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홍 의원의 160차 재선일지

국회의원들 저마다 자신의 의정활동 홍보를 위해 SNS 활용에 매달린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최근에는 의원들 모두 앞다투어 유튜브 등 동영상 매체에 익숙해지려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아날로그적이기도 한 일기, 일지 타입으로 의정활동의 단면을 하나씩 하나씩 담아내고 있는 의원이 있다. 바로 황주홍 의원이다.

황주홍 의원은 지난 15일까지 162회차 재선일지를 기자들에게 발송했다. 일지는 당내 회의 상황, 상임위 회의 상황에 대한 소회, 한국 정치 상황 등에 대한 고민, 소수파로서의 한계 등 다양한 심상들을 담고 있다.

영상 콘텐츠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는 시대에, 글로 쓰여진 일지를 찾는 지지자나 독자층은 미미할 듯하다. 들인 공에 비해 득이 별로 없는 글쓰기가 아닐까 걱정도 된다. 그러나, 황주홍 의원은 글로 쓰여진 기록의 힘을 믿는 듯하다.

황주홍 의원은 군수직을 역임한 행정가 출신답지 않게 상당히 학구적인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 왔다. 드러나게 평가를 받은 적은 없지만, 주의 깊게 국회 흐름을 지켜보고 있는 기자나, 학계 연구자들 사이에서 황주홍 의원의 의정활동은 그래도 상당히 모범적인 스타일로 평가되고 있다.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위인전 버전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준에서, 자신의 출세나 정치적 성공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류의 책들을 많이 출간하고 있는 데 비해, 황주홍 의원은 마치 사회학자, 인문학자처럼 ‘새정치 난상 토론’, ‘지도자론’, ‘미래학 산책’, ‘영국개혁 이렇게 한다’ 등 질적 측면에서 차별성을 보여주는 책들을 다수 선보이기도 했다. 이외에 황주홍 의원은 국회 운영에 대한 개혁적 주제를 담은 법안들을 다수 발의하기도 했다. 입법왕이라 불릴 만큼 법안 발의에도 의욕이 높다.

재선일지를 비롯해 출간된 책 곳곳에 보좌진들의 고생도 깃들어 있겠지만, 황주홍 의원 본인의 캐릭터와 스타일이 본질적으로 아카데믹하기 때문에, 의정활동이나 의정성과들도 그런 모습을 닮아 있는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온 국민이 자전거 타고 다니는 국회의원, 직접 운전하고 다니는 국회의원, 소탈하게 만나고 대화할 수 있는 권위주의 없는 국회의원, 연구하고 공부하고 토론하는 국회의원 등 북유럽형 국회의원 상을 잔뜩 동경하고 있다. 일지 쓰는 황주홍 의원이 20대 국회 내에서 그나마 북유럽형 국회의원상에 가장 근접해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쓰는 자는 다분히 ‘인문적’이다.

황주홍 의원은 군수로서 행정실무 역량을 쌓기 이전에 대학 교수이자 연구자로서 어느 정도 검증된 지적 역량을 갖춘 인물이기도 하다. 재선으로서 정치적 정무적 감각도 어느 정도 겸비했다. 한때 소수 의견이자 비주류였던 황주홍 의원의 강단이 최근 예사롭지 않다. 양쪽 진영몰이에 지친 다수 중도 성향의 국민과, 다시 재연되고 있는 호남의 설움을 대변하는 주자로 성장할 수 있을지 기대도 모이고 있다.

황주홍 의원은 지난 7일 ‘무제’라는 제목으로 160차 재선일지를 발송하기도 했다. 최인훈 소설 「광장」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으로, 남과 북이 아닌 중립국행을 선택한 이명준의 고뇌를 인용하여 현재의 정치적 심경을 담은 황주홍 의원의 재선일지 ‘무제’를 소개해 본다.

황주홍의 재선일지 160

2019년 8월 7일

무제

□ 어제(8월 6일) 오전 정동영 대표, 조배숙 전 대표랑 셋이 만나 다음과 같은 의견 합의를 보았습니다.

- 비방 중지(stand-still)한다.

- 최고위원 회의에서 대안정치연대를 당의 유일한 공식 신당 추진기구로 승인 의결한다.

