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인터뷰] 살아있는 동안 최대한 포용하시라
[가을인터뷰] 살아있는 동안 최대한 포용하시라
  • 학술연구본부
  • 승인 2020.09.24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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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허하게 순리대로 살아가는 학술 구도자
이은기 前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모두들 권위와 감투, 유명세를 얻기 위해 아우성일 때, 5평 남짓 작은 연구실에서 평범하게 연구에 몰입해온 이은기 교수.
변호사로서 법조실무에 종사하다가 2006년 서강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임용(2009년부터는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된 이후 행정법과 환경법 담당 교원으로 강단에 섰다. 그리고 지난 2월 법학 교수로서의 생활을 접고 조용히 정년 퇴임을 했다.
이은기 교수는 학계에서는 권위있는 행정법학자, 환경법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일상은 다분히 소탈하고 잔잔한 삶을 지향해 왔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청량한 가을예감이 깊어가는 9월 첫 주말. 차 한잔을 청하고자 찾아뵌 이은기 교수는 여전히 원고 작성에 여념이 없었다. 다만, 글의 주제가 법학이 아니라 종교와 평화에 관한 내용으로 바뀌어 있었다.
분열과 갈등으로 가득한 국제사회 그리고 한국사회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거기서 종교 특히 불교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화해와 포용의 종교를 말하는 이은기 교수의 화두를 견문해 보았다.

 

 

사회적으로도 저명한 행정법학자이시고, 학교에서도 자연을 사랑하는 낭만파 학자로도 불리셨다. 특별히 법학 영역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환경과 종교 연구에 관심을 기울이시게 된 연유가 있으신가요?

대학원에서 행정법을 공부했고, 주거기본권, 주거환경 등 주택행정법에 관한 내용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환경은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의 문제라고 할 수 있지요. 삶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사회적 환경으로 포섭될 여지도 있는 종교문제로 생각이 확장되는 것 같습니다.

동양산수화가 청전 이상범 화백의 고향이기도 한 공주시 정안이 제 고향입니다. 거기서 유년 시절을 보냈는데 당시 가까이에서 접했던 자연이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듯 합니다. 법과 환경 그리고 종교의 문제가 저로서는 이질적인 주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과 삶의 문제로 이어져 있는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유유자적 여행도 하시면서 편히 휴식을 취하실 때가 아닐까도 싶은데요. 정년퇴직하시고도 최근 “세계평화와 불교의 역할”이라는 논문을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제 연구분야인 법학과 연관학문도 아닐 뿐더러 감히 접하기 힘든 거대담론이지만 미북간 그리고 남북간 긴장 고조, 이슬람 난민의 유럽 유입으로 인한 국제문제 상황 등을 접하게 되면서 종교, 전쟁 등에 관하여 그동안 가져왔던 생각들을 글로 한 번 정리해 보고 싶었습니다.

세간에는 피해야 할 대화(논쟁) 주제 중 하나로 종교를 듭니다. 그런 종교가 우리 인간에게 과연 무엇인가 종종 생각해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종교의 창시자들 석가모니, 예수, 마호메트도 인간이었습니다.

생각할수록 종교는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찍이 유한한 생명을 가진 존재임을 인식한 인간은 '영혼'이라는 개념의 힘을 빌어 영생을 희구해 왔습니다. 모든 종교는 인간의 생물적 사망, 죽음 후 내세를 설정하고 그 입구에서 생존기간 중 행위에 대한 심판이 행해진다고 합니다. 죽음 후 심판에 대비해 살아있는 동안 나쁜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인간은 한없이 나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제어가 필요하고 그 역할을 도덕, 관습, 법 등 사회규범이 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규범에 의한 제어만으로는 인간의 악한 행위를 막기에는 부족함이 있지요. 그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 종교가 생겨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종교가 인류에게 기여한 바는 과연 무엇일까. 인간이 사악하게 됨을 방지해 왔는가. 종교가 세계평화나 인류의 발전에 기여해 왔는가. 지구촌화된 다원적인 세계에서 종교가 선을 위한 세력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세계종교들이 함께 평화롭게 살면서 더 나은 지구의 미래를 위해 기여할 수 있을런가. 특히 불교신자인 저로서는, 불교가 인류의 공동선 즉 세계평화를 위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불교이념이 인류의 공존공영에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을까? 세계의 평화를 위해 불교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을까 이런 고민을 해보고 있습니다.

