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창간 7주년 기념 기획특집 '정치 70년 비화'
‘이승만 정권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김구 선생의 암살사건이 없었다면
우리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 건국동지에서 훗날 정적으로 변한 이승만 대통령과 김구 선생
【의회신문=수석논설위원 서진모】역사는 흐른다. 도도한 강물처럼… 그 숱한 역사 중에서도 정치역사는 다르다. 때로는 조용하게 흘러가지만 때론 성난 파도와 같은 것이 정치역사의 흐름이다. 본지는 창간 7주년 기념으로 또한 대한민국 건국 제 70주년 기념 특집으로 이 大기획특집기사를 연재한다. ‘이승만 정권부터 박근혜 정부까지’라는 제목을 달고 저널리스트 작가인 본지 서진모 수석논설위원의 주도 아래 그야말로 흐르는 강물처럼 써내려갈 것이다.    <편집자 주>

대한민국 정치사! 그 원류는 밉든 곱든 자유당 정권, 이승만 건국대통령 시대부터 시작된다.

그 후 4·19민주혁명으로 출발한 민주당 정권(윤보선 대통령 시대)을 잠시 거쳐 5·16군사혁명으로 공화당 박정희, 그리고 10·26사태와 더불어 차라리 탄생하지 말았으면 좋았을 5共 전두환 정권, 이어서 6共 노태우 정권을 힘겹게 넘기면서 ‘문민시대’의 슬로건을 내건 김영삼 정권, 그리고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권으로 이어져 왔다. 그때의 역사적 특이사연들을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배우고 반면교사로 삼자는 것이다.

그리고 2013년 2월 25일 새롭게 탄생한 이른바 ‘박근혜 정부’까지 흘러가고 있다. 현 정부도 이미 변곡점을 지나 집권 중반기로 접어든 것이다. 그럼 먼저 초대 대통령(일명 건국대통령)인 우남 이승만 박사의 존재가치와 그 진면목부터 살펴봐야 한다.

‘독재자 이승만’이란 불미한 낙인과 함께 장기집권의 후유증은 따랐지만 그는 북한 공산세력이 가장 미워하고 무서워했던 철저한 반공 대통령이었다. 따라서 우남 이승만은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의 국부(國父)다. 어느 아비에게도 다소의 흉허물은 있는 것이다.

 어떤 지도자도 시대의 공과 다리를 건너뛸 순 없다. 나라 살림살이의 80~90%를 미국 원조에 매달렸던 가난한 나라의 지도자였지만 미소(美蘇)강대국의 농간을 단호히 뿌리쳤던 거인이었다. 그는 ‘민주’를 대들보로 박고 ‘시장경제’를 서까래로 올려 나라의 집을 지었다. 그 큰 대업은 결코 지워질 수 없다. 그는 6.25사변 이른바 한국전쟁 때 북의 침략을 끝내 막아냈다.

우격다짐으로 미국을 설득, 한미 방위조약을 이끌어 낸 것은 이승만의 선각자적인 혜안의 결과다. 한미동맹이야말로 후일 ‘한강의 기적’을 일군 박정희 시대를 거쳐 오늘로 이어진 번영한국의 큰 밑천이요 소중한 기틀이다. 건국의 이승만과 근대화의 박정희 두 거인을 나란히 세워 나라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으로 비유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그렇게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만시지탄의 느낌이 있지만 현 여당 지도자들 일부가 건국대통령 우남 이승만의 업적과 위상을 인정한 점은 매우 고무적이 아닐 수 없다. 이승만 대통령의 생애는 약소국의 슬픔을 온몸으로 부딪혀 치열하게 싸워온 투쟁사로 채워진다. 일거수일투족 하나같이 애국애족의 화신(化身)이었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건 이승만의 유명한 어록(語錄)이다.

물론 민족의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 암살사건 등은 씻을 수 없는 ‘과오’였지만 살인범 안두희는 끝내 입을 열지 않고 죽었으니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다는 증거는 없다. 4강구도 속 한반도의 명운을 길게 내다본 이승만의 절규는 남북통일의 험로까지를 함축한 국가 생존의 이정표를 오늘의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다.

▲ 서진모 수석논설위원
그는 삶의 눈높이를 늘 밑바닥 서민들에 맞춰 정치를 했다. 그는 권좌에서 쫓겨나지 않았고 스스로 하야 결심을 실천한 인물이다. 최고 통치자로서 사태 발단의 빌미를 흘리고 통제력을 상실한 고집의 정치적 책임은 무한하다. 그러나 인간 이승만 내면의 도덕성은 청량했다.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학생데모 소식을 접하면서 이승만이 피력한 소회가 이를 뒷받침한다.

"젊은 학도들이 부정을 보고 들고 일어선 것은 나라의 장래를 위해 잘한 일이야" 대통령 이승만의 비망록에 적힌 고백성 글의 ‘외침’이다. 어쨌거나 자유당의 몰락은 3·15선거였다. 운명의 3·15부정선거는 이승만 대통령의 비극이었다.

부통령을 민주당에 빼앗긴 자유당은 고령의 이승만 대통령이 서거할 경우, 야당에 정권을 빼앗길 것이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자유당은 이 번 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대통령도 부통령도 꼭 자유당에서 이겨야겠다고 벼뤘다. 이것이 무리였다. 그게 결국 자유당의 운명을 재촉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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