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야당의 수권(受權) 카드, "구조조정 금기(禁忌) 아니다"
국민의당 "저임금·빈곤 문제·청년실업 해결이 시급하다"

【의회신문】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지난 20일 한국 경제의 최대 현안인 '구조조정'에 찬성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정부 정책에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면서 반대만 해왔던 야당의 이 같은 변화야말로 ‘경제 정당’의 모습을 부각시키려는 정치적 의도와는 별개로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한국 경제에서 구조조정은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그동안 지지부진을 면치 못했다. 특히 구조조정에 선결돼야 할 노동개혁법안의 경우 지난해 정기국회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반대에 부딪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잉 투자된 분야의 구조조정과 체질개선은 김 대표가 지적했듯 대량실업 등 불가피한 사회적 비용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데 야권이 이를 빌미로 줄곧 노동개혁법안에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한국경제가 5년 넘게 계속된 저성장을 벗어나려면 노동⋅금융⋅공공⋅교육분야의 적폐를 해소하는 구조조정과 부실기업 구조개혁만이 근본해법이라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반론이다.

당초 총선이 끝나고 나서도 다수당이 된 더민주는 제1성으로 “박근혜 정부의 개혁법안 처리를 적극 저지하겠다”며 “노동개혁과 경제활성화법안은 절대 처리할 수 없다”고 구조조정에 반대부터 하고 나섰다.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대 국회의원 당선자대회에서 광주 전남지역에서 유일하게 당선된 이개호 당선인의 인사말을 들으며 박수치고 있다.
◇ 김종인 대표, 구조조정 전제조건으로 실업대책 요구

그러던 더불어민주당이 "근본적 구조조정이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고선 우리 경제의 중장기 전망이 별로 밝지 않다”며 “지나치게 과잉 시설을 갖고 있는 분야는 과감하게 털고 체질 개선을 노력해야 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그러면서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량실업 등에 대한 실업자의 생계와 전업교육 등이 전제된다면 더민주도 정부의 구조조정에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그동안 전통적인 지지층인 노조의 입장을 감안, 구조조정이란 단어를 금기(禁忌)시 해왔다. 또 구조조정에 따른 파업 등을 정부를 공격하는 소재로 삼아왔다.

지난 2011년 한진중공업 사태 당시 야당 의원들은 인력 감축에 반대하는 파업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희망버스'에 동참하면서 기업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았었다. 김종인 대표 역시 구조조정보다는 경제 민주화를 강조해왔다. 그랬던 야당에서 유력 정치인이 비록 조건부이기는 하나 구조조정에 찬성함으로써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에서 경제분야 여⋅야 협력의 발판이 만들어진 셈이다.

김종인 대표는 한 발 더 나아가 "국민들이 느끼는 경제 상황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경제 판을 새로 짜서 우리 경제를 정상으로 이뤄가겠다"며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는 ‘포용적 성장’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포용적 성장의 가장 중요한 요체가 국회"라며 "시장의 효율과 의회민주주의 발달이 오늘날 자본주의를 성공적으로 가져왔지만, 의회가 시장경제에서 파생된 제반 문제의 조정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했다. 원내 1당으로서 적극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다.

◇ 경제⋅민생 앞세운 더민주의 수권(受權) 카드

김 대표가 이날 '근본적인 구조조정'을 언급한 것도 ‘경제 정당’ 면모를 보여주기 위한 차원이다. 노동계 등 전통적인 야당 지지 기반을 감안해 기업 구조조정에 대해 언급을 꺼려왔던 과거 야당 지도부와 비교하면 김 대표의 “제대로 된 구조조정에는 협조하겠다”는 입장은 과거와 달라진 것이다.

이제 공은 정부⋅여당 쪽으로 넘어왔다. 구조조정의 성공을 위해서는 ‘노동 유연성’ 제고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자유로운 해고에 따르는 일시적 어려움만 부각시키는 정치적 논법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원히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구조조정을 하면 대량 실업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정부⋅여당은 이런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치를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구조조정은 일시적인 대량 실업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소비 위축, 지역경제 침체 등을 수반한다. 단기적으로는 성장률 하락도 감수해야 하고, 노조의 반발 등 사회적인 마찰도 예상된다.

