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조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의회신문】본지는 특별기획으로 국내 정치외교학계의 큰 스승이자 한국 정치외교학계를 대표하는 존경받는 석학인 한승조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의 최신 역작 ‘대한민국의 正體性과 價値’(2015년 4월, 주식회사 나남 발행)의 내용을 시리즈로 전재(轉載)한다. 본지 독점으로 연재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한승조 교수님께 거듭 감사드리며, 이 글이 오늘의 세계 현상과 국제관계 그리고 대한민국의 행보 및 거취에 대한 독자 제위의 탐색과 인식에 많은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註>

■ 문화전쟁에서 밀리고 눌려서 더 일그러진 보수세력

최근 '미래한국'(442호)에 '문화전쟁, 밀릴 데까지 밀렸다'라는 글이 실렸다. 글쓴이는 숭실대 남정욱 교수로, 매우 설득력 있는 지적을 하였다고 판단이 되어 그 글의 일부를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 수십 년간 우파는 정치, 경제, 권력을 장악하고 오만을 떨었다. '야마'를 잡고 있으니 다른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허술하게 내주거나 방치한 것이 문화권력이다.

우파는 세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문화는 '시간'과 '인간'을 다룬다는 것을, 그래서 문화권력에는 자연스럽게 역사권력이 딸려간다는 것을. 그 2개가 합쳐지면 정치. 경제, 권력 같은 건 모래 위에 쌓은 성만도 못하다는 사실을.

연극 '한강의 기적' 대관취소 사건 이야기다. ...연극인의 주장처럼 '이런 연극'이 되기에는 함량이 한참 부족한 작품이었다. 당연히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면 되는 사안이었는데 극장 측은 '알아서 기었다'. ... '한강의 기적' 대관취소는 단순하게 넘길 해프닝이 아니다. 대한민국에 대한 반(反)대한민국 세력의 ‘한판 뜨자’는 선전포고다. ... 실은 신호탄은 이미 올랐다. 이른바 역사 다큐멘터리인 '백년전쟁'이다.

...70년대 중후반 출판운동, 80년대 문화운동을 통해 좌파가 진지를 구축하고 내공을 다진 세월이 거의 40년이다. "대학생이 되면 세뇌시키기에는 너무 늦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초⋅중⋅고교 교사들로 구성된 전교조의 활동도 20년이다. 전교조의 반국가, 반민족, 반역사 이데올로기 집중교육 10년 동안 배출된 학생이 600만 명이다. 이들 대한민국 좌파 문화권력의 든든한 받침대가 있는데 연극 '한강의 기적' 대관이 무산된 게 그리 이상한 일일까.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의 제작 살포는 대한민국에 대한 좌파의 선전포고다. 이런 다큐멘터리들이 속편처럼 꼬리를 물고 제작되고 일부는 편집돼 다시 새로운 콘텐츠로 대중에게 무차별적으로 살포된다. 밀릴 데까지 밀렸다. 6⋅25로 치면 부산 하나 남은 셈이다. 치고 올라가야 할 것은 물론이고 인천상륙작전처럼 허리도 한 번 끊어놔야 한다.

■ 대한민국의 문화권력은 민중화의 바람을 타고

문화전쟁이란 한마디로 보수우익과 진보좌파 간의 문화권력의 쟁탈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의 문화전쟁이 친북좌파의 손으로 넘어간 것은 정치권력이 전두환 정권에서 노태우 정권으로 바뀐 시기였다.

노태우 대통령이 6⋅29선언을 한 후 민주화가 사회적인 추세가 되면서 문화권력도 좌파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는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제도화되기 시작했으며 그에 따라 민중화도 공고히 뿌리를 내린 것이다. 민중화와 민주화는 엄연히 다른 것인데 한국에서는 그 양자가 동일시되어 왔으며, 이것은 포퓰리즘의 풍조를 낳고 말았다.

노무현 정권이 끝나면서 권력은 이명박 정부로 넘어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미 좌파세력으로 넘어간 문화권력을 고스란히 좌파세력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여 그들의 권익을 존중하는 것이 신사도라고 믿었다. 정권 초에 있었던 촛불시위 이후 사회가 비교적 빨리 안정을 유지한 배경에는 이명박 정권이 좌파들 손에 넘어간 문화권력을 되찾아올 생각이나 노력을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 종북좌파의 강화된 문화권력에 대한 정통세력의 대처방안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문화권력에서 보수우익세력이 혁신좌파세력을 이겨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정치의 혼란과 불안의 중요 원인이었다.

좌파의 문화권력을 밑받침하며 그 대세를 좌우하는 중추적인 주도세력은 누구였는가? 그것은 문학의 광범한 독자층, 연극⋅영화 애호가, 다양한 예술 지망자, 대학생 혹은 다양한 식자층, 교수⋅교사⋅목사⋅승려⋅언론인⋅법조인 등 비교적 세파에 덜 오염된 추종자들이었다.

이들은 왜 좌파의 문화권력을 밑받침하는가? 일찍이 누군가 말했다. 젊은 시절 공산주의자가 되지 않은 사람은 가슴(heart)이 없는 자이고, 나이 들어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머리(brain)가 없는 지진아(遲進兒)라고.

젊은이들은 순수하고 감성이 예민하여 다정다감하고 정의롭다. 어느 사회, 어떤 체제에도 부조리는 존재한다. 젊은이들은 이 같은 부조리에 대해 저항적이며 현실 비판적이고 혁신을 소망한다. 이런 가슴(heart)을 파고들어 기생하는 것이 이른바 혁신좌파의 반체제적⋅반국가적 세력들이다.

어려운 여건에서 자유민주체제의 국가를 수립하고 북한의 남침으로 인한 국가위기를 타개한 후 마침내 눈부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해낸 세력이 누구였는가? 다름 아닌 보수우익 세력, 곧 '대한민국 세력'이다. 그럼에도 건국 대통령 이승만과, 민족 역사상 '굶주림'을 처음으로 벗어나게 만든 산업화의 대통령 박정희는 오히려 한국의 역사교과서에 의해 오물을 뒤집어쓴 채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대한민국의 문화권력이 아직도 좌파 세력에 의해 장악되어 있으며, 매사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그들의 시각이 나라의 문화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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