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화된 교과서 기반 지식 탈피하고, 세상변화와 개인감성까지 함께 담은 학문 고민해야

[특집인터뷰] 변화무쌍과 천태만상, 복잡계 사회에서 ‘법학’이 가야할 길

정형화된 교과서 기반 지식 탈피하고, 세상변화와 개인감성까지 함께 담은 학문 고민해야

 

‘김광수 교수(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행정법)’ 커피 인터뷰

법리적으로 따져야할 사건사고는 물론, 입법적으로 해결해야할 사건사고가 범람하고 있다.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고, 사람들의 욕구와 생각의 영역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되고 있다. 기초가 중요하다지만 고루한 도그마로 진부하게 점철되고 있는 법학 교육도 변화가 불가피해지고 있다. 법학의 새로운 지식 트렌드, 새로운 사회적 역할, 그리고 나가야할 방향에 대해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김광수 교수로부터 조목조목 생각을 견문해 본다.

 

■ 공법 연구자로 지내오시면서 가장 보람있었던 학문적 성과는?

☞ 행정법 등 공법분야 연구자로서 30년간 정진해 왔다. 연구자로서의 생활이란 것을 여러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겠는데, 우선 수업에 충실한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고, 연구 활동 그리고 사회봉사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겠다.

법학수업의 측면을 얘기해 보자면, 과거 학부 체계와 시험을 통한 법관 양성 체계에서, 2007년에 법학전문대학원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 체계로 교육 시스템이 크게 바뀐 것을 가장 큰 변화였다고 할 수 있겠다. 법학전문대학원 소속 교수로서 법조인이 될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맡게 된 것을 가장 큰 행운이자 보람으로 생각한다. 특히 공저로 <판례교재 행정법> 책 등을 만들어 예비법조인들의 지식서로 삼게 한 일이 보람으로 남는다.

연구 활동 측면을 얘기해 보자면, 행정법 개별 분야에서 주로 경찰법, 지방자치법, 환경법 분야에 관심을 두어 왔다. 환경법에서는 특히 ‘지속가능한 발전’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것은 리우 환경정상회의에서 환경정책 지도이념으로 채택된 것인데, 이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면서 우리 사회에 변화를 불러오도록 노력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해 본다. 알다시피 지속가능한 발전에는 환경생태계 보존, 경제성장, 사회통합 의 3가지 이념이 다 포함된 개념이다. 이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을 가지고 우리의 미래 사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화석 에너지 소비와 고갈 문제도, 현 정부가 강조하는 탈원전 친환경 재생에너지 문제도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지도이념 속에서 다뤄지는 문제들이다.

사회활동 측면을 얘기해 보자면, 학회활동이 주가 된다고 할 수 있겠는데, 공법학회(부회장), 행정법학회(부회장), 경찰법학회(회장), 지방자치법학회(부회장), 환경법학회(부회장) 등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군포환경자치시민회, 군포YMCA와 군포민주교육센터 설립준비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도 묵묵히 함께 해왔다.

 

■ 최근 가장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계신 주제는?

