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통해 세상읽기

논술격투가의 영화이야기 : 덩케르크

2017년 7월 개봉한 영화 ‘덩케르크’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제목‘덩케르크(Dunkerque, Dunkirk)’는 세계 전쟁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상 탈출작전(작전명 다이나모)이 펼쳐진 프랑스의 작은 해안 도시의 이름이다. 이 영화는‘다크나이트’시리즈,‘인셉션’,‘인터스텔라’등을 감독한 크리스토퍼 놀란이 각본, 감독, 제작하였는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 영화의 제작 당시 “전쟁 영화가 아닌 생존 드라마를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었다. 그의 말대로 이 영화는 106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전달되는 주제의 무게감은 충분히 묵직하며, 잔혹한 전투 장면은 거의 없지만 전쟁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 또한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단, 이 영화는 이미 지나간 사건을 각기 다른 입장의 시각에서 다시 보여주는 부분이 몇 번 나온다. 이에 대한 정보 없이 영화를 보면 다소 어수선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이 영화의 줄거리는 2차 대전 중 일어난 실제 사건이다.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2차 대전 초반 영국은 가용 가능한 병력의 대부분을 독일의 침공을 받은 유럽대륙에 파병한다. 그러나 예상보다 강했던 독일의 공격에 연합군은 패퇴를 거듭하였고, 영국군을 포함한 연합군 약 40만명이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되는 위기에 빠진다(덩케르크에 고립된 영국군은 사실상 영국 지상군의 전부였다). 이에 영국 사령부는 전멸당할 위기에 처한 이들을 영국으로 철수시킬 계획을 세우고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해군에 협조 요청을 하였으나, 이 많은 병사들을 태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지원만 받을 수 있었다. 결국 영국 정부는 더 많은 병사들의 구조를 위해 민간에 선박 징발령을 내린다.

그런데 여기서 영화처럼 극적인 상황이 실제로 일어났다, 당초 영국 정부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민간 선박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대형 화물선, 유람선은 물론이고 소형어선, 레저용 요트 등 민간 선박 650척이 몰려들었는데, 이 작전에 참가한 민간의 선박들 중 가장 작은 배의 크기는 4.2미터(소형 자동차 보다 한뼘정도 짧은)정도 밖에 안될 정도였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영국해군의 만류에도 이 민간 선주와 항해사들, 그리고 어부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배를 직접 몰고 전장으로 향했다는 것이다(영화에서 고립된 병사들의 탈출을 침착하게 지휘했던 볼튼 사령관이 이렇게 몰려든 민간 선박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이 바로 이 대목인데,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까지도 뭉클하게 만든다). 항해에 경험이 많은 이들은 적군의 폭격과 총탄 세례에도 많게는 정원의 30배를 넘는 사람들을 태워서 구조하기도 했고, 해안에 접근하다가 좌초된 경우엔 배를 그대로 해안에 고정시켜 다른 배의 접안을 돕는 작은 임시 부두처럼 쓸 수 있게 하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하였다. 이런 이들의 위험을 무릅쓴 영웅적인 헌신과 이들을 지켜내기 위한 공군의 노력이 더해져 덩케르크에서의 작전은 33만8천명을 구조하는 대성공을 거둔다.

이 영화는 일반적인 전쟁 영화에서 보여주는 치열한 전투 장면이나, 현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는 설명 등이 거의 없고 클라이막스라 할 장면도 최대한 절제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을 구하러 온 평범한 그들이 곧 ‘영웅’임은 누구나 느낄 수 있도록 잘 보여주고 있으며, 오히려 영화의 극적 표현이 그들의 영웅적인 희생과 헌신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영웅’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영웅 :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

이다.

사전적 정의에서 영웅의 조건은 다소 까다롭지만, 이 영화에서 영웅으로 비춰지는 민간의 구조원들은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들은 충분히 영웅으로서의 자격을 가졌다고 볼 수 있으며, 물론 역사도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영웅들을 최근 코로나-19의 확산 사태를 통해 주변의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 바로 그들이다. 전국 각지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노고를 아끼지 않는 모든 의료진들은 물론이고, 코로나-19 확산의 1차 저지선이었던 대구에 자진해서 모여든 사람들도 있다.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임상병리사 등 의료 관련 종사자분들과 행정지원업무를 돕기 위한 민간 자원봉사자 분들이, 자기 생업을 중단하기까지 하고 나섰다. 수백명씩 모여들기 시작했던 이런 움직임에 군의관, 간호장교, 공중보건의 분들까지 더해져 지금은 그 수가 수천에 이른다. 이러한 모습들은 위의 영화의 장면 못지않게 극적이며, 영화 속 영웅들의 용기와 견주어봐도 전혀 부족하지 않다.(영화속 볼튼 사령관이 지금 이 장면을 봤다면, 또 한번 눈시울을 붉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분들은 용기만 대단한 것이 아니다. ‘보통사람은 하기 어려운 ’놀라운 상황들을 극복하며 매일 매일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착용하는데만 20분이 걸린다는 전신 밀폐 방호복은 온몸이 땀으로 젖는 것은 물론이고, 숨 쉬기조차 불편해 말을 한번에 다하지 못할 정도이며, 습기로 인해 눈앞의 차트 글씨도 제대로 읽기 힘들 때가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출장 검체 채취를 맡은 공중보건의의 경우 출장때 마다 비좁은 비상구 등에서 방호복을 하루 10번이 넘게 갈아입는 것은 물론, 주민들의 눈을 피해 방호복을 입은 채로 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비협조적인 대상자들 만나 실랑이가 벌어지는 일이 빈번함에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 선별 진료소에서 근무하는 분들 또한 의심환자 한명의 검진이 끝날 때 마다 검진실 방역은 물론, 볼펜 한자루까지도 소독한 후 다음 환자를 맞아야 하는 등의 여러 고충 속에서도 노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진자 입원 병동에 근무하는 분들 역시 전신을 밀폐하는 방호복을 입고 장시간 근무하는 어려움은 물론이고, 중증환자의 증가로 인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강도 높은 근로환경에 처해있다. 감염환자와의 초밀착 접촉에 대한 두려움보다 과로가 더 큰 위협이 되는 상황 속에서, 이분들 역시 생명을 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밖에도 각 현장을 연결해주는 의료지원 자원봉사자분들, 간호인력을 대신해 투입된 일반 공무원분들, 쏟아지는 검체를 진단하시는 분들,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의료현장 노우하우를 알려주시는 분들까지. (덩케르크의 영웅들이 주로 이틀 동안 집중적으로 활약한 것과 비교해봐도)우리의 영웅들의 노고는 한달을 훌쩍 넘어가고 있다. 정말 대단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국가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이런 시민 영웅들이 등장하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다.

영화 덩케르크에서는 누구 한 명이 영웅으로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특정 주인공을 영웅으로 조명하지 않음으로써 이 작전에 참여한 모든 이들을 영웅으로 표현한다. 이번 코로나-19 확산 사태와 관련하여, 위에 언급한 분들 외에도 따로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오늘도 남다른 ‘용기’와 ‘보통 사람은 하기 어려운’일들을 해내고 있는 많은 분들이 있다. 이분들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과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며, 이분들이 역사의 영웅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본다.

 

논술격투가 안주혁 소개
 


前 메가스터디 논술강사

前 이투스 온라인 논술강사

前 대한교과서 논술 수석연구원

現 동국대학교 로스쿨 논술 특강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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