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법 상 산업자본이 은행의 의결권 있는 지분을 4%까지만 허용한 이유는 상법상 5% 이상을 소유한 주주는 ‘주주총회 소집 청구권’과 ‘이사해임청구권’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은행의 주주총회 소집이나 이사 해임을 청구하는 것조차 산업자본에게는 허용할 수 없다는, 다시 말해 은행에 대해 산업자본이 어떤 경영 개입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은산분리는 우리 경제의 건전성을 위해 그만큼 엄격한 원칙이었습니다.

추혜선 의원(정의당)

이명박 정부 2년차인 2009년에 규제 완화 바람과 함께 잠시 9%로 높아진 적이 있지만, 4년 후인 2013년 다시 지분한도를 4%로 낮췄습니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한도를 낮춰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한도 축소를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이 통과되면 재벌도 34%까지 은행 지분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최근 5년간 금융관련법령, 공정거래법, 조세범처벌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의 처벌을 받지 않고 금융위원회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통과하면 됩니다.

점포를 운영하지 않고 비대면 서비스만 하는 은행이라는 이유로 재벌이 은행의 경영에 전면 개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4%라는 수치가 의미하는 게 뭡니까? 상법상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으로 정관 변경, 해산, 합병 등 기업의 중요한 사항에 대한 특별결의가 가능합니다. 34%의 지분은 이 특별결의를 막을 수 있는, 즉 주주총회에서 중대한 사안에 대해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는 비율입니다.

다른 주주와 연합하면 50%를 쉽게 넘겨 일반결의에 대해서도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고 이는 은행의 경영 전반을 재벌이 좌우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주주총회를 청구하지도 못 하도록 하겠다는 현행 은행법 상의 지분 한도 4%. 재벌이 은행에 어떤 입김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은산분리 원칙.

박근혜 정부 시절에 민주당이 그렇게도 지키려 했던 그 원칙을 문재인 정부 시절에 더불어민주당이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참담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여러분께 다시 한 번 호소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역사를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촛불을 들어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국민들이 재벌독식과 갑질경제구조에 분노하고 재벌의 경제력과 영향력 집중은 더 이상 안 된다고 외쳐왔음을 상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재벌의 은행지분 34% 소유 법안에 비토권을 행사해 주십시오.

(참고) 인터넷 전문은행 특례법 반대 주요 이유

첫 번째, 논의 과정에서의 졸속입니다.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은 은산분리 원칙의 훼손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충분한 여론 수렴 없는 졸속 처리 강행으로 인해 여러 차례 사회적 반대에 부딪힌 바 있습니다.

‘ICT기업을 통한 금융혁신’이라는 명분이 특혜시비에 휘말렸고, ICT기업의 범위에 대해서도 혼란만 가중시켰습니다. 그리고 영업 중인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의 사실상 대주주인 KT와 카카오의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으로 인해 향후 경영안정성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 사금고화 막을 수 있다.”, “믿고 맡겨달라.”는 원론적인 답변만을 가지고, 오로지 법안 통과를 목적으로 9월 20일 본회의 통과라는 졸속 합의에 따라 오늘 정무위 전체회의에 상정되었습니다.

두 번째, 현재 여·야가 합의했다고 한 대안은 법령 형식에 관한 헌법 원칙인 포괄위임금지원칙 위반 소지가 높습니다. 헌법 제75조에서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고 하여 특정 행정기관에 입법권의 일반적·포괄적 위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안은 비금융주력자의 자격을 제5조(비금융주력자의 주식보유한도 특례) 제1항제1호 내지 5호에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중 기업의 은행 소유와 관련한 중요한 요건은 '경제력 집중에 대한 영향'과 '정보통신업 영위 회사의 자산 비중' 2가지인데, 두 가지 모두 구체적인 내용 없이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습니다.