☞ 최근에 가장 몰입했던 연구 주제는 ‘비무장지대(DMZ)’에 관한 내용이었다. 남북 해빙 무드에서 비무장지대를 어떻게 잘 보존하면서 동시에 활용할 것인가 하는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했다. 비무장지대 문제는 조금 거창하게 표현해 보자면 국제적 문제이고 또 인류사적 문제라고 봤다. 적대적으로 대치해 왔던 공간을 어떻게 평화적인 공간으로 바꿀 것인가, 여기에는 남과 북이 해야 할 일이 있고, UN의 협조, 국제적 공조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 북한의 환경 문제가 곧 한반도의 환경 문제다. 비무장지대는 북한의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인 셈이다. 비무장지대에 대해서는 많은 선행연구가 있는데, 위 연구는 비무장지대에 대해 가장 먼저 실천되어야할 법제적, 규범적 연구라는 점에서 차별화되고 실천적인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리고 ‘헌법 개정과 토지 공개념의 문제’에 대해 집중 연구했다. 전번에 나왔던 정부 개헌안에 토지공개념이 들어가 있다. 1989년에 지가가 크게 앙등되면서 토지공개념 3법이 나왔는데(토지초과이득환수제, 택지소유상한제 및 개발이익환수제) 이것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이 나왔다. 그래서 토지공개념이 일반의 관심에서 사라지게 됐다. IMF라는 경제위기와 지가 하락으로 토지공개념이 문제가 되지 않다가, 다시 아파트값이 급상승하면서 토지공개념이 재차 부각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토지공개념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구현해야 하는가를 고민해 보고자 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중국의 법치교육’에 대해 깊이 있게 들여다봤다. 중국어를 독학으로 10년 넘게 공부해 왔다. 중국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나라인데, 중국의 법체계 및 운영원리에 대해 우리 사회가 뜻밖에 매우 무지한 상황이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라서 법을 힘이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중국 사법재도의 특징은 법 위에 당이 있고, 법관 위에 당의 지도가 있었다. 그래서 법관으로 당성이 강한 사람이 임명되어 왔다. 사회가 단순할 때는 이런 것이 통용이 되었는데, 중국이 OECD에 가입하고 내부 경제성장도 빨라지면서 사회가 복잡해지고 사회에서 발생하는 이해의 조정 문제를 다루기가 어려워졌다. 객관적인 법의 자리에 인정이나 관계(꽌시)가 대신하게 되어 고민이 깊어지게 된 거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법학교육을 정상화시키고 전문화를 중시하게 되었다. 이런 교육을 받은 율사들이 법관이 되도록 제도개편을 했다. 이런 부분을 잘 알아야 중국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가능하리라 본다. 북한을 볼 때에도, 북한과 대화가 많아질 텐데 이런 점을 유의해서 봐야한다. 서구 사회에서는 약속이 중요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제재를 받는다. 그러나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이해관계에 따라 약속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점이 다르다는 점을 잘 파악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최근에는 ‘인공지능’에 관한 연구에 큰 매력을 느꼈다. 인공지능이 우리 사회에 현실화되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기계로 대체되면서 생활이 더욱 편리하고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다보면 사람이 더 이상 고용되지 않는 사회가 온다. 자율주행차로 운전기사가 일자리를 잃게 되고, 회계사나 변호사 등 지적 영역까지 인공지능이 대체 가능해진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직장이 없는 사회가 도래할 수 있다. 과거보다 사용할 수 있는 재화가 많아지는 데도 소비할 여력은 줄어든다. 그래서 기본소득이니 사회복지증대니 하는 문제로 논의가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4차 산업혁명 기술의 확산에 따른 사회 변화에 대처하는 법적 연구가 중요해 지고 있다.

 

■ 공법 분야에서 최근 가장 뜨겁게 연구되고 있는 주요 의제들은?

☞ 주지하다시피 헌법 분야에서는 헌법 개정 문제가 가장 큰 이슈가 되어왔다. 지방분권화도 공법학자들의 주요 연구과제가 된다. 그 다음에는 난민의 법적 지위, 외국인의 법적 지위가 가장 큰 문제가 되었다. 이 문제는 유럽, 미국도 같이 겪고 있는 문제다. 국내에서는 난민법학회도 결성이 되서 움직이고 있다.

행정법 분야에서는 3, 4년 전에는 행정소송법 개정이 큰 화두가 됐었다. 국회에 상정되지도 못하고 폐기되어서 아쉬웠다. 그리고 환경법에서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비. CCS(이산화탄소 포집 저장) 문제에 대한 연구자들의 관심이 컸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와 관련된 문제인데, 이를테면, 빅데이터 시대에 개인의 정보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였다. 기술이 적극 활용될수록 개인이 불안해지는 문제가 있다. 단계 단계마다 세밀한 조치들이 들어가야 할 것이다. 예컨대 개인정보제공 동의서에 승락을 안 하면 책 한 권도 못 산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하는 등의 논의들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

 

■ 프랑스 등 해외 공법학의 영향으로부터, 우리나라의 공법학의 자립과 발전 수준을 평가해 본다면?

☞ 이를 답해보자면 먼저 거시적 관점이 먼저 필요해 보인다. 세계의 법학을 크게 대륙법계와 영미법계로 나눠보면 대륙법계에서도 프랑스혁명을 거쳐 나폴레옹법전이 중심이 된 프랑스법이 근대법의 중심축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판례인 프랑스 행정법은 배우기가 다소 어렵다. 반면 독일은 입법이 매우 상세하고 주석서가 많이 나와 있기에 참고하기가 좋아 독일 법학을 선호하기도 했다.

