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상징「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부터 폐지해야

경제부터 도덕까지 총체적 위기 직면한 한국사회

대통령부터 예우특권 내던지고, 공공부문 개혁 나서야

 

한국사회의 경제지표가 온통 적신호뿐이다.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도 사회도 문화도 온통 ‘쏠림현상’과 ‘각자도생’, ‘지대추구’로 치닫고 있다. 좌우 진영 간의 편 가르기 속에서 중간계의 다수 서민들은 기댈 곳을 못 찾고 부유하고 있다. 

균형 잡힌 목소리를 내야 할 중도개혁적 지식인들도 보이지 않는다. 경제부터 도덕까지 한국사회의 총체적 위기 국면 앞에서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총대를 메기도 싫고, 생존(생계)하기에도 급급해서 일 것이다.

한국사회는 지금 리더도 없고, 어른도 없다. 얼굴 좀 알려지고 새로워 보인다 싶은 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영락없이 생활과 주장 간에 간극이 큰 위선군자들이다. 교양 있는 척, 점잖은 척 하는 선생들은 부지기수다. 그러나 이 양반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하나같이 그동안 누려온 기득권 한 점 내려놓을 작은 용기도 용의도 없다. 작은 변화 하나 도모할 콘텐츠도 열정도 없는 종지 그릇들이다. 

한 쪽에서는, 공무원 되는 것, 공공기관 계약직으로라도 들어가 '1등 시민 계급'이 되는 것이 꿈인 세상이 되어 버렸다. 남과 비교하며 좀 더 안락함과 우월감을 느끼는 위치를 점하기 위해 서로 천박한 경쟁들을 하고 있다. 변호사부터 중개사까지 온 세상이 수수료 기반 자격증 따기에 골몰하고 있다. 자격증 없인 직역 간 이동이 꽉 막혀버린 장벽사회라, 너도나도 자격증 따기 경쟁에 몰입하며 미래의 불안감을 달래고 있는 것이다.

청년 세대가 힘드니 수당으로 도와야 한다고 외치는 포퓰리즘 지자체장들의 전략적 호들갑도 요상스럽다. 그렇게 수당으로 우쭈쭈 해준 청년들이 손쉽게 단맛보는 습생에 길들여져, 공헌의식 있는 사회 일꾼으로 성장해 줄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정작 올망졸망 커가는 어린 아이들 먹여 살리느라 바쁜 30대, 40대 가장들은 역대 최고의 실업률 속에서, 힘들다는 비명 한 번 내지르지 못하고 동분서주 하고 있다. 생활 형편이 어려운 자식들에게 반찬이라도 보내주려는 마음에 50대, 60대 장년들도, 70대, 80대 노년들도 새벽 찬바람을 맞으며 꾸역꾸역 일선 현장으로 나서고 있다. 국가예산도 복지예산도 최대 규모인데 정작 민생은 더더욱 각박하고 핍진하다.

공공기관의 청탁채용비리, 귀족노조의 고용세습, 공직자들의 친인척 채용, 지방 토호유지들의 은수저 자녀들의 음서채용 문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공공부문의 과도한 특권을 적절히 하향조정하고, 행정서비스를 친절하게 바로 세우고, 불필요한 잉여사업과 공룡화된 기관 인력을 줄이거나 직역전환 배치하고, 엄청난 규모의 법정공공예산을 민간영역으로 전환시키는 등의 굵직굵직한 근본적 개혁 과제들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려면, 민간 기업에게 일자리 나누기를 강권하며 다그칠 게 아니라, 청와대부터 바꾸고, 공공부문부터 먼저 바뀌어야 한다. 나라가 망하든 말든, 조용히 문제 안 될 만큼만 일하면서, 이력도 쌓고 연금도 쌓고 해외투어 다니며 살겠다는 썩어빠진 생각들이 죄악이라는 것을 깨우쳐 줘야 한다. 받는 처우의 3배만큼 더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는 자세로, 더 겸손하고 더 친절하고 분주하게 임하게 해야 한다.

