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이 비서관 월급에 빨대 꽂고 삥 뜯어
"그럴 수도 있는 일, 국회에선 흔한 관행"

▲ 울산시의회 기자실에서 최근 비서관 월급 상납 논란을 빚고 있는 새누리당 박대동 의원(울산 북구)에 대한 국회 윤리특위 소집 및 징계를 촉구하는 청원서 제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의회신문=정행산 주필】학교 주변에는 더러 힘없고 어린 중고생들을 으슥한 골목으로 불러 위압하면서 호주머니를 털어 용돈을 뜯어내는 양아치 불량 청소년들이 있다. 이런 행위를 청소년들이 흔히 쓰는 말로 ‘삥’ 뜯는다고 한다.

삥 뜯는 일은 비행 청소년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회의원들 세계에서도 관행적으로 행해지는 일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어떤 직업인가? 고액의 세비에 온갖 특권이 곁들여진다. 국민을 대표하고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대의기관이자 입법기관이 국회다.

이런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비서관을 삥 뜯어 몇 푼 안 되는 비서 월급까지 갈취해먹는 천하에 창피스럽고 찌질한 짓을 예사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들 의원들은 "그럴 수도 있는 일이고 문제될 것 없다. 국회에선 흔한 관행" 이라고 말하고 있다니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질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다.

존경받아야 할 국회의원들이 비서 월급에까지 빨대를 꽂고 빨아먹는 짓을 관행처럼 저지르고 있다니, 이 나라 국회의원이라는 직위가 이토록 천박한 양아치 수준이었던가? 막 되먹은 시정잡배도 차마 남 부끄러워 이런 짓은 하지 않는다. 이처럼 염치와 품위를 잃은 국회에 국가의 입법기능을 맡겨왔으니 나라에 큰 탈이 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할 것이다.

이런 걸 한 마디로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고 한다. 얼굴은 번들번들 멀쩡한 사람 낯가죽인데 마음은 짐승과 다를 게 없다는 뜻이다. 우리 국회가 어쩌다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 국회가 짐승 같은 인사들의 집합체라면 이런 국회가 또 무슨 막된 짓인들 못하겠는가.

▲ 이목희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지난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비서관 월급을 상납받아 유용해왔다는 의혹을 제기한 한 매체의 기사와 관련, 해명한 뒤 생각에 잠겨 있다.
우리 국민은 이런 찌질한 양아치 사기꾼들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주었다. 국민이 무지(無知)하고 무분별한 탓이다. 오는 4월 총선에서도 우리 국민은 또다시 이런 불량품들을 국회의원으로 대거 양산할 것이다. 대한민국 민도(民度), 곧 국민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 되지 못하니 어쩌랴. 그래놓고 국민은 돌아서서 국회의원들 잘 하느니 못하느니 말할 자격이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이(李) 모 의원이 국가에서 지급하는 자신의 비서관 월급을 수개월 동안 삥 뜯어 문제가 되자 "나는 모르는 일이었다. 보좌진이 내 지시 없이 이런 일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정해진 순서대로 책임을 딴 사람에게 떠넘겼다. 국회의원 씩이나 되는 인사가 책임 회피 안하면 국민은 재미가 없어진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또 가관이다. "개인적인 정치자금으로 쓴 것이 아니라 의원실 운영에 썼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 국회에선 흔한 관행이다." 윤리의식은 커녕 최소한의 양식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이 의원 측은 지난 2012년 6월 19대 국회 개원 직후 선거운동을 도왔던 A씨를 5급 비서관으로 채용하면서 "원래 6급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5급으로 채용해줄 테니 월급 차액을 반환하라 하신다"고 흥정을 제의했다고 한다. A씨가 "5급과 6급의 월급 차이가 120만원이니 차액 120만원을 매달 계좌로 송금하겠다"고 하자 이 의원 측은  "100만원으로 깎아줄 테니 현찰로 직접 전달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A씨가 밝힌 바에 의하면, 이 의원 측은 A씨에게 "2년 동안 월급 차액을 이렇게 내면 4년간 고용해주겠다"면서 "A씨가 낸 돈은 지역 사무소 직원 채용에 쓰인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록 지역 사무소 직원은 채용되지 않았다. 그런대도 A씨가 돈 내는 것을 미루자 이 의원 측이 "돈을 빨리 가져오라"고 재촉했다.

