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창간 7주년 기념 특집기획 ‘정치 70년 비화’
‘이승만 정권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정부 고위층과 자유당 간부들 대통령
귀와 눈 가린 채 부정부패 일삼고…”

▲ 북한 김일성은 만반의 전쟁준비를 하고 남침 공격명령을 내렸다.

▲ 서진모 본지 수석논설위원
【의회신문=서진모 수석논설위원】역사는 흐른다. 도도한 강물처럼… 그 숱한 역사 중에서도 정치역사는 다르다. 때로는 조용하게 흘러가지만 때론 성난 파도와 같은 것이 정치역사의 흐름이다. 본지는 창간 7주년 기념으로 또한 대한민국 건국 제 70주년 기념 특집으로 이 大기획특집기사를 연재한다. ‘이승만 정권부터 박근혜 정부까지’라는 제목을 달고 저널리스트 작가인 본지 서진모 수석논설위원의 주도 아래 그야말로 흐르는 강물처럼 써내려갈 것이다.    <편집자 주>

“자유당 정권은 잘 망했어. 소위 국무위원을 지낸 사람들이나 당 간부라는 자들의 정신들이 하나같이 비겁하고 썩었으니 말이야. 그리고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질줄 모르고 재판받으러 갈 때마다 ‘최 장관 나 좀 살려줘요’ 하면서 모든 십자가를 대신 좀 져달라고 애원하는 그런 비굴한 모습들에서 이 나라를 위해 함께 일한 내가 너무 부끄럽고 한심한 생각이드네” 라고.

이와 같은 말은 4·19 직후 ‘부정선거원흉’이란 억울한 오명을 쓰고 구속되어 군사혁명 재판부로부터 사형을 당한 최인규 전 내무장관이 서울서대문교도소에서 면회 온 가족들에게 남긴 눈물의 유언이다.(한편, 다음호에는 최인규 장관이 ‘사형수 바꿔치기’ 그 주인공이 된 기막힌 내막이 실려 나감)

그처럼 썩은 정신 소유자들 속에 둘러 쌓여있던 이승만 대통령은 정말 한심스런 통치를 할 때가 많았다. 미국생활을 오래하여 우리 국내 사정을 잘 모르기도 하였지만 천하의 간신 곽영주, 이기붕 같은 탐관오리요 아첨꾼들 이른바 ‘십상시’ 같은 무리들이 고령인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떨 땐 신문을 이중으로 찍도록 지시하여 경무대의 대통령이 보는 신문에는 대한민국 이 나라는 오직 ‘태평성대‘의 나라인 것처럼 모든 생필품 물가도 싸고, 농사도 풍년만 들어 온 국민들이 잘 먹고 잘사는 것처럼 가짜 기사를 써서 몇 부만 따로 찍어 올렸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어찌 절망에 찬 민심과 민생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지금 생각하면 참 한심스럽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시중에 소고기 한 근에 가령 1000원이라면 그 가짜 신문에는 300원, 그리고 계란 한 개 값이 100원이라면 20원 정도면 사 먹을 수 있다고 허위 기사를 실어내도록 했었다.

그렇게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이었으니 북한 김일성 일당이 남한을 만만하게 보고 전쟁으로 이 나라를 집어 삼키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급기야는 6·25사변이란 민족적 큰 불행을 초래 한 것이다.

이승만 정권이 수립되고 첫 국가적 큰 비극은 아무래도 한국전쟁, 이른바 6·25사변이라고 봐야 한다. 그건 한마디로 위정자의 무비유환(無備有患)이었다. 1950년 6·25일의 북괴남침은 크나큰 시련과 비극을 이 민족에게 강요했던 것이다.

그 참극이 안겨 준 이 민족의 상처는 두 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혹독한 것이었다. 온 강토가 두들겨 맞을 대로 맞았고 터질 대로 터졌으며 무참히 짓밟혔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3년 1개월간 붉은 피로 물들여졌고, 몸서리쳐지는 폭음에 불타버린 전쟁터는 마구 파괴되어 갔다.

