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에 대기업들과 공적 연기금인 국민연금의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사회책임투자(SRI)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국민연금공단 본부사옥 온누리홀에서 열린 지사장 워크숍에서 CEO 특강을 하고 있다.

특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시 국민연금의 불법적인 의결권 행사 의혹이 사실로 굳어지면서 국민연금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고려한 사회책임투자와 독립적인 의결권 행사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기금운용의 투명성과 수탁자 책임성을 확보하자는 차원으로 국민연금만이 아니라 공적 연기금 전체에도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공적연기금만이 아니라 금융시장 전반에 걸쳐 사회책임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기업의 ESG 관련 정보공개도 의무화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장려하고 촉진하는 '종합시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받고 있다.

이러한 여론은 국회의원들의 법안 발의로 구체화 되어 국민연금법, 국가재정법, 자본시장법, 산업발전법, 국가계약법 등에 대한 일부 법률으 개정안이다.

노웅래 의원, 권미혁 의원, 정춘숙 의원, 제윤경 의원(이상 더불어민주당), 박명재 의원, 이명수 의원(새누리당)은 사회책임투자 관련 법안을 발의했고, 홍일표 의원(바른정당)과 이언주 의원, 민병두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기업의 ESG 정보공시'와 관련한 법안을 발의했다.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 의무화에 방점을 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살펴보면 국민연금의 ESG 고려와 공시 의무화는 19대 국회 때 이목희 의원의 발의로 시작되어 2015년 1월 신설된 바 있다.

주식과 채권 투자에 대해 ESG 고려는 자율로 하되, 관련 공시는 의무화해야 한다는 법이다.  이 법의 시행으로 현재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국민연금기금의 책임투자 정책 및 계획, 조직, 책임투자 촉진 활동, 책임투자를 위해 고려하는 책임투자를 고려하는 ESG의 기준, 자산군의 운용 현황(규모, 5% 이상 지분 보유 종목 중 책임투자를 고려하는 종목), 책임투자 위탁운용사 선정 및 평가기준 등을 공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에도 한계가 있어 2015년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은 6조8500억원을 사회책임투자 방식으로 운용하고 있는데, ESG 고려에 대한 좀 더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없을뿐더러 나머지 기금에 대해 왜 ESG를 고려하지 않았는지를 공시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노웅래 의원은 발의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바로 이 점을 보완하여 공시사항으로 ESG를 고려했을 경우 각 요소의 고려 여부 및 고려 정도, 그리고 고려하지 않는 경우 그 이유를 포함해 공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권미혁 의원과 제윤경 의원은 기금의 ESG 고려 자체를 의무화하고 있는데 제윤경 의원의 경우, 투자대상만이 아니라 투자방법과 관련한 환경·사회·지배구조 등의 요소를 고려하여야 하고, 투자판단에 대해서는 대통령령에 의거해 기록하고 공개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안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고 기금운용이 수탁자 중심으로 이루어지도록 회의소집권과 안건제안권을 위원들에게도 부여하는 내용도 담았다.

권미혁 의원도 ESG 고려는 물론 기금이 발행주식 총수의 100분의 3 이상을 보유한 기업에 대해서는 의결권, 대표소송제기권 등 상법에 따른 주주의 권리를 행사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또 임의적으로 운영되는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주주권행사전문위원회로 확대개편하고 기금운용지침에 수탁자 책임 원칙을 명시하는 내용도 담았다.

정춘숙 의원은 발행주식 총수의 100분의 5 이상을 기금이 보유하고 있는 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 등에 관해서는 기금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이명수 의원은 일제 강점기 당시 우리나라 국민을 강제동원한, 이른바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국민연금기금 투자가 국민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이를 ESG 관점에서 투자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모든 공적 연기금 사회책임투자 확산을 주된 내용으로 개정된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공적 연기금의 ESG 고려를 통한 사회책임투자 활성화를 주장한 이후, 공적연기금의 ESG 고려에 대한 논의가 지난해부터 본격화하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해 8월 ‘공적 연기금 책임투자 평가’라는 보고서를 발간했고, 같은 해 9월에는 이원욱 의원과 김한표 의원을 공동대표로 한 ‘국회사회책임투자정책연구포럼(국회SRI정책연구포럼)’이 발족했다.

창립 토론회의 주요 주제는 ‘공적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 촉진’이었다. 국회 예산정책처와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공동으로 기금운용평가단 위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3%가 기금의 여유자금 운용시 ESG 고려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 공적 연기금은 국민연금을 포함해 65개로, 자산규모도 약 1580조에 달한다.