이 의원은 당시 친동생을 국회 4급 보좌관으로 채용하고 있었는데, 이 실장(이 의원 동생)에게 돈을 줘야 하니 돈을 빨리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A씨는 "지역 사무소 직원 채용에 쓴다더니 왜 동생에게 돈이 간다는 것이냐"며 항의하다 이듬해 1월 비서관 직에서 사직했다.

이에 앞서 지난 12월 초에는 새누리당의 박 모 의원이 자신의 5급 비서관 월급에 빨대를 꽂고 상당액을 빨아먹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었다. 박 의원의 전 비서관 B씨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박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에서 13개월 동안 근무하며 매달 월급에서 120만 원씩을 떼어 박 의원 측에 입금했다"고 밝혔다.

당초 B씨는 박 의원의 상납 강요에 자신은 전세 3000만원에 월 20만 원씩의 월세를 내는 처지여서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하소연했지만 "너, 여기 돈 벌러 왔냐?"며 윽박지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13개월 동안 다달이 120만원씩 1500만원을 상납해 오다 생활고를 견딜 수 없어 지난 1월 사표를 내고 나왔다고 토로했다.

B씨는 또 자신이 매달 상납한 돈은 박 의원의 아파트 관리비와 가스비, 박 의원 가족이 배달받아 먹은 요구르트 대금 등으로 사용한 사실을 우연히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 같은 사실에 대해 박 의원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전 비서관 B씨로부터 월급 일부를 상납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구 사무실 운영이 어려워 B씨가 자발적으로 돈을 낸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은 "모든 것이 제 부덕 때문이며 책임을 통감한다"고 사과했다.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국회의원의 비서관 월급 삥 뜯기'가 상식이나 윤리 차원을 넘어 심각한 문제로 거론되는 까닭은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이 같은 실로 추잡하기까지 한 행태가 ‘관행’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데 있다.

국회의원들이 보좌진 월급을 갹출 받는 형식으로 유용하는 것은 국회의 해묵은 폐단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 '그럴 수도 있는 일' 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 국회는 국민의 대의기관이나 입법기관으로서의 자격을 말할 수 없다. 세계 어느 나라에 이런 품위도 염치도 없는 국회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우리 국회는 국민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우리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직 국회의원이라면 우선 ‘믿어서는 안 되는 사기꾼’이거나 ‘탐욕스러운 모리배’ 정도로 지례 짐작하면서 가까이 하기를 꺼린다.

심지어는 "우리 사회의 가장 질 나쁘고 싸가지 없는 종자들이 모인 곳이 국회라는 집단" 이라는 욕설을 듣는 곳이 오늘의 대한민국 국회요 국회의원들이다.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다 사기꾼이겠는가만, 꽤 괜찮은 인사가 국회의원 하겠다고 나서면 사람들은 "좋은 사람 하나 또 버렸다"고 말한다.

이번 4월 총선에 나서는 예비 후보자들은 국회의 위상을 추락시키고 국회를 모욕하는 당사자들이 다름 아닌 국회의원들 자신임을 뼈아프게 깨닫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가다듬어야 한다.

새누리당 김영우 대변인은 "비서관 월급 일부를 떼서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도덕적⋅윤리적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 라며 "당에서 사실관계 확인을 거쳐 적절한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런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국민은 없다.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 15조는 "국회의원은 국회가 직원에게 지급할 목적으로 책정한 급여를 다른 목적에 사용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를 굳이 윤리실천 규범으로 명문화한 것도 유치한 일이지만, 보다 더 우스운 것은 이 규정에 따라 징계를 받은 국회의원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래저래 우리 국회가 문제 덩어리다.

저작권자 © 의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