강조할 것은, 서양의 법을 우리와 완전히 다른 법체계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마치 지금 우리가 자연스럽게 입고 있는 양복과 넥타이처럼 서구의 법이 우리와 안 맞는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서구의 철학과 법이 우리의 영역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인류사회의 발전을 단순히 동서양으로 구분하는 것도 맞지 않다. 과거 서양도 동양의 문물을 받아들였듯이 우리도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만, 독일법, 프랑스법, 일본법을 쓰면서 항상 염두할 것이, 법을 쓸 때 법을 자신의 나라에서 만든 사람의 생각과 법을 가져다 쓰는 사람의 생각이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서구의 법을 계수할 때, 우리 나름의 법질서로 승화해서 적절히 쓰고 있는가를 봐야 한다. 이것이 우리 공법학의 자립과 발전의 수준을 보는 하나의 시각일 수 있다고 본다.

프랑스와 독일, 일본의 지식을 많이 들여다보고는 있지만, 항상 드는 생각은 우리의 문제를 우리의 머리로 풀어가는 것에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우리의 문제를 우리의 머리, 우리의 힘으로 분석하고 우리 식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항상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외국에서는 어떻게 할까라고 하는 것을 가장 먼저 조사를 하고 연구하는 데 천착하고 있다. 일단은 해결된 것 같지만, 조금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거나 삐긋하게 되면 원칙의 문제로 다시 되돌아가게 된다. 토지공개념이 그런 예다. 우리 나름 고민해서 토지공개념을 제시했는데, 헌재에서 위헌 판결이 나버리니까 그 다음에 토지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져 버리게 되었다. 우리 스스로에게 맞는 나름의 방식을 만들고, 나름 수리하고 보충하고 조금씩 보수할 수 있는 체제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는 아직 우리 사회가 유연성이 부족하다고 본다. 젊은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서 열심히 배우는 것은 좋은데, 남의 것을 배우는 것과 함께 우리 나름대로의 고유의 최고의 제품(지식)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개발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남의 것을 단순히 모방하는 시대는 지났다.

 

■ 행정법을 비롯 법학 교육의 현주소와 새로운 변화 방향은?

☞ 로스쿨에서의 판례 실무가 많이 도입되었다. 각 분야에 판례 엄청 축적되어 있고, 실제로 그걸 알아야 시험을 치를 수 있다. 법학전문대학원 도입 취지는 질문 위주, 토론 위주 수업을 지향했던 것인데 그것이 잘 안 되고 있다. 강의 위주 수업이 계속되고 있다. 이것이 앞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다만, 로스쿨 수업 자체는 탄탄해졌다. 로스쿨 수업 밀도가 높아졌다. 물론 지식 전달 위주, 나쁘게 말하면 수험 위주로 경도되어 간다는 문제가 있다. 가급적 현실적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실무 위주가 아니고 이론적인 교육도 균형 있게 되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잘 안 되고 있다. 암기 위주가 아니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해결하는 그런 능력을 배양하는 교육이 되었으면 좋겠다.

 

■ 행정법과 행정학, 공법학과 사회과학의 학제적 융합과 소통 방향에 대한 생각은?

