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 청사진 없는 정계개편은 정치 혼란만 가중

【의회신문=정행산 주필】친박은 비박을 향해“나갈 테면 나가라”하고 있지만, 집권여당이 쪼개지면 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빨라질 수밖에 없고, 후반기 국정 운영에도 적잖은 타격이 불가피해진다. 박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해 오고 있는 '민생'도 함께 떠내려갈 수 있다. 친박은 닥치고 뒤로 물러나 회개하고 자숙해야 할 때다.

▲ 20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원내지도부와 4선 이상 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참석자들이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여의도 정치권의 정계개편 논의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혁신위원장과 비상대책위원 등 당직 인선을 둘러싼 새누리당 내 친박⋅비박 간 갈등이 끝내 일파만파로 확산되면서 시작된 정계개편 논의가 야권 인사들까지 가세함으로써 정치권이 요동을 치고 있다.

총선 후 '도로 친박당'으로 회귀하고 있는 새누리당 내에서는 탈당설⋅신당 창당설⋅정계 개편설 같은 '새판 짜기' 얘기가 분분하다. 친박계 측은 이제 비박계를 향해 "나갈 테면 나가라"는 얘기까지 서슴없이 쏟아낼 정도로 더 방자해지고 오만해졌다. 친박⋅비박은 이제 자칫 결별 수순을 밟을 수도 있는 단계에까지 이른 것으로 보인다.

여당이 쪼개지면 정파 간 이합집산이 시작될 공산이 크다. 여야 정당의 각 세력이 이념이나 노선 차이로 함께할 수 없다면 뜻이 맞는 세력끼리 합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더욱이 기성 정치 시스템의 비생산성이 대한민국 정치의 미래 희망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이런저런 정계개편 시도에 기대를 걸어볼 수도 있다.

시중에서는 오욕으로 점철된 19대 국회가 마감되고 마침내 20대 국회가 새롭게 시작되는 시점에 이르러서도 이처럼 여전히 한 집안에서 네 편 내 편을 갈라 치고받는 행태를 되풀이할 거면, 혼란을 끝내고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차라리 분당(分黨)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신념도 철학도 없이 이 당 저 당 기웃거리면서 이해타산에 따라 철새처럼 옮겨 다니고 여기에 붙고 저기에 붙는 정상배나 다름없는 일부 정치인들과 정치권의 이합집산은 지탄의 대상이지만, 그렇다고 분당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국민은 오늘의 한국 정치에 몸서리를 치면서 새 정치를 갈망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친박계와 비박계가 당을 쪼개 각기 새 정치질서를 만들고, 그럼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대선에서도 보수의 가치에 보다 더 부합하고 충실한 바르고 옳은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면 그것은 어쩌면 오히려 더 떳떳하고 당당한 길일 수 있다.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20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
◇ 정계개편 후유증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아

시중에는 새누리당 친박계가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절감했을 터인데도 여전히 ‘내편 이익 챙기기’와 비박계에 대한 배타적 행태를 바꾸지 않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내 눈밖에 난 사람들과는 절대로 함께할 수 없다”는 박 대통령의 생각이 지금도 확고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어쨌거나 집권여당이 이처럼 내분으로 혼란을 거듭하고 또 종내에는 쪼개지는 상황이 되면 당장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이 빨라질 수밖에 없고, 후반기 국정 운영에도 적잖은 타격이 불가피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박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해 왔던 '민생'도 함께 떠내려갈 수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최근 "새누리당에서 합리적 보수주의 성향의 인사가 온다면 받겠다"고 언급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정의화 의장⋅유승민 의원과도 함께 할 수 있다며 중도대연합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이와는 별도로 손학규 전 상임고문은 "국민의 분노와 좌절을 담아낼 그릇에 금이 갔다"며 "이번 총선 결과를 깊이 새겨 새판 짜기에 앞장서겠다"고 정계복귀를 시사했다. 그는 더민주 내에도 상당한 추종세력이 있다. 손학규 전 고문이 새판 짜기에 본격적으로 나설 경우 이번 총선에서 만들어진 3당 체제는 상당부분 지각변동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개헌론과 연결되는 정계개편론도 그 가능성이 높아져가고 있다. 임기 내내 친박계와 대립각을 세워왔던 무소속의 정의화 국회의장도 “중도 진영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세력을 만들겠다”며 정치결사체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대표적인 개헌론자다.

정계개편 움직임은 여소야대(與小野大)와 3당 체제를 출범시킨 4⋅13총선 이후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내년 12월 대통령선거 때까지 현재 3당 체제의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구조적 측면과 함께 여(與)든 야(野)든 뚜렷한 대권주자가 없다는 현실정치 상황이 맞물려 20대 국회가 출범하기도 전에 정계개편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정강정책이나 이념지향이 서로 다른 정당 내 제(諸)세력이 새로운 정치결사를 모색하는 과정은 민주사회 정치의 당연한 흐름일 수 있다. 하물며 지난 총선은 유권자의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계기였다.

▲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가 2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 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 논의 중인 정계개편 구상의 큰 특색

다가올 대통령선거라는 대형 정치 이벤트까지 감안한다면 정계개편 논의는 어차피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논의가 활발해질수록 우리 사회 전체가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선 지나친 정치담론과 논쟁으로 치닫는 ‘정치과잉’을 경계해야 한다. 사실 지금 우리의 정치환경은 자칫 비생산적이고 소모적 정쟁으로 치달을 수 있는 ‘때 이른 정계개편 좌판’을 벌이기에는 다소 불편스럽다.

정계개편에 따른 정치과잉과 이로 인한 정파간 이전투구는 경기후퇴와 구조 변혁기를 맞고 있는 한국 경제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20대 국회가 출발부터 정계개편 블랙홀에 휘말리면 제 역할을 못할 우려 또한 크다.

지금 정치권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정계개편의 주된 시나리오는 충청과 TK(대구⋅경북), 호남과 PK(부산⋅경남)의 연대 등으로 요약된다. 대선을 겨냥해 일찌감치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다분히 지역 표를 계산한 '정치공학적' 성격이 짙다. 또한 4·13 총선에 따른 여소야대와 3당 체제의 정치구도를 인위적으로 바꾸려는 것이기도 하다. 이 같은 의도에서 출발한 정계개편 논의는 민생⋅경제를 위해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 달라는 총선 민의와 거리가 있다.

아직 구체적인 윤곽은 없으나, 현재 물밑에서 논의 중인 이번 정계개편 구상의 가장 큰 특색은 여권에서 떨어져 나왔거나 앞으로 갈라져 나올 수 있는 세력과 야권의 일부 세력이 헤쳐모여 새누리당을 대체하는 '새로운 보수 정당'을 목표로 한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런 흐름의 방향은 대체적으로 '중도대통합' 또는 '제3지대' 형태를 지향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내건 이른바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의 결합'과 우연하게도 일맥상통한다. 말하자면 보수적 가치에 기반을 두되, 극단이 아닌 균형적이고 상식이 통하는 정치가 시대적 요구이자 추세임을 나타내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든 "기성 정당에 더 이상 나라를 맡길 수 없기 때문에 새판을 짜야 한다"는 정계개편론은 설득력을 지니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문제는, 기존 정치의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이냐 하는 비전과 청사진이다.

정계개편을 추진하려면 먼저 국민에게 꿈을 줄 수 있는 명확한 정치개혁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고 그저 이 기회에 또 다른 권력집단을 만들어보려는 꼼수로 '새판'입네 '개편' 입네 했다가는 국민은 그런 '사이비 정치세력'을 이 나라 정치판 밑에 영원히 '묻어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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