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민 자본주의⋅낡은 이념 극복해야

【의회신문=한승조 /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우리가 나라 밖의 도전을 뛰어넘어 통일로 나아가려면 대한민국의 내부 에너지를 응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 전체에 긍정의 기운이 사라지고 대신 자기 몫만 주장하는 각자도생의 욕구만 난무하고 있다.

광복 70년은 끝없는 위기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나라를 개방해 외부에서 자원과 인재⋅외자를 받아들일수록 더 큰 번영을 누렸고, 나라 안보다는 나라 밖에 나가 더 큰 기회를 잡았다. 지금 대한민국을 향해 던져진 과제들은 결단코 넘어서지 못할 벽은 아니다. 진정한 위기는 우리 스스로가 체념과 좌절에 젖어 있다는 데 있다. 이런 부정의 기운을 털어내는 것이 급선무다.

독일 태생의 미국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통찰했듯 ‘독재는 자기 파괴의 요소를 스스로 배양한다.’ 북한은 극심한 가분수 사회다. 이런 사회는 자기 힘으로 존속할 수 없다. 광복 100년을 분단된 상태로 맞지 않으려면 미국과 중국의 협조를 얻어내고 중국 일본과 신뢰를 구축하는 일이 필수다.

그러나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2015년 세계 대전망(The World in 2015)에서 “새해 각국은 민족주의로 회귀할 것”이라고 예상한 것처럼 세계적인 흐름은 동북아시아에 먹구름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반일감정, 일본의 혐한(嫌韓)⋅혐중(嫌中) 분위기에는 맹목적 국수주의의 기운까지 느껴진다. .....한일정상회담을 포함해 한중일, 한미일 정상회담 등을 통해 일본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광복 이후 70년은 긴 세월이다. 조선왕조는 개국 70년에 세종 대(代)의 전성기를 넘어 성종 대의 두 번째 전성기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 분단 상황은 우리 민족의 온전한 자기실현을 가로막고 있다.

광복⋅분단 70년, 이젠 시민이다.

국가와 정부, 민족을 앞세운 과거의 성공신화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와 민족을 대체할 새로운 중심세력과 에너지를 어디서 찾아야 하느냐고. 우리는 감히 그 열쇠말을 ‘시민’이라는 한 단어로 압축하고자 한다.

여기에는 정부와 시장만으로는 더 이상 대한민국의 발전을 꾀할 수 없고, 시민들이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면 궁극적으로 우리 공동체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절박한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중국과 일본의 각축 속에 세계의 화약고가 돼가는 동북아 지역에서 한국이 평화와 공존의 중심 역할을 하기 위해서도 과잉 민족주의를 순화할 수준 높은 세계시민 의식을 갖춰야 한다. .....올해도 한국경제는 고질병인 저성장과 싸워야 한다. 저출산⋅저효율, 그리고 고령화⋅고비용이란 2저(低)-2고(高)를 극복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경기를 살리면서 장기 지속성장의 기틀을 마련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돈을 풀어 경기를 떠받치는 정책만으로는 안 된다.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구조개혁이 병행돼야 한다. 하지만 기득권층의 반발은 여전하며 입법환경도 나아진 게 없다.

올해는 구조개혁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 과제에 정권을 걸겠다는 의지부터 다져야 한다. “이 정부 임기 중엔 기틀만 닦을 테니 과실은 다음 정부에서 따 달라”는 각오가 중요하다.

과도하게 늘어난 복지 지출을 삭감하는 것은 괴로운 문제다. 하지만 시민들을 설득하고 동참을 이끌어내면 반발하는 이해관계 집단들에 대해 사회적 압박을 가할 수 있다. 때로는 정치적 손실을 각오하고라도 시민들을 향해 피와 땀과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정치와 정책방향이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는 시민의 요구와 맞지 않으면 얼마나 값비싼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지 우리는 생생하게 체험했다. 이제 시민들의 참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정부와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속출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다원화⋅다양화되고 있다.

더 이상 시민은 수동적 통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시민이 주어(주어)가 되고 국가가 목적어가 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 비판과 방관을 넘어 국가⋅민족과 상호 협력하는 신 시민시대를 열어야 한다. 새로운 시대의 씨앗을 뿌리고 밑거름을 뿌리는 것은 당연히 시민교육의 몫이다.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면서 탐욕을 절제하고, 관용과 배려가 몸에 배도록 끊임없이 가르쳐야 한다. 눈앞의 이익에 함몰되지 않고 지구촌 전체를 바라보는 건강하고 성숙한 시민들이 쑥쑥 자라나야 한다. .....우리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 시민의 밝은 눈으로, 시민의 입장에서 공동체의 크고 작은 사안을 판단하고 방향을 정할 것이다.

언론 3사의 신년사설에 대한 소견

한국의 대표적 언론 3사의 2015년 신년사설은 모두 훌륭한 글이었다. 사실 그 내용은 크게 보아서 대동소이한 것이다.

한국은 건국 후 70년 동안 엄청나게 성장하고 발전하였다. 그러나 한편에는 빈부격차가 확대되어 사회적 부조화가 조성되었고, 여야 간의 극한대립으로 정치 불안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의 대표 언론은 이러한 현실에 대해 문제점으로만 지적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국민 대중에게 보다 더 바람직한 선진국민의 자세를 일깨워줄 수는 없었는가? 물론 국민 대중에게 도덕적으로 충고하거나 훈계하는 것이 바람직한 언론의 자세는 아니다.

언론은 국민이 정부에 너무 많이 의지하며 너무 많은 요구를 하지 않도록 설득해야 한다. 한일관계의 악화를 염려하는 사설들도 다만 그것을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시정하고 보완하는 언론활동의 노력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반일(反日)이 곧 애국애족의 표현이라는 주장의 정당성은 일제 치하에서만 통용될 수 있었다. 21세기 사회의 오늘날에는 감상적 반일 일변도가 아니라 화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언론은 국민에게 일깨워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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