내일신문 기사(9. 18) (노희범 전 헌법재판소 연구관)

- “대상 기업의 요건에 대해 법률상 아무런 기준을 두지 않고 시행령에 완전히 백지위임한 것이나 같음“

- “정보통신업에 관한 요건이 중요한데, 법률에서 자산 비중 등에 관해 대강의 기준을 정해주지 않는 등 사실상 기준이 없음”

- 정보통신업 회사를 어떻게 분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미 8월 임시국회에서 크게 논란이 됨. 통계청의 표준산업분류를 적용하면 신문사 방송사 종편 등도 ICT기업(정보통신업)에 해당되고 특수분류를 적용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도 해당되기 때문.

- 자산 비중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내용이 없고, 다만 '시행령에 반영할 부대의견'으로 'ICT 또는 전자상거래업이 50% 이상이면 허용'이라고 적시.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자산비중을 포괄적으로 위임하고 있어 문제가 있다“

- "법에서 어느 정도 구체화해야 한다"

세 번째, 재벌의 은행 소유 제한 규정을 법안 본문에 넣지 않고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어 향후 정권에 따라서 얼마든지 시행령을 개정하여, 재벌이 은행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여주고 있습니다.

대안은 “재벌 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 즉 “동일인이 자연인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법안본문에 넣지 못하고 부대 의견으로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은행법 시행령에 규정된 대주주 자격요건을 특례법에서는 법률로 상위 규정화 해서 “대기업의 은행 소유를 원천 차단”했다고 합니다.

만약, 대주주 자격요건을 법률로 상위 규정화 하고 부대 의견으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제외’하도록 하여 시행령 개정을 엄격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당연히 상위 법령에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제외’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법령의 개정과 시행령의 개정 어느쪽이 더 개정이 엄격한 지는 여기 계신 의원님이 더 잘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그리고 근본적인 네 번째 이유는, 바로 은산분리 원칙의 훼손입니다. 은산분리 원칙은 금융건전성 규제의 근간이며,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합니다.

여러 의원님들도 아시다시피 소유 규제가 필요한 이유는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비롯된 경제력 집중 억제와 은행 소유로 인한 재벌의 사금고화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단순히 은행의 대주주 자격요건을 제한하는 문제가 아니라 소유 지분의 규제, 의결권 규제가 핵심입니다. 현재 대안에서는 은행법보다 행위 규제를 대폭 강화해서 재벌의 사금고화를 원천 봉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소유 규제가 엄격하게 작동하고 있는 은행법과 소유규제가 없이 행위 규제만 있는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을 비교하면서 “은행법보다 규제가 대폭강화”되었다라고 하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우리는 이미 저축은행사태, 동양사태 등을 통해서 행위규제를 하더라도 규제를 교묘히 회피함으로써, 다수의 금융소비자 피해를 야기한 사례를 이미 여러차례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감독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작동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일일이 알아내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사전적인 소유규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2017년 1월 ‘재벌개혁, 진정한 시장경제로 가는길' 좌담회에서 당시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는 "금융이 재벌의 금고가 돼선 안된다…금산분리 강화해야"한다고 하시면서 재벌이 장악한 제 2금융권을 점차적으로 재벌의 지배에서 독립시키겠다고 하셨습니다.

은산분리 원칙이 작동하고 있는 은행뿐만 아니라,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소유가 허가된 2금융권에 대해서도 금산분리를 강화하겠다던 이 정부가 왜 갑자기 은산분리 원칙을 허무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이토록 열정적이신지 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로 인해서 기존 금융권이 긴장하고 금융소비자의 권익이 증가한 것은 국내 최초의 인터넷은행 출범 때문이 아니라, 25년만에 새로운 은행이 출범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과점화된 은행을 자극하고, 기업투자에 소극적인 은행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현재 상위 4개 은행의 1% 수준이고, 리테일뱅킹(소매금융)이 주력인 인터넷전문은행을, 그것도 은산분리 완화라는 특혜를 줘가면서까지 재벌은행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금융혁신을 위해서는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은행을 출범시키고, 금융소비자의 권리를 강화해서 금융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은행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오늘 2018년 9월 19일(수) 오전 9시에 국회 정론관에서 정의당 추혜선 의원,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금융산업노조 등이 기자회견장에서 밝힌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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