김종인 대표는 정부의 구조조정에 야당이 협력하는 전제 조건으로 정부⋅여당이 사전에 이 같은 실업문제 등 해결할 수 있는 조치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만약 그와 같은 게 제대로 이뤄진다면 더불어민주당도 적극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기업 구조조정 사령탑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위원회는 “야당이 구조조정에 협력할 수 있다는 말은 반갑지만 실업대책 등 이런저런 준비를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단서는 부담스럽다. 어려운 조건을 달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무조건 사람 자르는 식으로 가는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것이지, 부실기업들을 무한정 끌고 간다는 것은 국가 경제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며 "부실기업에 무제한적으로 투입하는 돈이면 충분히 해고자나 실직자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 수 있다. 다른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면서도 어떻게 일자리를 만들지 종합적 고민이 돼야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야권(野圈)에서 구조조정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금기(禁忌)가 아니라는 의견도 나왔다. 한 비례대표 당선자는 “산업 구조조정 자체를 야권이 반대할 것이라는 건 잘못된 프레임”이라며 “많은 수익을 내는 기업들이 명분 없이 인력 구조조정을 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지, 경쟁 없는 기업을 빨리 정리해주지 않으면 퍼주기가 된다.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 대우조선 같은 경우도 과도하게 퍼주기를 하고 있는데 일정 정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노조의 대규모 파업 등이 발생할 경우 야당은 발을 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정부의 예상이다.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으로 대규모의 실업이 발생할 경우 더민주당이 이 같은 상황을 정부⋅여당과 함께 헤쳐 나가려고 할 것인지, 정부 탓만 하던 과거의 행태로 돌아갈 것인지가 관건이다.

하지만 총선에서 승리한 야권에서 그래도 구조조정에 동의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은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노동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노동개혁에 야당의 입법 협조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구조조정 찬성론은 한낱 포퓰리즘적 수사(修辭)에 그칠 수밖에 없다.

▲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가 지난 2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성안길을 방문해 시민들에게 인사말을 하며 심은지 충북도당 대변인에게 꽃다발을 받고 있다.
◇ 국민의당도 구조개혁⋅민생 강조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구조조정을 넘어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면서 "지금 이대로 가면 경제가 굉장히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구조조정 대상 기업 가운데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업종에 대해서는 상반기 중으로 관계부처 협의체에서 종합점검한 뒤 부실기업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라 구조조정하고, 정상 기업은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에 따라 산업 재편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교육⋅금융⋅공공분야 4대 개혁에 산업개혁을 추가해 '4+1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산업개혁은 기업 구조조정과 신(新)산업 육성을 합친 개념이라고 기획재정부는 밝혔다.

야당이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경제부총리가 직접 챙기겠다고 나서면서 구조조정이 속도를 낼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사공이 많아져 구조조정이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살릴 기업은 살리고, 포기할 기업은 포기한다는 원칙을 지킨다면 일단 신속하고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실업과 지역경기 침체 등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순서다.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와 야당의 협력 여부는 당장 발등의 불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상선 해법 찾기 과정에서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현대상선은 20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2주간 '거래 정지'에 들어갔다. 부채비율이 2007%까지 치솟아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감자(減資)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주식 매매까지 중단되면서 회생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현대상선은 용선료(선박 임대비용) 협상에 사활을 걸고 있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5조7천685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용선료 1조8천793억 원을 포함해 운영비가 매출액을 넘어서서 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다. 컨테이너선 등 84척을 임대한 그리스 다나오스, 영국 조디악 등 해외 선주(船主)들과 용선료를 20~30% 정도 낮추는 협상을 진행 중인데, 다음 달 정도면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협상이 성과를 내서 채권단의 지원을 받든 협상 실패로 법정관리를 피할 수 없게 되든 어떤 경우에도 강도 높은 자구책을 시행해야 하기 때문에 1천200명가량인 현대상선 직원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 등 정치권이 정부의 구조조정 원칙을 지지할 것인지가 기업 구조조정 작업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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