그러나 국민연금, 사학연금, 공무원연금만이 극히 소규모로 사회책임투자를 시행하고 있을 뿐으로, 우정사업본부도 사회책임투자를 하고는 있지만 공적 연기금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다.

산재보험기금, 고용보험기금에서 사회책임투자를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을 뿐이다.

이에 따라 ‘국가재정법’의 기금운용원칙으로 ESG 고려를 명시해 공적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급진전 되고 있다.

개별기금법 개정보다는 상위법인 국가재정법에 기금운용원칙으로 ESG 고려를 명시함으로써 개별기금법이 자연스럽게 이에 따르도록 하자는 논리다. 경제용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일종의 ‘낙수효과’다.

노웅래 의원은 국회예산정책처의 보고서를 토대로 국가재정법의 공적 연기금이 ESG를 고려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ESG를 고려하는 책임투자가 "투자대상의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에 주목함으로써 장기수익률을 제고할 수 있으므로 중장적인 운영이 필요한 공적 연기금의 특성에 부합한다“고 제안 이유에 밝히고 있다.

국회SRI정책연구포럼 공동 대표인 이원욱 의원도 공적 연기금의 ESG 고려와 관련한 ‘국가재정법 개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박명재 의원은 한국투자공사의 주식투자시 ESG를 고려할 수 있도록 하는 ‘한국투자공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한국투자공사는 정부와 한국은행 등으로부터 외환보유액 등의 자산을 위탁받아 주식·채권·외환·부동산 등 다양한 국제금융상품에 투자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해외투자기관이다. 즉 국부펀드다.

박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일으킨 옥시와, 자동차 배출가스 조작사건을 일으킨 폭스바겐과 같은 비윤리적인 기업에 대해 한국투자공사가 상당한 규모의 투자를 한 사실이 확인되어 해당 기업에 대한 투자가 중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법안 발의 배경을 밝혔다.

사실 PRI(책임투자원칙)이나 환경 관련 전세계 금융기관의 정보공개 이니셔티브인 CDP 등 해외기관에서는 한국투자공사가 사회책임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발언을 종종 하고 있다.

기업의 ESG 정보공개 의무화 :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사회책임투자가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ESG 관련 정보공개가 필요하다.

EU 의회에서는 2014년 4월 15일, 500인 이상을 고용한 기업 및 그룹사에 대해 환경, 인권, 반부패 등 CSR 관련 계획과 정책과 성과 등에 대해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고, 관련 사항을 공시하지 못할 경우 그 이유를 설명하도록 하는 법안을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시킨 바 있다. 올해 이를 적용한 최초의 보고서가 나오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에 포함된 기업에 한해서 온실가스 배출량, 에너지 사용량, 녹색기술인증사항 등 일부 환경 정보만을 사업보고서에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고 있을 뿐, 그 이외의 비재무적 정보의 공시는 기업의 자율이다.

지속가능성보고서를 자율적으로 발간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정보를 공개하는 기업의 수는 사실 충분하지 못한 실정이다.

홍일표 의원(바른정당)과 이언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각각 발의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나온 법안으로, 상장기업이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에 제출하는 사업보고서에 ESG 관련 주요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홍일표 의원안은 뇌물 및 부패근절, 환경보호, 인권보호와 신장, 사업장 안전경영, 일·가정 양립과 저출산 사회 대응, 각종 법령 위반에 따른 제재현황 등을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언주 의원안은 홍일표 의원안과 상당 부분 유사하지만 근로조건, 노사관계, 임직원에 관한 사항, 소비자 보호, 지역사회 공헌활동 등이 추가되어 있다. 좀 더 세부적이고 강한 편이다.

민병두 의원도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기부금 내역도 사업보고서에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대한 전경련의 출연금 등으로 재벌의 기부금이 정경유착의 고리가 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발의한 법안이다.

정부차원의 CSR 종합시책 마련힌 산업발전법 개정안의 경우 한편 홍일표 의원은 ‘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산업발전법’ 제18조와 제19조에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속가능한 산업발전을 위해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측정ㆍ평가하고 기업이 지속가능경영을 추진할 수 있도록 ‘종합시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2007년에 신설되었으나 정부는 9년이 넘도록 ‘종합시책’을 한 번도 수립한 적이 없다. 홍일표 의원은 해당 법률의 허점을 보완하는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또한 국가가 계약을 진행하는 절차에서 사회적·환경적 가치를 고려하여 입찰자격을 제안하거나 낙찰자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계약법 개정안’도 준비 중이다. 19대 국회에서 발의했으나 통과되지 못했던 법안을 좀 더 보완해 재발의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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