 

쓰신 논문에서 종교 간의 배타성을 극복하기 위해, 원효의 화쟁론을 이끌어 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취지이신가요?

역사적으로 정치와 종교가 맞물려지면서 비극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즉 종교가 다른 부족이나 국가와의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던 것이지요. 아시다시피, 중세의 십자군 전쟁은 대표적인 종교전쟁으로 카톨릭 국가와 이슬람 세계가 충돌한 사례입니다.

세계 종교를 거론해 보면 불교, 유교, 기독교, 이슬람, 힌두교, 유대교 등인데, 세계인구의 약 80% 정도가 이들 종교를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로 갈등하는 세계 종교가 종교적 배타주의를 버리고 상호 존중하고 화해한다면 종교적 갈등은 치유되고 개인의 행복, 번영, 지구의 평화적 공존, 지구적 공공선에도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종교간 화해의 관점에서 보면 불교는 그 특성으로 인하여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여지가 많다고 봅니다.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은 절대적 존재인 자신들의 신(God)을 섬기고 다른 신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극히 배타적입니다. 반면에 불교는 신앙대상이 절대자로서의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 살다가 죽은 부처입니다. 불교는 인간 자신에 대한 성찰과 수행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1930~2004)는 이분법적 사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바 있습니다. 데리다는 “이항대립적 사유에는 하나가 다른 것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지배하는 폭력적 계층질서가 존재한다고 지적합니다. 이성에 바탕을 둔 서구의 형이상학을 정신/육체, 이성/광기, 주관/객관, 내면/외면, 본질/현상, 현존/표상, 진리/허위, 기의/기표, 확정/불확정, 말/글, 인간/자연, 남성/여성 등 이분법에 바탕을 둔 야만적 사유이자 전자에 우월성을 부여하는 폭력적 서열제도라고 비판합니다. 처음과 마지막에 ‘중심적 현존’을 가정하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지요.

원효의 화쟁과 자크 데리다의 이항대립적 사유에 대한 비판적 사고는 서로 맞닿아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불교이론의 대립을 귀일시키고자 한 화쟁과 데리다의 관점 사이에는 이분법적 사고의 극복이라는 공통점이 보입니다. 언어적 고정관념을 벗어나 사색에 의한 이원론적 체계의 극복이자 원융회통(圓融會通)인 것이지요.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가능성을 갖고 있고, 해탈할 수 있다고 봅니다. 불교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내면 즉 마음을 들여다보는 수행종교인 것이지요. 저는 이런 불교의 핵심이 여러 종교의 배타성을 치유할 수 있는 해법처럼 다가옵니다.

 

들여다보고 계신 원효의 화쟁사상이 나오게 된 시대적 배경을 좀 더 자세히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신라의 고승 원효(617~686)는 3국이 한강유역을 놓고 쟁패하던 통일 전 진평왕 39년(617)에 경주 부근의 압량 불지촌(현 경산군 자인면)에서 태어났습니다. 성은 설씨로 6두품 가문 출신입니다. 소년 시절 화랑의 낭도로 통일전쟁에 뛰어들기도 했으나 진덕여왕 2년(648) 다소 늦은 나이인 32세에 황룡사로 출가했습니다.

