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가정의례법」과 「건강가정의례준칙」의 성불평등성 혹은 위헌성?! [입법과 민생현장]

추석 명절날 곱씹어보는 「건전가정의례법」과 「건강가정의례준칙」

[입법과 민생현장]

 

추석명절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차례’도 잘 쇠시고 행복한 대화도 나누고 계신가요.

차례를 지내는 방식도 가정의 특성이나 사연을 반영해서 더욱 다양하게 변형되고 응용되고 있지요. 집안 어른이 살아계셨을 때 좋아하던 과일을 올린다든지, 모인 가족들이 함께할 수 있는 음식으로 상을 차린다던지, 가족의 그리움을 담은 시나 글을 낭독하면서 일종의 가족문화제처럼 절차를 재구성한다던지 하는 시도들이 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종교적 신념이나 가정 형편에 따라 ‘차례’를 안 지내는 가정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식이 다양하게 변해가고 있는 가운데, 현재 우리나라는 ‘차례’ 문화를 권장하는 법규범으로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과 「건강가정의례준칙」을 정해두고 있습니다.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1999년 2월에 제정되었고, 대통령령인 「건강가정의례준칙」은 1999년 8월에 제정되었습니다.

차례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이 알아서 준비하고 알아서 판단할 자율 영역일 텐데요. 왜 차례를 지내도록 권장하는 걸 굳이 법으로까지 정해 두었나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관혼상제 의식을 행할 때 기본적으로 따르면 좋을 ‘표준’을 제시해주고, 예식을 진행함에 있어 허례허식 없이 간소하게 진행되도록 계도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여전히 우리가 가꾸어 가야할 유의미한 전통문화‘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과 「건강가정의례준칙」의 내용을 보면, 어디까지나 ‘권장’하는 내용으로 조문의 표현 수위를 절제해서 쓴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차례와 기제사 등 제례(祭禮)와 관련된 규정들만 놓고 보더라도, 법률과 준칙에 쓰여진 내용들 가운데 조금 고민해 봐야할 지점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첫 번째로, 「건강가정의례준칙」 제20조제2항은 ‘기제사는 매년 조상이 사망한 날에 제주의 가정에서 지낸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주는 제례의 의식절차를 주관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제주로 정해져 있는 사람에게 너무 부담이 되는 규정은 아닐지, 아들 딸 가리지 않고 자손이 돌아가면서 골고루 균형 있게 지내도록 표현을 달리해서 권장할 수는 없는지, 그 예식을 꼭 가정에서만 지내야 한다고 못박을 필요가 있는지 다양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두 번째로, 「건강가정의례준칙」 제21조제2항 ‘차례는 매년 명절의 아침에 맏손자의 가정에서 지낸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맏손자’는 ‘맏이가 되는 손자’의 의미입니다. 유학적 전통을 따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근원은 유학으로부터 가져왔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권장하는 보편적 기준과 유학이라는 전통학문(전통규범)이 권장하는 기준이 반드시 동일해야할 이유는 없을 겁니다. 차례를 손자 즉 아들의 가정에서 지내지 않으면 뭐 어떤가요. ‘맏손자’가 반드시 아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굳이 ‘맏이’여야만 할 이유는 또 뭐가 있을까요?

건전가정의례준칙 제23조 별표5

그리고, 「건강가정의례준칙」 제23조에서 정한 제례의 절차 별표5를 보면, ‘모사(茅沙:제사를 지낼 때 그릇에 담은 모래와 거기에 꽂은 띠 묶음)’라는 표현이나 ‘참사자(參祀者:제사에 참여하는 사람)’라는 한자식 표현이라든지, ‘지방(紙榜:종이로 만든 신주)’를 먹 등으로 작성하라고 쓴 표현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방을 쓸 때 할아버님, 아버님, 부군 신위와 달리, ‘할머님0000신위 / 어머님0000신위 / 부인0000신위’ 이렇게 여성 가족 구성원이었던 분들은 모두 ‘0000’안에 본관(본관)과 성씨를 적도록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남성 혈통과 가문을 중심으로 하고 여성을 시집을 온 존재로 표기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외에도,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과 「건강가정의례준칙」 은 다양한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습니다.

법률 제5조제2항에서 ‘공무원, 공공기관·단체의 임직원 및 사회 지도층의 위치에 있는 자는 건전가정의례준칙을 솔선하여 모범적으로 지켜야 한다.’라고 규정하면서,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이 국민을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하는 신분인 것과 이분들에게 보장되는 종교의 자유를 실효성없이 짬뽕시켜 버리고 있는 점도 그렇고요. ‘사회 지도층’이라는 민주적이지 않은 표현도 거슬립니다.

법률 제6조에서는 민간단체나 개인에게 보조금 지급하는 문제를 너무 간단히 설정하고 있어 남용될 여지가 있고요.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퇴직 공직자를 배려한 규정으로 보이는 ‘명예가정의례지도원’의 위촉방법에 관한 단 하나의 조문만을 두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건전가정의례법」의 법제명에서 쓰여있는 ‘건전’가정이라는 표현 자체부터 좀 지양되어야할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건전한 가정과 건전하지 않은 가정의 법률적 구분을 예식의 준수를 기준으로 구분할 순 없기 때문이지요. 

세상이 변화한 만큼 법률의 내용과 표현도 현대적 시점에 맞게 개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법률과 준칙을 계속해서 유지해야 한다면, 특히나 예식의 필요성과 가정의 변화상을 고려해 좀 더 합리적인 표준과 절차로 다듬어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헌법이 천명한 양성평등의 정신도 명확하게 반영되어야 할 것입니다. 법제기술적 관점에서 법률과 시행령과 준칙도 법령체계의 복잡성과 난해성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정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보조금이나 명예직 위촉 규정 등도 좀 더 투명하고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법률을 소관업무로 하고 있는 여성가족부(가족정책과)가 좀 진지하게 연구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추석 명절에 즈음해 「건전가정의례법」, 되짚어 봤습니다.

 

[입법과 민생현장], 김선영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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