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혁 논술강사 연재작

논술격투가의 영화이야기 : 파파로티

2013년에 개봉한 우리 영화‘파파로티’는‘청연’,‘나는 행복합니다’ 등의 감독을 맡은 윤종찬 감독의 작품으로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한석규, 이제훈, 오달수, 강소라, 조진웅, 이재용 등이 출연했던 이 영화는 171만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제목 ‘파파로티’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음악(성악)과 관련된 주제를 가지고 있는데, 그 제목이‘파바로티’가 아닌 이유는 주인공이 성악에는 재능이 있으나 그에 대한 그 어떤 지식과 경험도 없는, 그저 성악을 동경하고 성악을 하고 싶어 하는 인물임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한다(파바로티의 이름을 영화의 제목으로 쓰기 위해선 많은 비용이 드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색다른 스토리, 건달(조폭)이면서 성악가를 꿈꾸는 주인공이 고등학생 신분이라는 자극인 설정과 이것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었다. 이 영화는 조폭이었던 고등학생이 과거를 청산하고 유명한 테너가 된다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결말로 전개된다(영화보다 놀랍게도 현실에서의 그 성악가는 현재 트롯 경연 예능에 출연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의 주요 관람 포인트는 어떤 결말이냐 보다, 그 과정에 있어 어린 주인공 장호가 양립하기 어려운 이 상황에서 어떤 과정을 겪으며, 어떻게 자신의 삶의 방향을 찾고 선택하느냐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장호가 겪는 과정은 모든 청소년기의 학생들이 겪는 갈등과 선택에 대한 고민이라는 공통점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어린 장호의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여러 어른들이 나오지만,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조폭 보스(이재용)와 음악 선생님인 담임 상진(한석규)이다. 보스는 외톨이였던 장호를 건달 조직으로 이끈 사람이고, 상진은 장호의 꿈대로 그를 유명 성악가로 만들어 낸 사람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고등학생인 장호에게 보인 가장 큰 태도의 차이는 바로‘이용’의 여부이다. 보스는 싸움에 탁월한 자질을 가진 장호를 알아보고 자신의 조직에 들어올 것을 설득, 그의 힘을 이용한다. 반면에 담임인 상진은(장호의 예상과도 다르게) 이용은 커녕 성악을 가르쳐 달라는 요구에도 그를 한동안 그저 내버려 두다시피 한다.(장호가 배움의 준비를 마칠 때까지)

이런 장호에 대한‘이용’의 태도는 각 진영(학교와 조폭)에서도 인물에 따라서 상반되게 나타난다. 성악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그를 재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콩쿨에 내보내 학교의 위상을 높이는데 이용하려는 교장. 그리고 장호를 아끼는 마음에 그를 이용하기보다는 그의 꿈을 응원하는 조직의 중간보스(장수)의 태도는 서로 다르다. 주인공 입장에서 정리하면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은 보스와 교장이고, 자신을 이용하지 않고 응원해주고 도와주는 사람은 담임 상진과 중간보스(장수)이다.

여기서 ‘이용’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

이용 1. 대상을 필요에 따라 이롭게 씀

       2. 다른 사람이나 대상을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씀.

1번은‘잘 이용한 것’이고 2번은 ‘잘 이용해 먹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도 그렇고 현실에서도 그렇듯 1번과 2번은 해석하기 나름일 수는 있다. 그러나 영화건 현실이건 간에 그 대상이 청소년이라면 그것이 곱게 보여지지는 않는다.

현실의 상황에서 이를 보면, 이번 4.15 총선은 지난해 말 개정된 선거법으로 만 18세인 청소년에게도 투표권이 부여됐다. 따라서 14만 명의 고교생 유권자가 생겨났다. 이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바로 위와 같이 청소년이 정치와 정치인의 이용의 대상이 될까 하는 우려였다.

그러나 급속한 인구 고령화로 노년층에 비해 정치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 있는 젊은 청소년들의 영향력 확대라는 측면에서의 의미와 그들에 대한 이용의 우려에 앞서 그들에게 권리는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국회에서의 결정이 있었다. 이는 청소년들에게 정치, 사회적 성장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의미도 포함된 것이라 볼 수 있다.(참고로 우리나라의 선거연령은 1949년 만 21세, 1960년 20세, 2005년 19세로 낮아졌었고, 그간 대한민국은 OECD 가입국 중 유일한‘19세 선거권’의 나라였다)

현재 투표권이 만 18세 이상의 고등학생에게도 주어진 만큼, 일부 정치인이‘교실의 정치화’와 ‘학교의 정치화’를 부추기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은 남아있다. 그러나 그 외에도 우려되는 사항이 있다면, 정답 찾기에 익숙한 그들이 마치 누군가의 “정답은 이것!”이라는 식의 정답 풀이에 이끌려서 그저 답을 찾듯 투표를 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부분이다. 이는 교실의 정치화 못지않게 위험한 문제가 될 수 있고, 이 또한 청소년을‘이용해 먹으려는’의도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폐해라 할 수 있다.

정치인이 되었건, 누가 되었건 간에 그들에게 하는 정치에 대한 말들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성인들에게 선거는 현재를 위한 선택이지만, 어린 친구들에겐 현재이면서, 동시에 보다 먼 미래에 대한 선택이다. 어른들이 처한 현실과 저들이 처할 미래는 다르다. 저들의 선택이 옳건 그르건, 만족스럽건 후회스럽건 간에 자신들의 판단으로 투표를 하도록 해야 한다. 정치인은 물론 부모와 선생님들의 정치적 견해조차도 저들을 설득하려는 것이거나 이용하려는 것이라면 곤란하다.

이런 점에서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좋은 참고가 된다. 1976년 독일의 정치인들은 보이텔스바흐에 모여 격론을 벌인 끝에, 학교가 정쟁으로 물드는 것을 막기 위한 3가지 원칙의 교육지침을 마련했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첫째, 강압적 교화와 특정 견해를 주입하는 교육을 금지한다는 것. 둘째, 논쟁의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 셋째, 학생 자신의 이해관계를 스스로 판단하게 한다는 것. 이 모든 내용은 설득과 관여로부터 그들은 분리해서 그들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과 관련이 있다(영화 속 담임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젊고 어린 세대가 살아가야 할 세상은 기성세대의 상상 속에 있지 않을 수 있다. 부모에게서, 선생님에게서, 선배로부터, 영향과 설득을 받고, 때로는 대물림되어 오던 정치적 성향의 연결 고리를 끊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들이 무엇을 선택하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들의 결정으로 미래를 살게 하는 것이다.

 

논술격투가 안주혁 소개

 

前 메가스터디 논술강사

前 이투스 온라인 논술강사

前 대한교과서 논술 수석연구원

現 동국대학교 로스쿨 논술 특강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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