원효는 스승을 정해 놓고 배우거나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스승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불전을 섭렵하면서 정진했다고 합니다. 34세(650년)에 의상(625~702)과 함께 당시 풍조인 도당유학(渡唐留學)을 시도해 요동까지 갔으나, 고구려의 해상봉쇄 정책 때문에 변경 수비군에게 첩자로 붙들려 수십 일간 갇혔다가 귀환하기도 했지요
10년 후 다시 의상과 해로를 통해 당나라로 가는 도중 당항성(현 경기 남양만)에서 배를 기다리다 폭우를 만나 한 집에 묵었는데, 밤중에 목이 말라 옆에 있는 바가지의 물을 마셨는데 아침에 깨어 보니, 지난밤 달게 마신 바가지 물이 해골에 괸 빗물이었던 것을 알게 되지요. 원효는 곧바로 구역질이 나는 것을 느꼈으나 다시금 그것이 똑같은 물임을 깨닫고 “진리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하며,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라는 일체유심소조(一切唯心所造)를 터득한 뒤 의상과 헤어져 분황사로 돌아왔지요. 이 내용은 익히 잘 알려진 이야기지요.
백제 멸망 후 문무왕 2년(662) 겨울,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할 때 김유신이 당나라에서 보낸 비표(암호문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난관에 처하자 원효가 그것을 해독해 작전을 성공시켰습니다. 이는 김유신이 원효의 고향인 압량주 군주를 지내면서 맺은 인연 덕분이었습니다. 이 무렵 설총이 태어났고, 원효는 왕실의 지원을 받아 ‘금강삼매경론’을 찬술했습니다.

 

원효가 당시 신라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기여한 행적은 어떤 내용이었나요?

원효가 ‘금강삼매경론’에 대한 주석을 왕실과 여러 대신, 고승에게 강해(講解)했는데 그의 강설은 흐르는 물처럼 도도해 오만하게 앉아 있던 고승의 입에서 찬탄이 절로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강설이 끝난 뒤 원효가 “지난날 나라에서 100개의 서까래를 구할 때는 그 속에 끼일 수도 없더니, 오늘 아침 단 한 개의 대들보를 가로지르는 마당에서는 나 혼자 그 일을 하는구나” 하자, 여러 고승이 부끄러워하면서 깊이 뉘우쳤다고 전해집니다.

당시는 중국에서 밀려오는 성당문화(盛唐文化)로 주눅이 든 시기였어요. 하지만 원효는 군계일학으로 중국 불교이론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구축하며 해동종(海東宗)을 개창했습니다. 그는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疎),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 십문화쟁론 등100종 가까운 저술을 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실천을 중시해서 대중불교운동을 전개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대중을 교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왕실과 귀족들이 전유하던 불교를 대중화한 것이지요.

 

원효가 쓴 그 많은 저술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지요?
원효의 저술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사상적 맥은 무엇보다 일심(一心)입니다. 유식학파와 중관학파가 공유(空有)를 두고 벌이는 논쟁에 대해 “긍정하면서 스스로 부정하고 부정하면서도 긍정해야 한다”고 일렀습니다. 일심에 대해서는 “진여문(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의 두 문을 가지고 있다. 진여문은 발생도 없고 소멸도 없으며 증감이나 차별이 없는 절대적 본체이다. 생멸문은 발생과 소멸이 있으며 증감과 차별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지요. 진여문은 본질적 측면, 생멸문은 상대적, 현상적 측면임을 말하고 “이 둘이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일심은 모든 것의 근원으로 화합의 근본이 되고 평등하고 차별이 없으니 부질없이 다툴 까닭이 없다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는 교리를 놓고 대립하거나 한 걸음 나아가 여러 세력이 벌이는 분열과 갈등을 화쟁사상으로 해결해 보고자 노력했습니다.

원효의 사상은 크게 일심사상(一心思想), 화쟁사상(和諍思想), 무애사상(無思想)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특히 화쟁사상은 서로 다른 쟁론을 화합하려는 것으로 유(有)와 무(無)의 대립된 견해를 귀일시킨 원융회통사상(圓融會通思想)입니다.

