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5위 경제대국인 영국은 금융서비스산업의 호조에 힘입어 지난 15년간 호황을 구가해왔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2008년 중순 이후 금융부실이 확대되고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면서 재정 악화와 파운드화 가치 하락 등으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야당과 일부 전문가들은 '제2의 아이슬란드(Iceland-on-Thames)'라는 표현으로 영국의 국가채무 불이행(디폴트)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영국경제는 '금융기관의 부실 심화'와 '정부재정 악화'라는 두 가지 불안요인을 안고 있다. 2009년 1월 현재 영국 은행의 총 부채 규모는 7조 9천억 파운드로 영국 GDP의 5.5배에 달하며, 외채는 4조 7천억 파운드(총 부채의 약 60%)에 이를 정도로 은행의 재무구조가 취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버블 붕괴에 따른 '국내 부실자산의 증가'와 미 서브프라임모기지 관련 상품의 부실에 따른 '해외투자손실'로 二重苦를 겪고 있다. RBS, Lloyds Banking Group, Barclays 등 주요 은행의 예상 손실규모가 GDP의 6.4%(925억 파운드)에 달할 정도로 은행 부실이 심각하다.

또한 미국의 모기지대출상품에 대한 투자 손실로 1,226억 파운드의 자산평가손실이 발생했으며, ABN Amro(RBS 인수), HBOS(Lloyds TSB와의 합병) 등 부실 금융기관의 무리한 인수도 경영난을 더욱 심화시켰다. 한편, 금융 불안과 실물경기 침체가 본격화되면서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대규모 구제금융 지원, 세수 감소 및 200억 파운드의 경기부양책 시행 등으로 정부재정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재정적자는 2007년 GDP 대비 2.8%에서 2008년에 4.6%로 증가하였으며, 6천억 파운드 이상의 자금이 은행 국유화 등 구제금융에 투입됨으로써 정부부채도 2009년 1월 현재 GDP 대비 47.8%로 급증하였다. 금융부실 심화로 인해 구제금융 투입이 추가로 예상되고 있어 재정적자는 GDP 대비 9% 이상으로, 정부부채는 5년 후에 GDP 대비 60∼70%로 증가하는 등 재정 악화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영국은 아이슬란드와 같이 단기간에 디폴트위기에 처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衆論이다. 경제규모에 비해 외환보유고는 적지만, 미국과 무한대의 통화스와프협정이 체결되어 있어 단기적인 채무불이행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금융기관의 부실이 확대될 경우 은행 국유화와 배드뱅크 설립 등을 위해 추가 재정 투입이 불가피해 정부재정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영국 정부는 향후 5년간 당초보다 2배 규모인 6,300억 파운드의 국채(Gilts)를 발행할 전망이다.

문제는 2009년에 미국과 서유럽에서만 약 3조 달러의 국채 발행이 예상되고 있어 영국 정부의 국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용이하지 않다는 데 있다. 美 재무부증권은 시장에서 제1순위로 소화되지만, 서유럽 국가들은 서로 경쟁관계에 있어 국채 발행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영국은 일본과 달리 발행 국채를 국내 금융기관이 모두 소화하기는 역부족으로 해외 투자자에게 1/3 이상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영란은행은 정책금리를 제로 수준(0.5%)으로 인하하는 한편 역사상 처음으로 국채 매입을 통한 양적 완화정책(Quantitative Easing)을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영국 정부는 이를 통해 국내 금융기관들의 국채 매입을 유도하는 한편 유동성 공급 확대를 통해 시중금리를 낮춰 소비 진작을 도모하고 있다.

하지만 양적 완화정책은 물가 상승과 파운드화 가치 하락 등의 위험부담이 따르는 '최후의 카드'라 할 수 있어 향후 '경기침체 장기화→금융부실 증가→재정 악화→자본 이탈→파운드화 하락→국채발행 및 원리금 상환 차질'로 이어지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국제공조를 통해 최악의 위기를 모면한다 하더라도 영국경제는 재정 악화로 인해 상당기간 예년의 성장세를 회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만약 영국경제가 위기에 처할 경우 영국 자본에 가장 많이 의존하고 있는 한국경제로서는 자본 이탈로 충격이 예상되며, 한국의 對英 수출도 상당기간 부진을 면하기 힘들 전망이다.

한국은 거시경제 펀더멘털이 건실하고 수출 제조업 기반이 강해 영국보다 위기 극복에 유리한 상황이다. 다만 영미계 자본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금융부문의 취약성이 실물부문을 훼손하지 않도록 선제적인 정책 대응은 필요하다. 영국경제의 위기 가능성에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자본조달처를 다변화함으로써 영국 금융기관에 대한 과도한 차입 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3조 달러 이상의 국채 발행이 예상되고 있어 보다 세밀한 국채발행 전략이 요구된다.

<제공 :  삼성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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