☞ 한때는 행정학자들의 정책 참여가 굉장히 활발했었다. 정부위원회라든지 정부 정책 수립 과정에 행정학자들이 요소요소에 포진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꼭 그렇지도 않다. 행정법학자들이 그런데 참여하지 못한 지는 오래되었다. 그런데 행정학자들 마저도 정책 참여가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행정학과 행정법학은 사실학이냐 규범학·가치학이냐의 차이가 있어 접근 방법이 좀 다르다. 그럼에도 연구하는 대상은 같은 점이 있다. 가령 지방자치의 영역에서 행정학자들은 지방자치행정을, 법학자들은 지방자치법제를 연구한다. 교차하는 부분이 많기에 서로 협력하고 협업해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런데 잘 연결이 안 된다. 생각해보면, 행정학자들은 주로 미국 지식을 공부하고, 행정법학자들은 독일 것을 주로 공부한다. 그래서 서로 어울리기 어려운 여건의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러다 보니 잘 어울리지 않고 만난 일도 없고 학회도 다르고 그렇게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만, 연구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만날 일이 있게 된다. 데이터베이스가 잘 되어 있다 보니, 키워드를 입력하면 법학논문만이 아니라 행정학 논문도 같이 접하게 된다. 서로가 연구결과로 만나고 소통하고 있는 셈이 아닌가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사회과학 서적을 많이 접해보려 노력하고 있다. 진화생물학이라든지 뇌과학 등 요즘 사회과학 트렌드를 새삼 주목하게 된다. 이런 분야가 행정법학에 당장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걸 논문 주제로 삼기에 적합하지는 않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을 읽다보면 우리 사회가 참 많이 변하고 있고, 우리가 참고해야할 지식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주제들을 담은 서적들이 우리나라 것이 아니라 외국 연구 성과들인 경우가 많다. 외국에는 학제간 연구로서, 가령 행동경제학에서는 이성보다는 감성에 의해 움직인다는 주장이 이미 나와있다. 우리가 가진 근대적인 학문 기반이라는 게 인간의 합리성이나 이성인데, 서구의 연구는 감성이나 개인의 성향도 또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감성과 비합리성의 영향력 이런 것들이 정부정책이나 국가경영에는 참고할 사항이 없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부분에 대한 연구가 아직까지는 부족하지 않나 생각된다. 우리가 교과서에서만 배워온 지식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과거의 정형화된 지식과 연구의 틀에 너무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 공법학자로서 최근 사법행정에 대해 진단해 본다면?

☞ 현재 사법적폐, 사법농단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학자로서 예의 주시하며 보고 있다. 사법이 입법이나 행정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이라면 가장 먼저 소극성이라는 속성을 들 수 있다. 원고가 소를 제기해서 해결해 달라고 요구를 해야 비로소 사법이 개입하게 된다. 그런데 사법에 대해서 일반인들이 다소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사법이 생각보다 굉장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법부는 우리 사회 내 정책의 합헌성과 적법성을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또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은, 사법이 입법이나 행정과는 분리되는 별도의 세계이거나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다. 이것은 굉장히 잘못된 오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9인의 판사로 이뤄져 있고 종신제다. 대통령이 연방대법관으로 누구를 임명하는가를 보면, 집권여당의 정책이나 이념을 충실하게 따를 수 있는 사람을 임명하게 된다. 미국의 사법이 마치 전문지식을 가지고 합리적인 판단만을 한다고 보면 그건 잘못된 것이다. 공화당이나 민주당의 당 이념에 충실하게 따라 재판을 하는 사람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적이거나 경제 우선주의적인 생각을 가진 대법관들이 경제 편향적인 판결. 정권의 이념에 따른 판결을 했다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주목해야 할 것은 사법부가 국가 정책과 완전히 유리된 고립된 섬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국민의 아픈 곳을 긁어주는 정부를 만들면 사법부가 자기 마음대로의 자의적인 재판을 못하게 된다. 물론 그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려는 정의의 수호자 같은 판사들이 없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사법부를 진짜 개혁하려면 무엇보다 정치적 환경을 민주적으로 바로 세우는 것이 더 근본적인 과제이다.

 

■ 공법학자로서 최근 정부행정에 대해 진단해 본다면?

☞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 전망이나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비판적인 얘기가 다소 나오고 있다. 그런대, 사실 우리나라 경제는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한 달 수출로 흑자가 100억불, 즉 10조 원이다. 이런 수준은 굉장한 것이다. 다만, 이런 수출 호황 국면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한 축에 있는 것이고, 또 한 축에서는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것, 그리고 고용된 사람과 고용되지 못한 사람, 임금 격차, 고용 불안 등 이런 문제가 고민이 되고,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국가는 왜 실패하나(Why Nations Fail)」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을 보면, 북한과 남한, 미국과 멕시코 접경에 나눠진 마을의 차이를 분석하고 있다. (해마다 다소 변동이 있지만) 북한과 한국의 소득격차가 대략 22배 차이가 난다. 똑같은 민족 똑같은 두뇌인데 왜 커다란 차이가 나는가를 규명하고 있다. 이 책은 ‘포용적인 제도’와 ‘약탈적인 제도’를 강조하고 있다. 현 정부가 포용국가로 가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개념을 누가 지었는지 참 잘 지었다고 본다. 이 개념에는 상생의 개념이 들어가 있다.