 

당시 원효의 삶이 지금에서 보면 매우 파격적인 생활, 자유분방한 태도, 사앙히 진취적인 면모가 많이 보입니다?
원효는 왕실 공주와 혼인한 신분이었으나 거사(居士)들과 어울려 기생집을 드나들었고 여염집에 유숙하기도 했습니다. 사당에서는 가야금을 탔다고도 합니다.

천민 뱀복이의 어머니가 죽자 직접 시신을 멨고, 어떤 때는 밥을 먹다가 밥상을 내동댕이 치고 입안의 물로 불을 끄는 등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자세로 승속불이(僧俗不二)의 삶을 견지했습니다. 그러면서 ‘원효 앞에 원효 없고, 원효 뒤에 원효 없다’라는 말을 남기며 살다가 큰 별이 되었지요.
이러한 원효의 삶은 진골 출신 의상이 도당유학을 하고 돌아와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의 해동 화엄종을 개창, 전제왕권 강화에 기여한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문도 양성을 하지 않은 원효와 달리 의상은 왕실과 귀족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문도를 양성해 3000명의 제자가 있었고, 아성(亞聖)으로 불린 의상10철(義湘十哲)의 제자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원효의 저술 중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는 중국 화엄학을 체계화한 법장(643~712)에게 영향을 주었고, ‘금강삼매경론’은 일본에까지 흘러 들어갔습니다. 원효의 손자이자 설총의 아들인 설중업(薛仲業)이 일본에 사행(使行)했을 때, 일본에서 “일찍이 원효거사가 지은 ‘금강삼매경론’을 보았으나 그분을 뵙지 못해 한이었는데 신라국 사신인 설 판관이 원효거사의 손자라니 매우 기쁘다”라며 환대를 받았고,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은 본토인 인도에까지 영향을 주었습니다.
고려 충렬왕 때 일연(一然, 1206~1289)은 ‘삼국유사’ 권 제4의해(義解) 편에 원효를 ‘원효불기(元曉不羈)’라고 해 굴레에 매이지 않는 자유인으로 높이 평가했습니다. 민족사학자 단재 신채호(申采浩)도 그의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서 “신라 하대부터 고려 중엽까지 600년은 원효의 사상이 지배했고, 원효가 희랍 철학의 강단에서 태어났더라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되지 않았을까”라고 설파했습니다.

 

원효대사는 귀족 불교가 아니라, 대중을 위한 불교가 되도록 노력했고, 작금의 한국사회와 똑같이 분열과 갈등으로 요란했던 세상을 평화롭게 보듬어 함께 나아가도록 해보고자 응전했던 원효의 고뇌가 느껴지는 듯 합니다. 종파간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서 천착했던 원효대사의 화쟁사상에 대해 좀 더 들려주시지요?

원효 사상의 핵심은 화쟁론입니다. 화쟁은 쟁론을 화해시키는 것이지요. 원효는 불교 이론사이의 모순과 상쟁을 화해시켜 불교가 말하는 근본 진리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특정 종파를 고집하지 않고 전체 불교를 하나의 진리에 귀결시켜 사상 체계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원효의 사상은 일심(一心)이라는 개념으로도 수렴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심이란 모든 중생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뜻의 진여(眞如)의 입장에서 보면 마음은 항상 망념과 번뇌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무지(無明) 때문에 미망의 현상적 세계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깨달으면 곧 마음은 그 원천으로 돌아와 본래의 모습을 회복합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진(眞)과 속(俗), 부처와 범부, 보리(불교 최고의 이상적 경지인 정각(正覺, 올바로 깨달음)의 지혜와 번뇌 간의 대립이 해소되는 것입니다.

원효의 화쟁을 원용하면, 서로 소통하여 새로운 사회통합을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共同善을 향한 끊임없는 고찰과 탐구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원효는 만물의 이치는 하나의 마음에서 도출된다는 ‘一心 思想’을 바탕으로 다른 종교적 학파와의 사상적 대립을 완화하고자 ‘和諍사상’을 주장하였습니다.