산과 들은 동포의 시체로 뒤덮여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고, 인민군의 광란 속에 부모 잃고 자식 잃고 형제자매가 처참하게 죽어 간 그 한 맺힌 울부짖음과 한탄만이 전국 방방곡곡 가득히 메아리쳤다. 그 이상의 참극(慘劇)은 없었다.

그 해 겨울 피난길은 폭설이 사정없이 마구 쏟아져서 무릎까지 쌓여 발을 떼어놓기도 힘이 들었는데, 피난 보따리를 등에 짊어지고 머리에 이고 어린아이까지 잡아끌면서 겨우겨우 옮기는, 지칠 대로 지친 발걸음에 굶주림까지 겹쳐 왔다.

가는 곳마다 부모 잃은 어린아이들이 길에서 헤매고 있었고 가깝게 들려오는 포성에 마음을 졸였다. 이러한 피난 행렬을 피부로 겪은 세대들은, 몸서리쳐지던 그때의 기억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현재 7~8순 어르신들)

참으로 전쟁이란 것은 이 세상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비극이다. 길거리마다 쌓여 있는 시체, 부상자들이 고통 중에 신음하는 소리, 부모 잃은 어린아이들과 자식 잃은 부모들의 울부짖는 소리, 죽은 어머니의 젖을 빨고 있는 아이, 허기져서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풀뿌리를 먹는 사람들, 실로 저마다의 통곡과 울음소리가 삼천리 산하에 메아리쳤다.

그 당시 참혹한 정경의 단면을 지난해 인기리에 상영되었던 영화 ‘국제시장’이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이 모두가 해방 이후 좌.우익의 첨예한 갈등 때문에 시작된 것이었고, 북한 공산당이 적화야욕을 품고 무력으로 남침하여 전쟁을 일으킨 결과다.

우리는 그때의 아픔을 뼈에 깊이 되새기면서, 두 번 다시 그런 전쟁의 쓰라림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 참혹했던 지난날 역사의 발자취를 거듭거듭 되돌아보고 정확하게 연구해야만, 우리의 앞날을 대비할 수 있고 적에게 맞설 만한 힘을 키울 수 있다. 역사를 기억하는 일을 소홀히 하면, 65년 전의 참혹한 희생은 또다시 우리의 역사 위에 반복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때 유엔군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다. 역사적 사실은 결코 시대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 해석에 있어서 여러 의견이 나올 수는 있으나, 실체적인 진실까지 왜곡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역사적 진실 자체를 가감하거나 왜곡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역사는 더해서도 안 되고 빼서도 안 되며 정확한 사실 그대로 밝혀져야 한다.

그 순간에 역사는 비로소 현재 속에서 놀라운 생명력을 발휘하여, 현재를 곧게 비추어 주는 선명한 거울이 되며, 미래를 향해 올바른 방향을 힘차게 외치는 나팔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왜곡 날조된 역사는, 반드시 우리와 후손들을 나약하고 병들게 하여 나라의 장래를 암담하게 만든다. 과거 역사를 사실대로 진단하지 못한다면 우리 민족은 앞을 볼 수 없는 장님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이 땅에서 ‘미군철수’를 외치는 자들은 각성해야 한다.

남과 북으로 분단된 국토, 내부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념적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더더욱 거짓 없는 역사의 보존을 위해, 사실을 사실대로 왜곡 없이 기록하는 일과 젊은 세대들을 위한 올바른 역사 교육이 강력히 요청되는 것이다.

국사를 정직하게 사실대로 거짓 없이 기록하고 이야기할 때, 비로소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어 애국심을 심어 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정부와 국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교과서’ 문제는 신중하고도 정의롭게 집필되어야 할 것이다. 당리당략에 치우치지 말고 나라의 앞날을 생각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아무튼 지금 생각하면 6·25 당시 우리 국정 최고 책임자였고 국군 통수권자이던 이승만 대통령이 6·25 당일 비원(秘苑)의 연못에서 한가로이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는 역사의 기록을 보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계속>

저작권자 © 의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