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광석 전 SBS 대기자, 앵커
[기고] 엄광석 전 SBS 대기자, 앵커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는 집단이기주의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작게는 소소한 민생현장에서부터 산업, 정책의 집행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도사린 집단이기주의의 덫에 걸려 속절없이 주저앉고 말았던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번 미디어법 개정을 앞두고도 이런 현상이 되풀이되는 것이 아닌가 심히 우려된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모습 속에서 그런 기미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집단이기주의의 포로가 된 현실

미디어법 개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방송의 진입 장벽을 허물 경우 대기업과 거대신문의 진입으로 여론의 독과점 현상이 빚어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그러나 사실은 그래야만 방송의 여론 독과점을 깰 수 있다는 논리도 성립된다.

왜냐하면 최근 몇 년 사이 지상파방송의 편파보도야말로 우리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무시한 처사로서 결과적으로 사회를 갈라놓고 경제를 파탄시키면서 국민을 혼란 속에 빠뜨린 더 큰 해악을 끼쳤기 때문이다. 광우병 사태와 촛불집회 보도가 그랬다. 다른 쪽 국민들의 생각과 의견은 철저히 무시됐다.

80년대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조치로 이루어진 현재의 지상파 방송구도는 주파수의 제한이라는 기술적 한계로 방송의 독과점 현상을 빚게 했고 노조가 장악한 방송은 편파방송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제 이런 구도는 깨어져야 한다. 방송의 공정성 보도라는 당위성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뉴미디어 시대의 도래로 방송환경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달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서비스들을 방송과 통신에 제공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는 두 영역의 경계마저 허물고 말았다. 이제는 서둘러 콘텐츠를 걱정해야 하고 디지털 전환을 서둘러야 하며 광고시장을 개편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허물어진 방송과 통신의 경계

세계 10위권 경제력에 비해 우리나라의 미디어 경쟁력이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은 부끄러운 일이다. 정보통신 강국이라고 자부하면서도 스스로 개발한 독자적인 신기술, 기술융합을 거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동안 케이블TV, 위성TV, 위성DMB, IPTV 등 뉴미디어가 속속 등장했지만 여전히 우리의 방송시장은 지상파 재송신 문제가 대두됐고 지상파 콘텐츠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인 상황이다. 그래서 지상파 방송의 수직 독과점이니 방송의 불균형 발전이니 하는 말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우리나라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의 콘텐츠를 들여다보면 선정주의 등의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다.

더구나 광고시장의 상황은 지상파에 날로 불리해지고 있다. 콘텐츠 개발을 위해 지상파 시장에 자본의 유입이 절실한 까닭이다. 그야말로 산업으로서 방송시장의 존폐가 걸린 문제다. 그런데도 낡은 사고에 얽매어 시대의 변화에 맞춘 제도의 개선을 거부한다면 이보다 더 어리석을 수는 없다.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은 비단 산업에 국한되는 말만은 아니다. 방송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이미 언급했듯이 방송도 엄연한 산업이다. 방송을 언론이나 문화로만 보는 아날로그적 시각은 시대착오적이다.

미디어법 개정, 정치 논리 벗어나야

국회도 이번 미디어 관련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가 좌우대립으로 몰고 가선 안 된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번 미디어법에 미비점이 있다면 보완하고 특히 야당의 경우 여당 안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일례로 대기업과 신문의 참여비율은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문제의 핵심은 처음부터 건전한 언론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정치논리에 포위되어 있다는 점일 것이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지한 논의와 국민적 토론을 거쳐 우리의 지상파 방송의 제 모습을 찾아주는 노력이 진행되었으면 한다. 방송현업에 근무했던 필자로서 가장 곤혹스러웠던 점은 우리 방송이 언제쯤 가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부연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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