원효에 의하면 一心은 모든 현상의 근거이고 또한 중생이 도달해야 할 궁극적인 목적지입니다. 자아(self)와 연관시켜보면 욕망의 존재인 마음은 자아성찰(self-reflex iveness)과 자아인식((self-consciousness)의 특성을 내재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원효의 화쟁론은 전체와 부분을 동등하게 수용하고 다양하고 이질적인 요소를 조화롭게 변화시켜서 ‘분열과 갈등’을 ‘통일과 화해’로 나아가게 하는 방법론이다. 화쟁이 쓸데없는 다툼을 화해시켜 올바른 견해를 갖도록 해 주는 것이라면 불교 이외에 유교, 도교와의 관계를 포함한 모든 시비에까지 확대시켜 볼 여지도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화쟁의 논리체계나 방법론은 세상사 모두에 적용시킬 수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원효와 화쟁사상을 우리 사회의 현재 상황과 연결지어 생각해 본다면 어떻게 접목시켜 볼 수 있을까요?

어떤 학자는 부자와 빈자 사이의 간극을 비도덕적 현상으로 보기도 합니다. 지구촌 인구 70억 중 15억명이 비참한 가난에 허덕이는 반면 세계인구의 1%가 99%보다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는 현상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할 여지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의 불균형은 비도덕적인 면이기도 하지만 지구촌 사회에서 심각한 긴장과 갈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으며 사회적, 정치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심각한 부의 불균형과 생태파괴는 소득과 삶의 방식 뿐만 아니라 자원 배분과 안전문제에서 나라 사이에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숩니다.
모든 종교의 핵심주제는 그 종교의 내부인 뿐만 아니라 외부인까지 즉 모든 인간을 돌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고 불교와 같이 모든 지각 있는 존재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인간의 영혼을 여는데 인간의 번영이 있다고 합니다. 종교가 제대로 역할을 하면 인간 사이의 갈등을 현저히 줄일 수 있습니다.

 

원효의 화쟁론 그리고 불교가 지향하는 평화로운 세계, 평화로운 삶에 대한 역할을 강조해 주신다면?

요컨대, 원효의 화쟁론은 불교교리와 이론에 대한 이러저러한 다툼을 버리고 하나의 근본 진리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이를 타 종교간에도 종교의 근본 목적과 근본 진리에 대한 다른 시각으로 인한 다툼에 확대, 원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의 목적이 인간의 선한 삶, 이기적 욕심을 버린 이타심, 영생을 위한 행복추구 등이라면,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서로 다투지 말고 종교의 근본목적, 근본 진리로 돌아가자는 논리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네가 옳다, 내가 옳다 다투지 말고 종교의 근본 진리로 돌아가면 갈등을 피해 화해와 조화가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본 진리는 어느 종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하나로(일심으로) 존재할 뿐이라는 원효의 화쟁론 그리고 부처님의 말씀에 따르면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근본 진리가 이렇다 저렇다 하며 다툴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삶은 고통이고, 상실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삶의 모든 좋은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실재하지 않는 ‘자아(自我)’라는 존재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력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불교에 대하여 서양 철학자로서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강의로 유명한 예일대 세이건교수도 깊은 존경심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기적 자아에 매몰되지 않는 이타심은 평화를 가져오는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합니다.

유럽으로 밀려든 이슬람 난민으로 인해 서구 기독교사회에서의 충돌 가능성이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불교가 이 두 종교사이의 갈등과 충돌을 완충하는 중재자 역할을 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1,350년전에 원효대사에 의해 펼쳐진 화쟁론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용한 것 같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전쟁과 테러를 일으키는 종교간 갈등을 줄이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기독교와 타 종교 사이는 물론 이슬람교 내에서도 수니파, 시아파간 갈등으로 나라가 갈라지거나 정권다툼으로 전쟁과 인명살상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그 결과 최근 수년간 수백만 이슬람 난민이 유럽으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지중해 해난사고로 다수가 목숨을 잃고, 기독교-이슬람 간 갈등과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내로 시선을 돌려보면, 국론 분열과 진보와 보수간 진영 갈등이 첨예한 이 시대도 원효가 살았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토록 사회통합을 갈구했던 원효의 화쟁사상 원용이 너무나 절실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분열과 갈등으로 가득한 한국사회에서 일반인들이 명상의 시간을 가지며 삶을 되돌아 보고, 상처를 치유하고, 반목했던 상대방을 이해하고 용서하기 위해서 불교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인 듯 싶습니다.

