 부사장 이경선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행정법무학과 / 헌법, 행정법, 법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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