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의 법률안 공동발의 제도가 너무나 형식적이고 허망하게 운영되고 있다.

소속정당이 다른 의원의 법률안은 아예 읽어보지도 않거나, 입법제안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일단 무조건 참여하지 않고 보는 태도들이 강하다.

선수(選數)가 높은 중진의원이나 상임위원장직, 당직 등을 맡고 있는 의원은 다른 의원의 공동발의 요청을 매우 성가신 일쯤으로 여기거나 열외 될 수 있다는 인식들도 있다. 일부 상임위원장의 경우, 의사진행의 중립성을 견지하려는 것이라고 변명하지만, 회의진행만 중립적으로 하면 되는 것이지 법률안 자체에 거리를 두어야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같은 정당 내에서도 의원 간에 친분에 따라, 의원실 보좌진 간의 친소 관계에 따라 공동발의 참여 여부가 결정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것은 결국 끼리끼리 편먹고 배척하고 하겠다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내가 도장을 찍어줬으니 당신도 찍어달라는 식으로 서로 거래하듯이 법률안을 주고받고 품앗이 하는 행태도 빈번하다. 내가 도장 찍어 줬는데, 저 쪽이 안 찍어주면 마치 어린애처럼 다음 번에는 안 찍어주는 등 감정적으로 응대한다.

의원이 바쁘다는 핑계로 일일이 법안을 검토할 수 없으니, 보좌진이 알아서 법률안을 읽어보고 공동발의 참여 여부를 결정하라고 맡겨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보좌진 입장에서는 의원이 신뢰한다는 의미이니 좋을지 모르지만, 이를 부담스러워하는 보좌진도 있고, 무엇보다 그 자체가 정상적인 권한 위임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당 지도부의 의지에 따라서 ‘당론’이라는 이름으로 공동발의가 ‘강제’되는 문제도 있다. 딱히 내 소신에 안 맞는 내용이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을 깡따구 있는 의원이 많아보이지도 않는다. 정당의 하나 된 의지와 액션을 보여주는 것도 정치의 묘미이긴 하지만, 법률안 발의에 있어서 의원의 입법 재량권을 압도해버리는 ‘정당강제’의 문제는 여전히 찜찜한 부분이다.

물론, 공동발의 참여율은 법률안이 갖는 정치적 함의나 시의성, 사회적 파급도가 중요한 변수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법률안 추진을 주도하는 의원실의 동참 노력에 따라 공동발의 참여율이 더 크게 좌우된다. 다시 말해서, 법률안의 내용의 질(공익성)과 결재시스템에 따라 참여율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분히 ‘인간관계’와 ‘발품을 얼마나 팔았느냐’로 결정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기분 따라, 감정 따라, 친분 따라 발의서식에 도장 찍어주고서는, 정작 그 가운데 입법취지가 그럴싸한 것들만 골라서, 마치 자신이 입법화를 위해 엄청 노력이라도 한 것처럼 의정보고서에 써먹고 지역 유권자를 기만한다.

공동발의에 참여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지만, 이것을 또 다른 차원의 ‘입법실적’으로 봐줘야할지, 단순히 ‘의미있는 들러리’를 서 준 것으로 봐줘야할지 애매한 점이 있다.

부차적인 문제이기는 한데, 공동발의 작업이 전자시스템을 통해서 검독되고 결재되는 방식이 아니라, 주로 종이로 출력돼서 300명의 의원 사물함으로 전달되는 방식이 여전히 선호되고 있기 때문에, 해마다 토너와 종이 값만 십억 원 이상은 휘발되고 있지 않을까 추정된다.

공동발의 작업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행태들에는 저마다 다 그럴만한 상황과 입장들이 있겠지만, 사회적 강제규범인 법률이 탄생하는 첫 단계부터 좀 더 진지하게 검토되고, 시스템상으로 일부 조문에 대해서는 반대한다거나 조건부 의견를 달아가면서, 큰 틀에서 공동발의에 참여하는 등, 좀 더 합리적으로 제도를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고심해 본다.

 

 

 

 

 

학술논설위원 겸 부사장 이경선 

(서강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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