계급장 의식 없이 국회의원이 직접 운전하고 다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평범한 자원봉사자로 농부로 돌아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수수료 뜯어먹는 전문자격증과 관리완장형, 영감나리형 일자리가 굴림하는 사회가 아니라, 가장 험한 일을 하는 미화원이 우대받고, 현장을 누비며 사업을 전개하는 자수성가형 도전가들이 대접받고, 창조하고 혁신하는 아이디어를 창안해 내는 사람들이 예우받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누가 나서서 이 지대추구에 미친 세상을 바꿀 것인가. 누가 나서서 이 위선과 불친절, 직무태만과 뒷담화, 가진 자의 자랑질에 찌든 사회를 리셋팅할 것인가. 누가 세상의 전체를 조망하고 통찰하며 철학이 있는 사회를 말하고, 국민의 가슴에 대오성찰의 울림을 줄 것인가.

기댈 곳은 현재로선 나라의 대표일꾼, ‘대통령’ 뿐이다. 

대통령 스스로 급여를 줄이고, 의전형 행정관 인력을 줄이고, 이미지 기획 일정을 줄이고, 퇴직 이후의 각종 예우들을 과감하게 내려놓으셔야 한다. 어마무시한 국가 부채와 가계 부채가 절반으로 줄 때까지, 아니 십분의 일만이라도 줄어들 때까지, 국밥과 찌개, 반찬 3개로 취식하겠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법조 출신으로서의 엘리트적 선민의식과 애둘러싼 친분연고주의도 과감히 벗어던져야 한다. 그리하여, 선거 공신과 실세 추천으로 들어온 정치권 어공들, 나아가 공공부문 240만 종사자 앞에서 추상같은 본을 보이셔야 한다.

대통령이 먼저 행동해야 한다. 

전 정권의 인적 적폐만이 아니라, 현재의 낡고 과잉화된 국가운영체계, 즉 법제적폐부터 하나씩 과감히 철폐해 나아가야 한다. 이 나라에 국가재정을 구조적으로 좀 먹고 있는 법제적폐, 하나마나한 법정사업들을 뒷받침하고 있는 구식법제, 관료들의 퇴직 이후 일자리용으로 만들어놓은 각종의 법정사무와 산하기관, 관변단체법제들을 걷어내자고 역설해야 한다. 

경제가 살고 나라가 살려면 여기 찔끔 저기 찔끔 이념과 진영에 따라 고쳤다 뗏다 하는 ‘규제개혁’ 수준의 접근이 아니라, 국법체계 전반에 걸친 ‘법제 대개혁’, '국법체계 대수술'이 필요하다.

한 가지 예시해보자면, 법제개혁의 첫 시작으로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을 폐지하여 제왕적 대통령 시대를 종결시켜야 한다. 필요최소한의 전직 대통령 예우는 국가공무원법과 공무원연금법으로 족하다. 대통령예우법에 의한 연금이 아니라 국민연금과 비슷한 수준의 공무원연금법에 따른 연금 수급으로 만족하는 대통령 시대를 열어야 한다. 개헌 추진시 헌법 제85조(전직대통령의 신분과 예우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 따위도 삭제 조치해야 한다. 

그와 함께, 대통령을 역임한 이가 가장 낮은 곳, 가장 소박한 곳, 가장 척박한 곳으로 회향하여, 운전기사도 필요 없고, 혈세 비서관들로부터 수발 받는 일 없이, 봉사자로 살아가겠다는 결기를 보이셔야 한다. 퇴직 이후에도 소박한 서재와 국민의 마음 속에 기억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대통령 기념관도 기념물도 세우지 말 것이며, 기념사업도 원치 않는다는 결언도 필요하다. 

대통령 스스로 특권을 낮추고 낮출수록 개혁의 힘은 커지고 또 지대해질 것이다. 그러한 결기의 칼로, 무능하고 보신화된 공공부분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

촛불이 횃불이 되어야 한다. 현 정권은 촛불에 진 '빚'을 반드시 갚아야 한다. 대통령이 '진짜 개혁의 횃불'을 들고 죽기를 각오하고 앞장 서야 한다. 그리한다면, 냉소와 자괴감에 빠져 침묵하고 있는 국민 다수도 기꺼이 거들며 개혁세력이 되어 줄 것이다. 

독재권위주의 시대가 낳은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부터 폐지하시라. 나아가, 여기저기 숨어 있는 낡고 과잉화된 법제적폐 청산과 함께, 어수선하고 생동감을 상실한 한국사회에 묵직한 변화를 도모하시라.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위기로 치닫고 있는 대한민국의 경제도 윤리의식도 그로부터 다시 재정립되어질 것이다.

 

학술논설위원 겸 부사장 이경선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행정법무학과 / 헌법, 행정법, 법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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