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 없고 교수 아니어도 연구자 활동 가능한 지식생산사회 지향하자

국민 누구든지 연구활동 가능한 시대 열어야 [법제칼럼]

학위 없고 교수 아니어도 연구자 활동 가능한 지식생산사회 지향하자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말이 있다. 아프리카 소말리아 속담이라고 한다. 이는 한 사람의 삶이 축적해온 인적 자산의 소중함을 강조한 뜻일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는, 축적된 지식과 지혜, 경험, 숙련된 업무지식이나 노하우, 개인이 겪은 역사적 사건, 저마다 간직하고 있는 특별한 스토리나 재능 등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다양한 무형의 자산과 콘텐츠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회 곳곳에는 이러한 무형의 자산을 간직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이를 더욱 단련하고 고도화하여 특별한 자산과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이들이 있다. 정규교육 과정을 통해 숙성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독학이나 자구적 노력만으로 사물·사건·현상 등에 대해 연구하며 지적 전문성을 구축한 것이다. 요즘말로 ‘덕후’들도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 분들이 가진 각양각색의 콘텐츠들이 비단 공인된 ‘명장’이 아니더라도 저술이나 영상 등으로 적절히 기록되고 보존되도록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문성을 자립적으로 어렵게 구축한 분들은 물론이고, 나름의 전문적 잠재력이 있는 분들 또한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연구 활동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대폭적으로 열어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현행 「학술진흥법」이나 기타 개별 법률에 정해져 있는 학술연구 지원 체계는 일반 대중 속에 연구역량을 가진 이들은 깡그리 배제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연구자’만을 지원 대상으로 상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연구자’는 결국 박사학위나 전문자격증 소지자, (고위공직 경력자), 대학 교수, 국책기관 연구자 그룹에 국한된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재능이 있어도, 일단 학위 등 조건과 신분이 없으면 연구자로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한국연구재단에 연구과제 신청을 할 수도 없고, 각종 공공기관에서 발주하는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책임연구원’도 될 수 없다. 아무리 방대한 R&D 예산이 책정되더라도 일반 재능인들은 연구보조원으로서도 참여할 수 없다. 

이렇게 꽉 막힌 구조로 국가적 생산성, 사회적 생산성을 혁신적으로 배가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학위도 전문자격증도 모두 한 사람의 내재적 역량을 표명하는 하나의 방편일 뿐이지, 그것 자체가 고결한 지식인 신분이나 계급장으로 경직화 되어서는 곤란하다. 우리사회를 먹여 살릴 성장동력들이 다양하게 찾아지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요컨대, 일반에 더욱 개방적이고 능동적인 학술활동 지원이 가능할 수 있도록 현행 「학술진흥법」을 개선하든지, 아니면 이와 별도로 병행적으로 ‘대중학술연구저술활동지원법’ 등 새로운 대중 학술 연구 진흥 법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단순히 공모전이나 경진대회 등 경쟁형 이벤트 방식, 수상에 따른 포상금 지급 등 당근책 방식 등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경제적으로 다소 열악하지만 연구 열의가 있는 이들에게 연구활동계획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공동 연구시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며, 연구과정에 필요한 행정 지원 서비스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학을 다녀오지 않아도, 박사학위가 없어도, 고위공직 경력자 출신이 아니어도, 전문자격증이 없어도, 대학 교수가 아니어도 학술연구 역량이 있고 의지가 있다면, 대한민국 국민 누구든지 언제든지 일정한 심사를 거쳐 자신이 관심을 두어온 분야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면서 열정과 창의적 아이디어를 맘껏 발산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소수 엘리트 지식인 중심의 학술 진흥과 지식생산 방식이 아니라, 다수 대중 모두에게 언제든지 저술과 학술 활동의 기회가 열려있는 구조로 가야, 곳곳에 숨어있는 훌륭한 선구자, 혁신가들이 더욱 많이 발굴되고 등장할 것이다. 

평범한 일반인도 학회 활동을 하고, 학술지에 논문도 게제할 수 있고, 저술이나 연구 실적이 축적되면 전문연구자로 인정받고, 교원으로 공직자로 임원으로 임용될 수도 있는 그런 열린 구조, 사다리 구조가 구축되어야 한다. 고령의 어르신도 인생의 황혼기에 저술과 연구에 몰입할 뜻이 있다면 이를 적극 도와야 한다.

이로서 우리 사회가 향유할 수 있는 지식자산과 부가가치, 일상의 행복감도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사회 혁신과 생산성 향상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학술논설위원 겸 부사장 이경선 (서강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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