- 당권파 의원들도 참여하는 대안정치연대의 논의에 따라 신당 추진체를 만들고, 외부에서 그 위원장을 영입하면, 당 대표 등은 그 직을 내려놓고 그 추진체에 참여한다.

□ 저는 당연히 동료 선후배 의원님(김종회, 정인화, 장병완, 윤영일, 유성엽, 박지원)께 전화 또는 만나서 위 내용을 설명했습니다. 천정배 전 대표께는 조배숙 전 대표와 셋이 같이 만나 설명했습니다. 또 최경환 최고와는 오늘 만나서 설명하려 했고, 유 대표와도 만나 더 설명할 생각이었습니다.

어제 천 대표를 만났을 때 “그래요? 정동영 대표가 이런 합의내용에 동의했다는 게 잘 믿어지지 않는데요?” 라고 얘기하셔서, 우리(조배숙·황주홍)는 정 대표를 다시 만났습니다. 우리는, 천 대표가 못 믿겠다더라, 하는 얘기까지 하면서 웃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천 대표에게 “정 대표·조 대표와 다시 만나 오전의 협의내용을 재확인했다.”는 문자까지 보냈습니다.

□ 오늘(8월 7일) 정 대표·조 대표랑 셋이 점심을 했는데, 정 대표의 말씀이 달라졌습니다. 정 대표는 본인이 당 대표를 내려놓는 시점을 창당준비위원장이 영입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니, 무슨 소리냐, 창당을 하려면 먼저 발기인대회를 열어야 하고, 그 뒤 창당준비위원회(창준위)를 구성해야 하는데, 거기까지 이르려면 최소 3, 4개월은 소요될텐데, 이건 어제 얘기와는 180° 달라진 얘기다. 내가 어제 얘기하지 않았느냐, 대안정치추진위원장이든, 신당추진위원장이든, 그 명칭이야 어찌 되었건, 외부에서 웬만한 위원장만 영입해오면 그걸로 대표직을 내려놓고 백의종군하기로 했던 거 아니었냐, 그래서 내가 외부 위원장이 2, 3일 내에라도 영입되면 바로 대표직에서 내려올 수도 있게 되는 것이라고 어제재차 설명했을 때 수긍하시지 않았느냐, 그리고 이 합의내용을 가지고 나보고 중재역할을 잘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느냐……”고 얘기했습니다.

정 대표는 “어제는 내 머리 속에 신당추진 단계, 발기인 단계, 창준위 단계 …… 등등에 대한 구체적 이해가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어제 두 번이나 서로 확인했던 합의내용을 이렇게 완전 번복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정 대표가 자꾸 어제 자기 스스로 정리가 안 되었기는 하나, 어제와 오늘 사이에 자기 생각이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고 하니까 조 대표도 “아니다, 핵심이 달라진 것이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저는 “그렇다면, 내 중재 노력은 여기서 끝이다. 어제 나눴던 합의내용을 동료 의원들에게 전달하며 나름대로 중재 노력한 나만 우습게 되어 버렸다. 실망이다. 나는 손 떼고 오늘 지역으로 내려가겠다.”라고 얘기했습니다.

□ 참담합니다. 탈당과 분당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절실함과 절박함으로, 신당파(대안정치)니 당권파니 하며 대립하는 우리들 전체에 대한 싸늘한 민심을 잘 알고 느끼고 있기에, 나름대로 노력을 조금 해보았지만, 제 능력의 한계였습니다. 제 설득력의 부족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 왜 우리가 이렇게 싸워야 하는지 저는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왜 양보와 타협 없이 그저 부딪혀 동반 침몰하려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저는 구성원들의 “성질이 운명(Character is his(her) own destiny.)”이라는 말을 새삼 생각합니다. 우리들끼리의 개인적 적대감과 그 적대감을 어찌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성질이 가져다주고 있는 파국이 눈에 선연한데도 말입니다.

□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한국전쟁에서 포로가 됩니다. 포로 석방시 그는 남과 북 어느 쪽으로의 송환도 거부하고 중립국 행을 결심합니다. 오늘 문득 이명준의 처지가 생각났습니다.

□ 마지막으로, 한 표라도 더 나오는 쪽으로의 합리적 선택을 하는 우리들의 공동체적 지성을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2019. 8. 7.

황주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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