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는 기본적으로 상품이나 서비스 정보를 전달하고 판촉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물론 공익광고 등 인식 변화를 위해서도 만들어진다. 어떤 광고는 재미있고 유익하다. 창의적인 광고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상상력을 주기도 한다.

기발한 광고는 그 자체가 콘텐츠고 예술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떤 광고는 큰 인기를 구가하고,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하나의 유행이 되고, 또 다른 영역의 콘텐츠로 응용되기도 하며, 커다란 문화 트랜드를 자극하기도 한다.

반면, 어떤 광고들은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선정성, 폭력, 차별적 의식, 과장 등 이런 요소들이 불편을 조장한다고 할 수 있지만, 가장 괴로운 것은 지나친 반복성과 일방성일 것이다. 똑같은 광고를 반복적으로 보게 하는 것은 일종의 ‘세뇌’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반복'과 '일방성'은 오랫동안 광고 산업계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로 신봉되어 왔다. 그러나 광고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삶과 의식의 흐름을 방해하는 강요된 공해이며 원치 않는 외부작용이다.  

무의식적으로, 무방비적으로 시청해야만 하는 광고 때문에 파생되는 가장 큰 문제는 ‘시간(삶)’을 빼앗긴다는 점에 있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을 원치 않는 것 때문에 잠식당하는 것은 결코 사소한 문제라 할 수 없다.

시간이야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켜야 할, 주체적으로 결정해야 할 가장 소중한 권리이자 절대적 자산이다. 「헌법」이 말하는 그 어떤 기본권보다도 중요하며, 모든 기본권의 전제가 된다. 생명권과 긴밀하게 결합된 궁극적인 권리이기도 하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진입하면서 시청자들의 방송 콘텐츠와 채널 선택권은 대폭 확대되었다. 하지만, 그만큼 시청을 위한 비용도 증가했다. 스마트폰 요금이나 인터넷 요금 이외에 IPTV 이용료도 가정마다 고정비용으로 지출되고 있다. 기본 이용료 외에도 조금 제대로 된 콘텐츠를 이용(구매)하려면 매번 추가적으로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이런 번거로움을 줄이려고 콘텐츠 섹터별로 ‘월정액’ 이용이 유도되고 이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가입하게 된다.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면, 그에 상응하여 원치 않는 광고들 때문에 지출되는 소비자의 부당한 비용 지출도 분명하게 따져봐야 할 부분이다. 광고를 시청에 대해 ‘무방하다’, ‘상관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렇더라도 광고를 정말 원해서 적극적으로 시청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원치 않는 광고를 봐주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직간접적으로 각종의 이용료를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통상 콘텐츠를 보는 대가를 유료화하지 않는 대신에 광고를 보는 것으로 갈음된다는 생각들도 있다. 온전히 틀린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콘텐츠를 보기 위해 정말 아무런 비용을 안 내고 있다면 모를까, 이미 수신료나 이용료를 내고 있다면 여기에서 광고를 봐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적어도 광고로부터 시달리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유료화하지 않거나 이용료를 할인해 주는 대신에 광고를 보게되는 것’이라는 사업자 측의 항변이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콘텐츠 제공 비용은 얼마나 되는지, 콘텐츠 제공 사업자의 광고 수익은 얼마나 되는지, 그 광고수익이 이용료 할인에 도대체 얼마나 반영되고 있는지를 시청자들이 주기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한다.

설령 백번 양보하여 광고 시청을 대가로 이용료가 적절하게 감면되는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시청자나 이용자가 반드시 방송사업 운영비용, 콘텐츠 제공에 수반되는 모든 비용 등을 최종적으로 부담해야만 하는 존재인지도 의문이다.

더욱이 콘텐츠 제작이나 방송 운용비용이 비단 시청자의 광고 시청에 따른 광고 수익으로만 충당되는 구조가 정상은 아니다. 콘텐츠는 광고수익 이외에도 다양항 방식으로 파생수익을 창출하거나 결합하면서 제작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다.

한 번 더 양보하여, 콘텐츠 제작비용이나 방송사업 운용비용 전부 또는 상당 부분이 광고 수익으로 충당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시청자나 이용자가 광고를 무조건 시청해줘야 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방송사업자의 사업수익이 광고 수익에 전적으로 의존될지라도, 그것이 고로 시청자가 광고 시청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간주되고, 공급자 편의로 일방적으로 송출하면서 광고 시청을 강요하는 방송 환경으로 정당화하는 논거가 될 수는 없다.

삶과 시간을 존중해주는 광고 문화, 광고 생태계로 진화해야 한다.

 

 

논설위원 이경선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 행정법, 헌법, 법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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