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격투가의 영화이야기 : 올 더 킹즈맨

2007년 11월 국내에서 개봉했던 영화 ‘올 더 킹즈 맨(All The King's Men. 2006)’은 정치인과 정치, 선거에 대한 영화로, 1949년 만들어진 동명의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1946년 퓰리처 상을 수상한 소설(실화를 바탕으로)을 영화화한 이 영화의 원작은 1950년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등을 수상했었다.

그러나 2006년 제작된 이번‘올 더 킹즈 맨(2006)’은 숀 팬, 주드 로, 케이트 윈슬렛, 마크 러팔로, 안소니 홉킨스 등의 화려한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흥행 부진은 물론, 국내 개봉 당시 관객이 채 100명도 되지 않을 만큼 흥행성적이 좋지 않았다.

이 영화의 흥행의 부진은‘쉰들러리스트’,‘갱스오브뉴욕’등의 시나리오를 맡았던 각본가 스티븐 자일리안 감독의 의욕 과잉과 아쉬운 완성도가 지적되기도 하지만, 이 영화의 프로듀서인 제임스 카빌의 말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는 “너무 고전적인 스토리”라는 이유로 이 영화의 제작 자체를 망설였었다고 한다. 개혁의 중심에서 개혁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정치인의 타락과 변절의 스토리는, 제작자의 말처럼 이젠 그다지 새롭지도, 충격적이지도 않을 만큼 흔한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인가 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어떤 이유로 정치와 정치인, 더 나아가 역사적 인물까지에 대해서 실망하게 되는지의 사례를 잘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미국 메이슨시티의 올곧고 신념 강한 재정관이었던 윌리 스탁(숀 팬)은 학교 건설의 입찰 비리와 부실 공사를 고발하며 유명해진다. 그는 이러한 유명세를 발판으로 루이지에나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게 되고 저소득층과 노동자 계층의 지지를 얻어 당선된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생긴 정치적인 적들은 다름 아닌 그의 공약 실현에 필요한 재원인, 세금을 납부해야 할 부유층과 기득권층들. 윌리 스탁을 주지사의 자리에서 끌어 내리려는 그들의 공세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주인공 그 자신도 비열한 수단과 방법으로 그들에게 맞선다. 이 대결에서 패배보다는 타락을 선택했던 윌리 스탁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그들을 닮아 간다.

“깨끗한 인간은 없어, 사람은 죄악으로 잉태되어 타락한 채 태어나는 거야”라는 대사는 탐욕과 타락에 점점 물들어가는 그의 모습을 잘 드러내 준다. 그리고 이 영화는 정치인 주인공의 타락과 불행한 결말을 제 3자인 잭 버든(주드 로)의 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 윌리 스탁이 정치가로써 보여준 가장 큰 매력은 설득력이다. 주지사 선거 연설에서 그는 거침없는 언변과 이목을 집중시키는 카리스마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 낸다(배우 숀 팬의 에너지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을 지지할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파악하고, 그들을 기가 막히게 설득해 낸다.

이렇듯 설득력은 정치가의 중요한 덕목이며, 설득은 정치의 중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그가 설득력 있는 정치인이었던 순간은 시민들이 원하는 바를 파악하고 그들을 대신해 싸우겠다고 말한 그 순간뿐이었다. 그는 권모술수를 남용하는 정치꾼으로 변화했으며, 탐욕에 눈먼 괴물로 변질되어 갔다. 이것은 그에게 표를 던졌던 사람들에 대한 변절이기도 했다.

변절 1. 절개나 지조를 지키지 않고 바꿈

       2. 계절이 바뀜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한 인간로서의 변질과 정치인으로서의(정치적인) 변절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변하는 것은 정치인의 인성만은 아니다. 더 많은 것들이 변화한다. 시대가 변하기도 하고 그에 따른 정치적 환경들이 변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사고와 판단에 영향을 끼친다.

우리 역사의 경우에서도 보면, 일제 식민 통치하의 많은 지도자와 지식인들이 친일파로 변절했었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도 그랬겠지만, 일제의 교묘하고 집요한 협박과 회유도 이유였을 것이다. 그리고 러일전쟁과 중일전쟁을 승리한 당시 일제의 강한 힘과 위력에 조선의 독립 가능성이 낮아 보였던 것도 그 이유였을 수 있다.(단, 3.1운동 당시의 민족대표 33인 상당수가 친일파로 변절했다는 일부의 생각에 대해서는, 이와 관련한 최근의 법원의 판결에서도 최린, 박희도, 정춘수 3인을 제외하면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적어도 친일 반민족 행위로 평가받을 일은 하지 않았다고 밝혔음을 알린다.)

또 다른 경우는, 20세기 가장 유명한 철학가이자 사상가 중 한명으로 꼽히는 하이데커의 이야기다. 그는 나치의 시절인 1933년, 나치 당의 간부가 총장으로 임명되는 것을 막기 위해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총장으로 취임하지만, 취임식에선 학생들에게 지식의 추구뿐만 아니라 노동, 군사훈련에서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이른바‘3대 봉사’를 담은 친(親)나치적 연설을 한다. 그리고 얼마 뒤, 비록 명목상이지만 나치에 당원으로 가입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반유대 현수막의 계양과 유대인이 쓴 책의 분서는 총장의 권한으로 금지시켰다. 이러한 불명확한 행보는 변절과 신념 사이에서 비롯된 갈등이라고도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하이데커는 나치 집권하에서는 정부에 비협조적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종전 후 프랑스 군정하에서는 나치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강의가 금지되기도 했다.(이런 면에서 항상 비교되는 인물이 야스퍼스인데, 그는 나치의 통치를 정면으로 반대했었고, 유대계 부인과 이혼하라는 나치의 압력을 거절한 뒤 대학 교수의 자리를 잃었으며, 그의 저서는 발금 대상이 되었었다. 나치의 통치 기간 중 숨어지냈던 야스퍼스는 나치스트에게 체포되면 자살을 하려고 항상 청산가리를 소지하고 다녔다고 한다)

변절은 여러 이유로 발생한다.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특정한 목적의 달성을 위해, 때로는 합리적 판단에 의해, 또는 협박과 회유로. 한 인간의 입장에서 변절에 대한 유혹과 이유는 많다. 그러나 변절에 대한 잘못된 지적이 소송의 원인이 되고, 위대한 철학자 조차도‘판단 착오’의 멍에를 쓰는 이유는 변절이라는 것이 양심(양심 : 자신의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역사에서건 정치에서건, 어떻게 기억되는가와 어떻게 기억하는가가 중요한 이유는, 기억되는 사람과 기억하는 사람 모두의 양심이 걸린 문제여서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 윌리 스탁은 고지식한 재정관에서 부패한 정치꾼으로 변질되어 갔다. 그런 그의 변절에 반대의 입장이었던 판사 어윈은 “모든 정치는 잘못될 가능성을 감수하고 내리는 선택의 문제”이며 “그 선택으로 치르게 될 비용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양심을 바탕으로한 선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정치인의 자기 행보에 대한 선택과 그들을 선택해야 하는 유권자 모두의 생각을 깊게 만드는 대목이다.

 

논술격투가 안주혁 소개

 

前 메가스터디 논술강사

前 이투스 온라인 논술강사

前 대한교과서 논술 수석연구원

現 동국대학교 로스쿨 논술 특강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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