 

불교의 지혜를 가까이에서 접하고, 자연과 종교, 대중이 조화되는 방안 중 하나로 템플 라이브러리(사찰 도서관)를 활성화해보자는 제안도 하셨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우리나라 전통사찰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이나 심산유곡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최근 도시인들이 지친 심신의 힐링을 위해 불교인, 비불교인을 위한 전통사찰이나 도시근교 사찰에서 템플스테이가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템플스테이가 도회를 떠나 사찰에서 마음 수양을 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현대인들이 북까페나 책방을 찾듯이 편하게 절에 들러서 불교 서적은 물론이고, 일반 대중 교양서적들도 마음껏 읽고, 명상 수양과 공부에 몰입하는 기회를 얻었으면 합니다. 마을과 가까운 절에 사찰 도서관 그러니까 템플 라이브러리를 잘 조성해서, 불교와 절이 일반 대중에게 좀 더 친숙해지면서도 차분한 독서공간으로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사례로, 양산 통도사에서 전국적으로 도서 기증을 받아 이를 실현해 가고 있는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평소 법학 연구자들에게 좀 더 세상을 넓게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당부하기도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사법시스템이 법문에 가로막혀 정의와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지 못하는 판결로 억울한 사람을 양산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법관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음에도 분쟁해결에 있어 우리나라 사법부의 역량이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분쟁 사안에서 법률가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육법전서도 중요하지만 이를 넘어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에 바탕을 둔 결론을 내 주어야 합니다. 제가 2005년 밴쿠버 UBC 로스쿨에 가 있을 때 법률신문에 캐나다 로스쿨을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로스쿨 도입을 위한 입법과정에서 그 글을 읽은 교육부 공무원이 저와 통화하고 ‘법학전문대학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조의 교육이념에 이를 반영하였습니다. 법학도들에게 분쟁을 합리적, 종국적으로 해결하려는 기본자세를 길러주기 위해서는 법학자들의 교육적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덧붙여 주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우리 사회는 근대화를 강대국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었던 일제 강점기, 짧은 해방공간에 이어진 6.25 전쟁 등으로 진영논리, 갈등구조가 심화될 수밖에 없는 정치사회적 환경이었습니다. 거기에서 오는 이념적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지성적 노력은 많이 부족하였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보혁 갈등으로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1300여 년 전 통일신라 원효대사의 화쟁정신은 근본원리로 돌아가 화합을 이루고자 한 지성의 산물이었습니다. 여전히 사회통합을 위한 최고지성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법학에 천착하다 보면 나무만 좇다가 편협되게 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법학’이라는 나무와 더불어 ‘인간과 사회’라는 숲을 보기 위해 인문, 사회과학,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과 접촉면을 늘리려는 노력이 수반되었으면 합니다.

안셀름 포이에르바하는 법학을 ‘빵을 위한 학문’이었다고 술회했습니다. 법학이 현실적 명리를 가져다주는 도구학문으로서가 아니라 바람직한 사회로 견인하는 학문으로서의 역할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공의(公義)는 법학자와 법조인 그리고 정치인들이 지향해야 할 공통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삼독심(三毒心) 즉 탐(貪:욕심냄), 진(嗔:성냄), 치(痴: 어리석음)를 다 없애지는 못할망정 이를 줄여보고자 하는 삶을 추구했으면 합니다.

 

이은기 교수 프로필

변호사

前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공법학 교수

前 한국환경법학회 회장

現 전국교수불자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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