포용사회에서는 이를테면 고용세습, 특혜채용, 채용비리 이런 것들이 국가를 좀 먹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포용사회는 금수저, 은수저가 아니라 출발선상에서부터 차이 없이 기회를 공정하게 같이 부여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는 사회다. 어떻게 하면 적재적소에 능력을 가진 사람을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회, 어떻게 하면 강자의 약자에 대한 약탈을 해소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회다. 포용성장, 포용사회를 지향하자는 방향성을 더욱 깊이 고민해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 공법학자로서 최근 입법부과 입법산업의 흐름에 대해 진단해 본다면?

☞ 과거에는 국회를 통법부라고 부르곤 했다. 미국에서는 고무도장(rubber stamp)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것이 변했다. 입법조사처도 세워지고, 국회도서관도 매우 이용하기 편리하게 개편이 되었다. 그리고 우수한 인력들도 많이 국회에 유입돼서 입법지원 기능도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이런 것들이 의원입법의 증가와 다양화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면 이외에, 가장 큰 문제점은 특별법들이 너무 많다고 본다. 그리고 세세한 분야를 규율하는 법률들이 너무 많이 양산되고 있다. 법들 간의 모순, 법들 간의 체계적 구조의 충돌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것을 거시적으로 조정하는 기능, 입법 간의 체계 모순을 파악하고 좀 더 효율적인 입법을 만들게 하는 그런 조정 기능은 매우 부족하지 않나 생각된다.

그리고, 현재 입법이 ‘자기제조’가 아니고, ‘주문제조(OEM)’ 방식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의원실에서 의제를 의뢰하면 법제실이 지원하는 의존적 방식이거나 외부 단체에서 만들어 주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이다. 우리나라 정당의 경우에도 여당이고 야당이고 자체적인 입법 역량이 매우 떨어진다. 여의도연구소나 민주연구소 등이 있는데 입법역량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자당의 장기적인 비전을 개발하고, 거기서 공약도 제공하고 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헤리티지재단이나 케네디재단 등 연구를 기반으로 하여 입법활동을 도와주는 정당 연구기관들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입법전문가들이 비례대표로 국회에 조금 더 진입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 독자들을 위해 덧붙여 전해주실 말씀은?

☞ 국민 각자 자기 꿈을 펼치고 나가기가 참 어려운 사회다. 개인의 삶이라는 것이 국가의 발전과 떼놓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국민이 모두 잘 살고 편안한 사회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전후 장기간 노력해 왔고 이 정정도의 성과를 이뤄오기는 했다. 그러나 주위를 돌아보면, 날마다 정치권부터 사회 일각까지 각계에서 주도권 싸움만 벌어지고 있다.

우리 국민은 뭘 믿고 살아야 하는 고민이 든다. 어떤 사람은 우리 사회를 각자도생의 사회라고들 한다. 아무도 지켜주는 이가 없는 사회다. 유엔에서 행복지수를 조사하고 있는데,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중간에서 뒷 순위로 나온다. 그 조사 사항 가운데 ‘내가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없다’고 답을 한다. 이게 누구의 책임이라고 봐야할 것인가. 주위에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때, 그러면 행정, 입법 혹은 사법기관이 그 기능을 하고 있는가를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답변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의 주장을 조금 낮추고, 다른 사람을 돌아볼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각자 알아서 살아라 하고 방관하는 것은 너무 비참한 사회가 아닌가 싶다. 포용적인 사회로 접근해 가기 위해서 우리 모두 고민하고, 법학도 그런 방향으로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 인물소개 : 김광수 교수는 서울대 법학사, 동대학원 법학석사, 법학박사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대학교 연구생, 순천향대 전임강사·조교수, 미국 UC Berkeley Law School 방문교수, 명지대 조교수‧부교수·교수를 거쳐,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정교수로 재직 중이다. 

행정법 일반이론, 토지공법, 지방자치법, 자원순환법 분야 연구에 매진 중이며, 80여 편의 논저가 있다.

 

※ 인터뷰어  :  논설위원 겸 부사장 이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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